그(북한 국방위원장)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이 질문에 자신있게 답할 사람은 아마 흔치 않을 것이다. 이 점에서 그가 남한 언론사 사장단을 만나 자신의 생각을 즉석에서 쏟아놓은 것은 ‘그와 언론의 만남(Meet the Press)’을 위해 유용한 발단이 될 수도 있다.

그 ‘대화록’에 드러난 바에 의하면 그는 우선 북한 내부의 ‘보수’와 ‘변화’ 두 흐름 가운데서 자신을 후자 쪽에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통일’ 문제점은) 북남 공히 과거 정권탓이다…. 당 간부들 가운데는 주석님과 함께 일한 연로한 분이 많다. 그래서 당(당) 강령을 쉽게 바꿀 수 없다. (직항로 문제는) 군부(군부)가 문제인데… 간부들은 고정된 틀 속에서 잘 변화하지 않으려 한다…. ” 한 마디로 혁명 1세대와 당관료와 군부라는 기성세력 때문에 자신의 변화노선이 쉽지않다는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탓한 ‘과거정권’에서 그 자신은 빠져있는가 포함돼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설령 변화를 싫어하는 ‘혁명 1세대+당관료+군부’ 탓이라 해도 그들이 과연 진취적이고자 하는 ‘지도자 동지’의 절대적인 리더십의 발목을 잡을 만큼 강했겠느냐 하는 것도 심히 의문이다.

민족주의 또는 민족적 정체성이라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그는 오히려 ‘변화’보다는 ‘보수’ 쪽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국에 비굴하거나 아첨하면 절대로 안된다. 나라가 작을수록 자존심을 굳게 세우고…”라고 한 대목은 어휘 그 자체로서는 우리도 그와 비슷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남쪽의 경제 기술과 북쪽의 정신을 합작하면 강대국이 된다”고 한 대목은 그냥 대수롭지 않게 지나쳐지지가 않는다. 마치 “남쪽은 (민족)정신이 없고 돈만 있으며, (민족)정신은 북쪽에만 있다”는 그간의 북한식 발상(발상)이 너무나 진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북이 화해하자는 마당에 이르러서까지 남쪽 인사들에게 “(민족)정신은 북한 기준으로, 남한은 돈이나 대고…” 하는 식의 인식을 드러낸다면 남과 북 사이에는 아직도 메워야 할 골이 너무나 깊음을 절감하게 된다. 다만 그의 이 말을 이렇게 돌려서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런대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 북쪽에서는 혁명적 민족주의만을 진정한 민족주의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민족의 이익과 민족의 발전을 도모하는데 있어 ‘남한식 모델’도 현실주의적으로 충분히 있을 수 있음을 이제는 인정하겠다. ”

남한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보는 그의 시각은 너무나 흥미롭고 때로는 의외였다. “50여년간 경제발전 많이 하지 않았느냐. ” “그때 환경에서는 유신이고 뭐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 “소위 민주화도 무정부적 민주화는 곤란하다. ” 요즘 남한에서 누가 이렇게 말했다가는 당장 ‘수구’ ‘반개혁’ 소리 듣기 딱 좋을 것이다. 그런데 한반도에서 ‘가장 좌파적이고 혁명적인’ 인물이 그렇게 말했으니 그걸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아마 의논들이 분분할 것 같다. 많은 ‘민주화’ 출신들이 그 말에 선뜻 동의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통일 시기는 내가 마음먹기에 달려’라는 말도 남쪽 사람들의 허를 찌른다. 우리 상식대로는 ‘통일 시기는 양쪽이 다 좋다고 합치할 때’라는 편이 더 맞을뻔 했다. 그러나 그쪽이 그런 ‘한반도 전체의 경영’ 안목을 갖겠다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문제는 그렇게 못하는 남쪽에 있다.

그의 ‘언론과의 만남’은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하다. 이 시작으로 모든 것을 예단할 수는 없다. 바라는 것은 그가 부디 자유민주사회의 언론의 존재양식을 이해하고서 그것에 익숙해졌으면 하는 것이다. 이 쪽의 언론 역시 비판의 자유와 함께 언론의 책임을 몰각하지 않아야 함은 물론이다. /류근일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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