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통한 인도적 지원 결정… '연말 시한' 외치는 北 달래기
北이 정한 연말 시한 앞두고… 1년에 두차례 대북지원은 이례적
정부 "공교롭게 시점 겹쳤을 뿐"
 

정부가 6일 세계보건기구(WHO)를 통해 북한에 500만달러(약 59억5000만원)를 인도적으로 지원키로 결정했다. 지난 6월 국제기구를 통해 800만달러를 지원한 지 반년도 안 돼 또 다른 북한 지원에 나선 것이다.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하는 게 맞지만, 북한이 연일 '연말 시한'을 강조하며 대미·대남 위협을 쏟아내자 정부가 인도적 지원을 '북 달래기'란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이날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교추협)를 열어 WHO의 북한 모자 보건 분야 의료 지원 사업 등 세 안건을 의결했다. 이 의결을 거쳐 정부가 WHO에 보내는 500만달러는 북한 내 산과(産科)·소아과 병원의 의료·교수진 교육 훈련, 응급·수술 장비 지원 사업 등에 활용된다. 1~2주 실무 준비를 거쳐 연내에 집행(WHO에 송금)까지 마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지난 7월 WHO에서 북한 모자 보건 사업 구상에 대한 제안을 받고 5개월간 협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소식통은 "더 빨리 지원이 결정될 수도 있었지만, WHO가 북한과 소통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등 WHO 측 사정 때문에 시간이 더 걸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필 연말에 대북 지원이 이뤄지는 데 우리 측의 정무적 판단이 작용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트럼프, 안보리 대사들 불러 “한반도 비핵화 협력해달라” - 5일(현지 시각) 미국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오른쪽에서 둘째) 미국 대통령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 대사들과의 오찬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날 오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 등 국제적 도전 과제를 위해 협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김정은이 정한 ‘연말 시한’을 앞두고 미·북 간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대북 압박에 국제적 공조를 요청한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안보리 대사들 불러 “한반도 비핵화 협력해달라” - 5일(현지 시각) 미국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오른쪽에서 둘째) 미국 대통령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 대사들과의 오찬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날 오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 등 국제적 도전 과제를 위해 협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김정은이 정한 ‘연말 시한’을 앞두고 미·북 간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대북 압박에 국제적 공조를 요청한 것으로 풀이된다. /AFP 연합뉴스

북한은 '하노이 노딜' 이후 남북 관계를 완전히 걸어 잠그고 대남 무력 시위 성격의 방사포·미사일 도발을 13차례 일으켰다. 지난달부턴 '연말 시한'을 강조하며 연일 미국을 위협하는 담화를 쏟아내고 있다. 이달 하순 소집하는 노동당 중앙위 전원 회의에서는 대미 강경 노선인 '새로운 길'을 채택해 남북·미북 관계가 더욱 얼어붙을 가능성이 크다.

김천식 전 통일부 차관은 "종전에 하던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으로 보이지만 연내 두 차례 집행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올 들어 타미플루(1월), 쌀 5만t(5월), 아프리카돼지열병(ASF) 공동 방역 제안(5월) 등 우리 정부의 인도적 지원 제안을 모두 걷어찼다. 하지만 지난 6월 정부가 유니세프와 WFP(세계식량계획)를 통해 공여한 800만달러 인도적 지원은 수용했고, 집행도 순조롭게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이번 WHO를 통한 모자 보건 사업도 받아들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자기네 필요에 따라 인도적 지원도 취사선택해 받는 것으로 보인다"며 "소강 상태인 남북 관계를 감안할 때 국제기구를 통해 받는 것이 북한 정권 차원의 부담도 작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정부는 남북 관계 상황과 무관하게 북한의 영유아·산모 대상 인도적 지원을 지속해 나갈 방침"이라며 "WHO와 실무 협의를 진행하다 보니 지원 시점이 공교롭게 연말이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6월 800만달러 집행 당시와 비교할 때 이번 500만달러 지원은 훨씬 신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정부가 800만달러 대북 인도 지원을 결정한 것은 문재인 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 9월이었다. 북한의 6차 핵실험 여파로 험악해진 국내외 여론 탓에 집행하지 못하던 것을 1년 9개월 만인 지난 6월에야 집행했다. 지난 2월 '하노이 노딜'로 얼어붙은 남북 관계의 돌파구를 열기 위해 정부가 쌀 지원, 개성공단 기업인 방북 등과 함께 추진한 대북 유화책의 하나였다. 당시 정부의 재추진 발표(5월)에서 집행까진 약 한 달이 걸렸다. 이번 500만달러 지원 방침은 이날 발표됐고, 집행은 1~2주 안에 마무리될 전망이다.

6월 800만달러와 이번 500만달러 등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 인도 지원은 5년 만에 재개되는 것이다.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은 "대북 지원 시점과 이유, 배경 등이 모호하다 보니 순수한 인도적 지원이 아니라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갖게 한다"고 말했다. 전직 통일부 관리는 "북한의 금강산 시설 철거 통보, 김정은 방남(訪南) 무산 등 남북 관계가 계속 꼬이기만 하자 정부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대북 지원을 서두르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2/07/201912070012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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