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만강변의 중국 투먼(圖們)에서 북한 보안원들이 탈북자 100여명의 코와 손을 철사로 꿰어 트럭으로 북송(北送)하고 있는 현장을 목격했다는 한 미국인의 증언은 충격을 넘어 참담한 수치심을 느끼게 한다. 줄줄이 사람의 코를 꿰어 끌고 가는, 그래서 노예사회에서나 있을법한 엽기적 인권유린은 도대체 어떤 체제 유지를 위해 필요한 것인가. 북한정권이 수령절대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 무슨 일을 하든, 거기에도 사람 사는 사회로서의 최소한의 조건과 기준은 있어야 한다. 체제 여하를 막론하고 말이다.

탈북자들에 대한 가혹한 단속과 탄압, 공포분위기 조성 등으로 북한정권이 얻고자 하는 효과가 무엇이든간에, 북한당국은 그것으로 인한 손실이 이득보다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간파해야 한다. 오늘의 국제사회에서 인권을 ‘코꿰는’ 나라가 발붙일 수 있는 여지는 없다. 지난달 ‘25명의 탈북자’ 사건에서도 확인됐듯이 이미 국제인권단체들이 탈북자 문제에 행동으로 개입하고 있으며, 북한 내 정치범수용소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인권문제는 대량살상무기와 더불어 북한의 국제사회 진입에 가장 큰 장애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도 자국 영토 내에서 이번 일이 일어난 데 대해 무거운 책임을 느껴야 한다. 북한 보안원들이 버젓이 정복을 입고 탈북자를 코꿰어 끌어가는 일이 중국공안당국의 묵인이나 협조 없이 가능하다고 볼 수는 없다. 중국정부는 자국 내에서 북한 요원들이 활동하는 일은 없다고 밝혀왔지만 이번 증언으로 사실이 아님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정부 역시 이 문제를 그냥 넘겨서는 안된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북한정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북한주민의 삶의 질(質)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면 대북지원과 인권개선을 연계하는 방식을 더이상 겁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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