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금강산 재개 약속하곤 美 눈치보는 南에 대한 불만
②南 의존 없이 관광사업 독자 추진하겠단 선언
전문가 "금강산 다음은 개성공단 차례될 것" "금강산 더이상 남북협력 상징되기 어려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금강산관광지구를 현지지도하고 금강산에 설치된 남측 시설 철거를 지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3일 보도했다./연합뉴스·조선중앙통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금강산관광지구를 현지지도하고 금강산에 설치된 남측 시설 철거를 지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3일 보도했다./연합뉴스·조선중앙통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금강산의 남측 관광시설 철거를 지시했다고 북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보도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정은은 특히 철거 지시를 하면서 금강산관광을 추진했던 '선임자들의 대남 의존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김정일을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금강산 사업이 김정일 집권 시절 남북 협력의 상징처럼 추진됐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이다.

김정은의 금강산 남측 시설 철거 지시는 일차적으로 남측이 지난해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때 맺은 평양공동선언에서 합의한 금강산관광 재개를 지금까지 이행하지 않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김정은은 금강산 관광시설을 둘러본 뒤 기존 시설이 흉물스럽다며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했다. "민족성이라는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거나 "건축 미학적으로 심히 낙후됐다" "건설장의 가설건물을 방불케 한다" "자연경관에 손해다" "관리가 되지 않아 남루하기 그지없다"라고 했다. 겉으로는 시설 낙후를 문제 삼았지만 금강산 관광 중단으로 남측 시설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데 대한 불만을 나타낸 것이란 관측이다.

김정은은 올 초만 해도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조건없이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신년사에서 "개성공업지구에 진출했던 남측 기업들의 어려운 사정과 민족의 명산을 찾아보고 싶어 하는 남녘 동포들의 소망을 헤아려,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대가 없이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김정은은 집권 후 원산을 관광 지구로 바꾸고 인근 마식령 스키장을 지은 데 이어 내금강 개발을 추진해왔다. 원산~금강산 지구를 세계적인 관광 특구로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는데 남북 관계 교착으로 제대로 추진되지 않자 화풀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정의당 김종대 의원은 이날 오전 CBS라디오에 나와 "김정은 위원장이 금강산 관광 특구에 심혈을 기울여 왔는데 문제가 안 풀리자 이에 대한 격분 내지는 상실감이 드러나는 대목"이라고 했다. 김 의원은 "남북 관계가 교착 상태가 되면서 현대아산 외금강 관광 지구 아무것도 되는 일도 없고 하니, 저 남측 시설이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흉물 같다고 얘기하는 거"라고 했다. 그는 이어 "작년 11월에 제가 현정은 현대아산 회장하고 같이 금강산을 갔었는데, 현 회장한테 북측이 내금강, 백두산도 가져가 관광 개발 하라고 했다"며 "그런데도 (남측에서) 아무 반응이 없으니 약이 오른다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이 "손쉽게 관광지나 내어주고 앉아서 득을 보려고 했던 선임자들의 잘못된 정책으로 하여 금강산이 10여년간 방치되어 흠이 남았다고, 땅이 아깝다"며 "국력이 여릴 적에 남에게 의존하려 했던 선임자들의 의존정책이 매우 잘못 되었다고 심각히 비판했다"고 전했다. 이같은 발언은 남한이나 국제 사회의 제재 해제를 통한 금강산 관광 재개가 어렵다면 독자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자력갱생과 독자노선을 강조하는 김정은이 금강산 관광지구를 방문해 선대가 남측에 의존한 방식은 잘못됐다고 꼬집은 것"이라며 "남측과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금강산을 개발하겠단 의지를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신 센터장은 "김정은이 대남, 대미 외교 담당자인 최선희와 장금철을 대동했다는 점에서 이번 금강산 시찰이 한국과 미국에 보내는 압박 메시지라는 걸 읽을 수 있다"면서 "노동신문을 통해 보도된 만큼 이같은 구상을 철회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그는 "금강산 이후엔 개성공단을 문제 삼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김정은이 남한에 의존한 경제개발을 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밝혔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면서 "막연히 남북경협이 재개되기를 기다리지 않고 자신들이 주도해서 금강산을 개발하겠다는 것으로 관광재개를 압박하는 초강수를 던진 것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김정은이 금강산 관광지구를 삼지연군,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와 유사한 형태로 재개발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대북 제재와 남북 경색 장기화에 대비해 금강산에서 남한의 흔적을 지우려는 것으로 향후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더라도 더이상 남북협력사업의 상징이 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0/23/201910230090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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