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조선일보 DB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조선일보 DB

북한이 미국을 향해 '선물'을 보내겠다고 예고한 크리스마스가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북한은 12월 들어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에서 잇달아 '중대 시험'을 하며 도발 가능성을 시사해왔다. 지난주 방한한 스티븐 비건 미 대북정책특별대표가 공개 제안한 판문점 실무접촉에도 응하지 않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예고해온 '새로운 길'의 방향을 공개할 가능성이 거론되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앞두고 마지막 숨고르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그런가 하면 북한은 최근 노동신문 등을 통해 인민군 각급 부대가 김정은이 올랐던 '백두산 등정로'를 따라 오르는 장면을 공개하고 있다. 김정은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꺼내놓기 전 대내 결속을 다지면서 대미 항전 의지를 고취시키려는 선동술이란 분석이 나온다. 북한은 작년 1월1일 김정은 신년사 이후 2년을 이어온 미·북 비핵화 협상 궤도를 이탈한 새로운 길을 알리는 도발에 나설 것인가. 아니면 미·북 대화 재개의 여지를 남겨둔 채 크리스마스를 넘길까. 김정은의 고민도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① 크리스마스 선물은 '허풍'…'핵·미사일 모라토리엄 폐기' 선언 가능성
 

북한은 지난 3일 리태성 북한 외무성 미국 담당 부상 담화를 통해 "우리가 미국에 제시한 연말 시한부가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다"며 "남은 것은 미국의 선택이며,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무엇으로 선정하는가는 전적으로 미국의 결심에 달려있다"고 밝혔다. 이른바 '크리스마스 선물'을 예고한 것이다.

이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8일(현지시각) 트위터를 통해 "김정은은 영리하다"면서 "그가 적대적 방식으로 행동하면 잃을 것이 너무 많다, 사실상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라고 했다.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 경고에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은 담화를 통해 "우리는 더이상 잃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라면서 "(트럼프를) 또다시 '망령든 늙다리'로 부르지 않으면 안 될 시기가 다시 올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맞받아쳤다. 김영철은 이어 "트럼프가 우리가 어떠한 행동을 하면 자기는 놀랄 것이라고 했는데 물론 놀랄 것"이라며 "놀라라고 하는 일인데 놀라지 않는다면 우리는 매우 안타까울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놀랄만한 행동을 준비하고 있다는 협박이었다.

하지만 북한의 도발 예고를 '허풍'이라며 반신반의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대표적이다. 볼턴 전 보좌관은 최근 미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의 연말 도발 가능성에 대해 "허풍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 타결에 절박한 상황"이라면서 "모든 상황은 북한이 쓴 '각본'(playbook)의 일부"라고 했다.

국책 통일연구원의 홍민 북한연구실장도 지난 18일 기자 간담회에서 "북한은 중국의 입장을 고려해 크리스마스 전후 또는 연말에 미사일 발사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마침 크리스마스를 앞둔 오는 23~24일 중국 청두에서는 한·일·중 정상회의가 열린다. 시기적으로 대중(對中) 외교에 공을 들이고 있는 북한 입장에서 군사적 도발에 나서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홍 실장은 "연말 한·일·중 정상이 모여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밝힐 가능성이 있는데,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중국의 입장이 매우 난처해진다"고 했다.

김갑식 통일연구원 통일정책연구실장도 "북한은 12월 하순에 노동당 전원회의를 개최할 예정이고, 24일 전후로는 한·일·중 정상간 다자·양자회담이 예정돼 있다"면서 "북·중 관계를 고려하면 크리스마스 전후로 도발은 힘들다"고 했다. 김 실장은 북한이 도발에 나선다면 '당 전원회의 결정→김정은 신년사→도발'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하지만 미국에 '새로운 셈법'을 요구하며 비핵화 협상 시한으로 '연말'을 제시한 사람은 김정은이다. 그런 만큼 북한이 아무런 대미 압박 이벤트를 하지 않고 해를 넘기기도 어렵다. 이 때문에 북한이 곧 있을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핵·미사일 실험 모라토리엄 중단'을 결정하고, 이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보내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포장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적인 군사적 도발의 부담은 덜면서 언제든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재개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 업적으로 여기는 작년 6·12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합의를 깨는 수준에서 일단 해를 넘길 가능성도 있다..
 

