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일 오전 동해상으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로 보이는 발사체를 쐈다. SLBM은 북한이 지난 5월 이후 11번에 걸쳐 쐈던 미사일이나 방사포와는 성격이 다른 전략무기다. 미국에 직접 위협이 된다. SLBM을 쏘는 것은 가까스로 다시 시작되려는 미·북 협상을 탈선시킬 수도 있는 위험한 도박이다.

북은 미국과의 담판에 체제의 운명을 걸고 있다. 김정은은 한국 대통령에겐 '겁먹은 개' '삶은 소대가리' 같은 막말을 해가며 모욕을 주면서도 미국 대통령에겐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아름다운' 친서를 보낸다. 그렇게 대미 관리에 각별히 신경을 써온 북이 미국과 협상을 재개한다고 발표한 지 하루도 안 돼서, 또 그 협상을 불과 사흘 앞두고 SLBM을 쐈다. 북의 거듭된 미사일 발사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ICBM만 아니면 된다"고 했는데 ICBM이나 다름없는 '레드라인'을 일부러 건드린 것이다. 치밀한 계산에 따른 계획적인 도발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지난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은 고철이나 다름없는 영변 핵시설을 포기하는 대가로 제재를 모두 풀어달라고 요구했다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퇴짜를 맞았다. 이후 김정은은 올 연말까지 미국이 '새로운 계산법'을 내놓지 않으면 문제 해결은 어려울 것이며 매우 위험할 것이라고 협박했고, 트럼프는 "서두를 것 없다"며 맞섰다. 서로 상대방에게 양보를 요구한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김정은이 시한으로 제시했던 연말이 임박하고 미·북 협상이 재개되려는 시점에서 북이 SLBM을 쏜 것이다.

김정은은 트럼프를 관찰하고서 '허풍쟁이'라는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대북 군사행동은 절대 없다는 확신이다. 자신이 이리저리 발사 장소와 발사체를 바꿔가며 도발을 해도 트럼프는 문제 삼지 않았다. 이란이 미국의 드론을 격추시키고 사우디 유전을 드론으로 공격해도 묵인하는 것도 봤다. 트럼프가 부동산 업자일 뿐이란 사실을 읽은 것이다. 또 트럼프가 내년 11월 재선을 앞두고 미·북 협상 외에 이렇다 할 외교적 성과를 내세울 것이 없는 데다가 노벨 평화상을 받고 싶어 안달하는 것도 눈치챘다. 안전보장회의도 피하면서 '평화'만 되뇌는 문재인 대통령은 아예 안중에도 없을 것이다. 김은 칼자루를 자신이 쥐고 있다고 보고 미국을 밀어붙여보는 것이다.

북의 SLBM 발사에 대해 미국은 일단 "현지 동맹국들과 긴밀하게 대응을 협의하고 있다"는 원칙적인 입장만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SLBM까지 "별것 아니다"라고 해버리면 북의 도발 행동반경은 결정적으로 넓어진다. 대북 제재도 약화될 것이다. 미국이 자신에 대한 ICBM급 위협도 눈감아 줬는데 어느 나라가 북의 도발을 문제 삼겠나. 미국이 북의 SLBM을 용인하면 북핵도 똑같은 코스를 밟아갈 것이다. 북핵 폐기의 실낱같은 가능성도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한반도 운명이 어두운 갈림길로 접어들게 될 것 같은 불길한 조짐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0/02/201910020279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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