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북 청진서 탈북한 68년생 女人
두아이 함께 목숨 건 탈출이었지만 볼웃음과 유머 달고 사는 '명랑줌마'

부모 '빽' 있어야 성공하는 남한서 건강하게 잘 커준 자식들에 감사
통일돼 고향땅 갈 날만 기다립니다



김윤덕 문화부장
김윤덕 문화부장
찬바람이 도둑처럼 들이친 날, 광화문 갈비탕집에서 만난 여인의 이름은 정애다. 함북 청진생인 그녀는 우스갯소리 하나에도 흥과 열을 다했다. 우거지 갈비탕을 한술 뜬 그가 들려준 '은행과 몽둥이'는 이런 이야기다.

탈북한 사람 중에 손버릇이 나쁜 여자 뚜룩꾼이 있었다. 어느 날 전화가 왔다. "야야, 자루하고 몽둥이 한 개 준비하라우. 은행 털러 가게." 심장 오그라붙는 소리에 "싫어요. 난 배짱이 없어 고런 쫄리는 일은 못 합네다" 하니, 여자가 혀를 찼다. "몽둥이로 가로수 털어 자루 한가득 은행 알 쓸어 담자는데 무섭긴 뭐이가 무섭네?"



이맘때면 고릿한 냄새 풍기며 지천으로 널리는 은행이 그녀는 신기하다고 했다. 북에는 은행나무가 드물거니와, 설령 있다 해도 은행 알 떨어지기 무섭게 사라질 거라고 했다. "은행 알은 먹자고 줏어들일 거고, 은행잎은 불 때자고 줏어들일 거고요."

인민은 가난해도 평양 부자는 서울 부자 못지않다고 했다. "중앙당 간부였던 고모네 아빠트는 대궐이었어요. 무리등(샹들리에) 달린 거실에 쇼파 장롱 떼레비 같은 오장육기가 몽땅 일본산이었대니까요. 탈북한 평양 부자가 서울 와 코딱지만 한 집을 배급받고는 복도에 앉아 엉엉 울었다지 않습네까, 참말입네다, 호호!"

유엔조사단과 당 간부집 아들 이야기는 한 편의 우화다. "해마다 조사단이 들어오면 우리가 얼마나 굶주리는지 보여주려고 피죽만 남은 아이들을 한 학급에 몰아놓지요. 그 반에 로동당 간부집 아들이 만날 불려가는 겁네다. 아무리 잘 먹여도 살이 안 쪄 딱 꽃제비상이거든. 조사단 온다는 통지서만 날아오면 아이는 학교에 안 간다고 울고, 엄마는 당과 인민을 위해 가야 한다고 막대찜을 하고, 할머니는 미국 놈들이 왜 우리 손주까지 괴롭히냐며 소리소리 지르고. 요거이 북한입네다."
 
[김윤덕의 新줌마병법] 오, 정애!
/일러스트=이철원


"따뜻한 밥 한 끼"가 탈북의 이유였다. "열 살 딸이 말라비틀어진 손가락을 들고 '엄마, 딱 한 번만 쌀밥을 먹어봤으면 소원이 없갔어' 하는데 가슴에 칼이 와 박히는 것 같았다"고 했다. "당과 수령을 위해 산다면서 내 아이를 굶기는 나는 엄마도, 사람도 아니었지요."

청진에서도 오지였다. 80년대 성분 재조사를 통해 전쟁 피살자에서 월남자 가족으로 전락한 그는, 신분 상승을 위해 열아홉 꽃나이에 찢어지게 가난한 '김일성 접견자 가족'으로 시집가 남매를 낳았다.

첫 도강(渡江)은 아이들 없이 혼자였다. 두만강 건널 땐 잔등에 총알이 척척 박히는 듯했다. "강 하나를 건넜을 뿐인데 전혀 딴 세상입네다. 사과가 하도 많이 달려 나뭇가지가 휘는 걸 보고 엉엉 울었지요." 1년 뒤 아이들 데리러 다시 청진으로 갔다. 강을 건너고도 700리 길. 하루 100리씩 산을 타는데 발가락 열 개에 물퉁기가 지다 못해 피가 고였다. 맨발로 유리조각 밟는 고통에 몸서리를 쳤지만 걷고 또 걸었다. "자식만 살릴 수 있다면 내레 목숨이 아깝지 않은 엄마니까요."

부모의 '빽'이 성공의 열쇠라는 남한에서 두 아이는 주눅 들지 않고 자랐다. 영어를 못해 대학엔 못 갔지만 레닌 초상화 그리던 외할아버지 닮아 그림 솜씨 뛰어난 아들은 공고를 나와 건축설계사가 됐다. "어디로 면접을 가도 아들은 '나는 탈북자입니다, 대학은 못 갔습니다'라고 말해요. 장하지 않습네까?"



정애씨는 소설 '밥'을 쓴 작가다. '오복래'는 그에게 사랑의 다른 낱말이다. "우리 할머닌 맏손녀 이름 부르기도 아까워 오복래야, 애기씨야라고 불렀어요. 근데 시집을 갔더니 남편이 툭하면 '이 간나!' 하고 소리를 쳐요. 눈물이 두두두두 떨어졌지요." 탈북에 반대한 남편은 북에 홀로 남았다. 풍문에 의하면 가족사진을 보며 매일 운다고 했다. "잘못을 인정하고 돌아오면 당이 용서해주니 우리더러 돌아오래요. 날더러 머저리래요."

웃는지 우는지 모를 표정으로 국물을 들이켜던 그녀에게 다시 장난기가 발동했다. "백두서 한라까지란 구호를 귀에 달고 사는 북 주민에게 제주는 로망이에요. 마침내 제주에 가서 회를 맛나게 먹고 식당 화장실에 갔는데 아주 요상한 물건이 있어요. 분홍색인데, 꼭 남자의 고것처럼 생겼단 말이지요. 너무 불쾌해서 주인장에 따졌어요. 돈 벌기 바쁜 자본주의 사회라도 그렇지, 어떻게 여자 화장실에 이런 걸 둡네까? 그러자 놀란 토깽이 눈이 된 주인이 그게 제주도 트레이드 마크란 거예요. 그러면서 새 물건을 꺼내 보여주는데 돌하르방이라! 닳고 닳아 눈코입은 간데없고 갓이랑 턱만 남은 하르방 비누! 내레 요렇게 오두방정을 떨며 삽네다, 호호!"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1/04/2019110403277.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