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하노이회담 결렬의 서운감과 배신감을 위기 고조로 표출
김일성·김정일도 못한 한미훈련 영구 중단 엿보여… 우리 대책은 무엇인가
 

태영호 前 북한 외교관
태영호 前 북한 외교관

20일 열흘간의 일정으로 진행된 하반기 한·미 연합훈련이 종료되었다. 누구나 훈련이 끝났으니 김정은의 '새벽 미사일 공세'도 잠잠해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 본다. 훈련 기간 많은 사람이 필자에게 김정은의 미사일 공세가 미·북 협상 재개 전에 밀렸던 미사일 실험을 다 해치우자는 군사적 목적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김정은 개인의 즉흥적인 결심에 따른 것인지 물어보았다.

대부분의 사람이 김정은에게 대미·대남 전략 같은 것이 있다면 자기를 도와주려는 문재인 대통령과 손발을 맞추어 현 난국을 빨리 타개해 나가는 것이 상식일진대 미사일을 계속 쏴대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문 대통령을 향해 입에 올리기에도 거북한 막말, 험담을 쏟아내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김정은은 하노이 회담 결렬을 통해 느낀 '서운감과 배신감에 대한 강한 분노'로 군사적 긴장 고조를 표출시키는 '미친놈 전술'을 쓰면서 내심으로는 이번 기회에 한·미 연합훈련 자체를 완전히 종식하기 위해 한 발 한 발 다가가고 있다.

김정은의 이러한 치밀한 계산과 비교하면 오히려 우리 쪽이 앞으로 한·미 연합훈련이 계속될 경우 대결 원점으로 돌아갈 남북 관계와 '롤러코스터'처럼 위기와 평화의 냉·온탕을 왔다 갔다 할 한반도 정세를 어떻게 관리해 나갈지 명백한 대안이 없어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돈이 많이 드는 한·미 연합훈련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미국도 한·미 군사동맹을 점점 거래 대상으로 간주하는 행태가 잦아지고 있다.

한국 내에서도 방위비 인상, 호르무즈해협 파병,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 배치 문제에서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말아야 하며, 이런 한·미 간 입장 차이 때문에 한·미 동맹의 재조정은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심지어 문 대통령 임기 내에 전작권 이전을 완결 지으려면 전작권 이전의 필요한 사항을 점검하는 한·미 연합지휘소 모의훈련도 생략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김정은도 한·미 사이에 날로 약해지고 있는 컨센서스를 들여다보면서 미·북 협상에 한국이 '기웃거리지 말라'고 일침을 놓고 있다. 할아버지·아버지대에도 이루어 내지 못한 한·미 연합훈련 영구 중단의 문어귀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와중에 훈련 종료 시점에 맞추어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한국을 방문, 미·북 실무협상이 재개될 것이라는 희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하노이 회담 결렬 후 김정은은 미·북 협상의 컨트롤타워에 외무상 이용호를 앉혔다. 이용호는 1994년 제네바 미·북 핵협상 시 북한을 NPT(핵확산금지조약)로부터 먼저 탈퇴시켜 긴장을 고조시킨 후 탈퇴 효력을 잠정 중지하는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경수로를 받아내고 청구서는 한국으로 보낸 '제네바 딜'을 성공시킨 협상의 달인이다.

트럼프-폼페이오-비건으로 구성된 미국팀과 김정은-이용호-최선희-리태성으로 이어지는 북한팀 사이에 새로운 협상이 바야흐로 시작될 것이다. 협상이 시작되면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에서와 판문점 회동에서 약속한 대로, 남북이 판문점 선언과 9·19 남북 군사합의에서 합의한 대로 모든 한·미 연합훈련을 중지할 것을 요구하면서 훈련이 계속되는 한 비핵화 협상은 한 걸음도 진전되지 못할 것이라고 빗장을 걸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 정부와 미국은 한·미 연합훈련이 4·27 판문점 선언과 9·19 남북 군사합의, 싱가포르 합의에 위반인지 아닌지 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9·19 합의 위반은 아니나, 취지에는 어긋난다'고 하고 있다. 결국 현시점에서 한·미 사이에 연합훈련에 대한 정립된 정책적 입장이 없어 보이는 것이 문제이다.

한·미 연합훈련 종료를 앞둔 19일 문 대통령은 '남북문제를 유리그릇 다루듯 다루라'고 하면서 "대화에 도움이 되는 일은 이행하고 방해가 되는 일은 줄여가는 상호간의 노력까지 함께해야 대화의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미 연합훈련도 대화에 방해되는 일이어서 다음 해부터 훈련 자체가 완전히 없어지게 되는 것은 아닌지, 만일 훈련이 계속된다면 북한에 훈련의 당위성을 어떻게 납득시켜 평화와 화해의 흐름을 이어갈지 우리와 미국의 대안이 궁금하다. 남과 북, 미국과 북한 사이에 단거리 미사일 발사와 한·미 연합훈련과 같은 현행 군사 행동들에 대한 명백한 합의가 없이 지금과 같은 전략적 모호성으로 계속 나아간다면 남북 관계와 미북 관계는 언제나 대결 원점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8/20/201908200331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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