② ICBM 대신 위성 발사로 美 떠보기… SLBM 발시 시험 가능성도

하지만 다수 전문가들은 북한이 그동안 미국을 향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거듭 예고해왔다는 점을 주목한다. 볼턴 전 보좌관 언급처럼 미국은 이미 북한의 '말폭탄'식 허풍에 익숙하다. 그런 상황에서 김정은이 군사적 행동 대신 핵·미사일 모라토리엄 선언 파기 수준에서 연말 국면을 넘기기도 부담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그런 만큼 미국 등 국제사회의 군사적 도발 책임론을 피하면서 도발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을 김정은이 고민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거론되는 게 위성 발사를 가장한 로켓 시험이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19일 중국의 위성 발사 소식을 상세히 보도했다. 노동신문은 '위성 발사'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중국이 16일 서창위성발사센터에서 2개의 북두항법위성을 쏴 올렸다"며 "'장정-3호을' 운반 로켓에 실려 발사된 위성들은 3시간 이상 비행한 후 예정된 궤도에 순조롭게 진입했다"고 보도한 것이다. 이어 "위성들은 앞으로 시험측정을 진행한 후 적절한 시기에 망에 가입하여 봉사를 제공하게 된다"고 했다. 북한 역시 '우주의 평화적 이용 권리'를 주장하며 위성 발사를 빙자한 장거리 로켓 시험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로켓에 위성 대신 핵탄두를 실으면 그것이 ICBM이다. 위성 발사는 표면적으로 미국에 약속한 핵·장거리 미사일 발사 중단 약속을 어기지 않으면서도 핵탄두와 같은 상당한 중량을 태평양 건너편으로 실어 보낼 수 있는 로켓 기술을 보유하고 있음을 보여줄 수 있다.


북한은 과거에도 우주 개발 권리를 주장하며 핵·미사일 합의를 파기한 적이 있다. 지난 2012년 2월 미국과 북한은 미사일 발사와 우라늄 농축 활동을 중단하는 대가로 영양 지원을 제공하는 '2·29 베이징 합의'를 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2달 후 북한은 '평화적 우주 개발'을 명분 삼아 장거리 로켓 '은하-3호'를 발사했다. 북한은 당시 은하-3호 안에 인공위성 '광명성-3호'가 탑재돼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이 일로 2·29 합의는 없던 일이 됐다.

올 연말이나 내년 초에도 2012년과 같은 상황이 재현될 수 있다. 북한은 지난 2016년 "국가우주개발 5개년 계획에 따라 2020년까지 더 많은 지구 관측 위성과 정지 궤도 위성을 발사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런데 2018년 이후 한반도 대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위성 발사를 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그동안 중단했던 위성 발사를 재개한다면서 로켓 발사에 나서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을 공산이 크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다. 그는 그동안 북한의 단거리 탄도 미사일이나 초대형 방사포 실험에 대해서 '작은 것들'이라며 신경쓰지 않았다. 심지어 북한이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실험을 했을 때도 트럼프 대통령은 무시하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미·북 비핵화 협상 성과가 무위로 돌아가는 걸 피하기 위한 의도적 무시 전략이었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북한의 위성 발사를 ICBM 발사에 준하는 도발로 간주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SLBM 발사 시험을 다시 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은 지난달 2일 강원도 원산 인근에서 신형 SLBM 북극성-3형을 시험 발사했다. 이 SLBM의 사거리는 3000~5000km로 추정된다. 최근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북한 전문 사이트 '분단을 넘어'(Beyond Parallel)는 북한 남포 조선소에 위치한 미사일 수중 발사 실험용 바지선이 언제라도 SLBM을 발사할 준비가 돼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시설/조선일보 DB
북한의 핵·미사일 시설/조선일보 DB

③ 동창리서 신형 ICBM 발사… 7차 핵실험 가능성도

북한이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할 수 있는 최고 수위 도발은 ICBM 발사다. 이는 작년 6·12 미·북 정상합의의 파기를 뜻하는 행동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비핵화 협상은 끝났다"는 크리스마스 메시지가 될 수 있다. 북한은 지난 2017년 7월 4일 미국의 독립기념일에 맞춰 발사한 ICBM급 미사일 '화성–15형'에 미국에 주는 '선물'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미군 수뇌부들도 군사적 측면에서는 ICBM 도발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찰스 브라운 미 태평양공군사령관은 지난 17일(현지시각) 북한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장거리 탄도미사일의 일종"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는 "(발사 시기만)크리스마스 이브에 하느냐, 크리스마스에 하느냐, 새해 이후에 하느냐의 문제일 뿐"이라면서 북한의 ICBM 발사 가능성을 높게 봤다.

실제로 최근 평안북도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에서는 차량과 사람의 움직임이 포착됐다. 미 미들버리국제학연구소 제프리 루이스 동아시아 비확산센터장은 "북한이 약속한 '크리스마스 선물'은 새로운 미사일일 가능성이 있다"면서 "개선된 '화성-15형'(ICBM급)이나 고체연료 추진 ICBM일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보유한 ICBM은 모두 액체 연료를 사용한다. 액체 연료는 발사 전 연료를 주입해야 한다. 도발 징후가 미 정찰·감시 자산에 사전에 포착될 수밖에 없다. 반면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미사일은 이러한 약점이 없다.

일부 전문가는 7차 핵실험 가능성도 거론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핵실험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면서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했다. 하지만 풍계리 핵실험장은 북한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재건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한기 합참의장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풍계리 핵실험장에 대해 "보완 작업을 하면 살릴 수 있는 갱도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핵실험은 중국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점이 변수다. 또 이미 6차례 핵실험을 통해 수소폭탄 기술까지 확보한 북한이 굳이 추가 핵실험에 나서겠냐는 반론도 있다. 아산정책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내년도 정세 전망 보고서서 "북한은 이미 6차례 핵실험으로 필요한 기술을 확보했다"면서 "7차 핵실험을 하는 것보다는 조용하고 신속하게 (핵무기) 수량을 늘리는 쪽을 택할 것"이라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2/22/201912220001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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