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트럼프, 지난 3년간 김정은 말 경청" 北 도발 자제 촉구
전문가 "北, 한 방 터뜨리는 효과 위해서라도 대화 외면할 것"
 

방한 중인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16일 기자회견에서 북측의 도발 징후와 '말폭탄'에 유감을 나타내면서도 "우리 일을 해야 할 때다. 이 일을 해내자"고 했다. 공개적 회담 제안이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과의 오찬에서도 "타당성 있는 단계와 유연한 조치를 통해 균형 잡힌 합의에 이를 준비가 됐다"고 했다. 비건 대표의 공개 회담 제안을 두고 외교가에선 "사전 물밑 채널도 가동하지 못할 만큼 냉각된 미·북 관계의 현실을 보여줬다"는 말이 나왔다. 북한은 이날 비건 대표의 경고·회유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비건 "평화의 크리스마스 보내길"

비건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을 "대북 협상의 진전을 계속 모색하기 위해 서울에 왔다"는 말로 시작했다. 이어 "긴 한 해였고 우리가 바랐던 것만큼의 진전은 없었지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최근 '대미(對美) 막말'을 쏟아낸 북한의 태도를 문제 삼았다. 그는 "지난 몇 달간 여러 북한 관리가 했던 말을 자세히 읽었다. 미국·한국·일본과 유럽의 우리 친구들을 향한 이 성명들의 어조가 너무 적대적·부정적이고 불필요하다는 점은 유감스럽다"고 했다. 그간 미·북 협상이 열린 도시들을 일일이 열거하며 "그들(북한)도 그들의 말이 평양, 뉴욕, 워싱턴DC, 싱가포르, 스톡홀름, 하노이, 판문점과 다른 곳에서 했던 미·북 간 토론의 정신이나 내용을 반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잘 알 것"이라고도 했다.
 
스티븐 비건(왼쪽)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 겸 부장관 지명자가 16일 오전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스티븐 비건(왼쪽)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 겸 부장관 지명자가 16일 오전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박 3일 일정으로 전날 방한한 그는 이날 회견에서 북한을 향해 "우리는 여기(서울)에 있고 당신들은 우리에게 어떻게 연락할지 알고 있다"고 했다.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을 향해 '판문점 회담'을 공개 제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장련성 기자

북한은 그간 비핵화 문제가 구체적으로 논의될 실무 협상을 거부하며 '톱다운'식 해결을 선호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비건 대표는 '트럼프의 입장'을 강조하는 전략으로 이를 맞받아쳤다. 그는 회견에서 "지난 3년간 여러 계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의 말을 경청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 또한 우리와 같은 목표에 전념할 것이라고 자신해 왔다"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처럼 나도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지만 미국 혼자서는 할 수 없다"고 했다.

비건 대표는 회견 말미에 "이 순간을 빌려 한반도의 모든 이가 (연말) 연휴를 최고로 보내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곧 우리 달력에서 가장 신성한 축일인 크리스마스를 축하할 텐데 언제나처럼 이날이 평화의 시기로 우리를 인도해 줄 것을 기도하고 기원한다"며 "모두가 이런 감정에 동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리태성 북한 외무성 미국 담당 부상이 지난 3일 담화에서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무엇으로 선정하는가는 전적으로 미국의 결심에 달려 있다"며 도발을 예고한 데 대해 우회적으로 자제를 촉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북 회동 난망… "사전 조율도 못 해"

이날 비건 대표의 공개적 회담 제안을 두고 "실무 협상 성사를 위한 비공개 사전 조율이 전혀 이뤄지지 못했음을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왔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미·북 간의 물밑 채널이 없다는 사실이 공식적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봉영식 연세대 통일연구원 전문연구위원은 "비건 대표는 북한이 정말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할 것으로 보고 상황 관리를 하러 온 것 같다"고 말했다.

북이 비건 대표의 회담 제안에 호응할지는 불분명하다. 대다수 전문가는 그 가능성은 작게 보고 있다. 김인태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 위원은 "북한은 크리스마스 선물로 '한 방'을 터뜨리는 효과를 보기 위해서라도 비건 대표의 회담 제안을 외면하는 것이 더 효과가 있다고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미국이 협상 판은 깨지 않으면서도 (비핵화와 상응 조치에 대한) 기존 입장은 양보하지 않겠다고 한 만큼 이번 (미·북) 회동은 불발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2/17/2019121700318.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