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식 교수 "대북정책 전환시키거나, 그게 안 되면 인질 삼겠다는 것...미온적 대응 인질되고 있음 보여줘"
"北, 트럼프와 직접 접촉 가능해지자 南 용도폐기했을 수도...희망사고로는 北에 계속 말 못하는 신세될 수 있어"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발언과 북한의 대남 비난 발언./조선일보DB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발언과 북한의 대남 비난 발언./조선일보DB

북한은 19일 박지원 의원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비판한 데 대해 "구역질이나 참을수가 없다"며 맹비난했다. 박 의원은 김대중정부 시절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1차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등 대표적인 대북 유화론자로 꼽히는 인물이다. 최근에는 고(故) 이희호 여사가 별세했을 때 판문점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보낸 조화를 김여정에게서 받아오기도 했다. 그런 박 의원을 북한이 원색적 표현을 쓰며 비난한 것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한이 문재인 대통령에 이어 선대(先代) 수령인 김정일과 돈독한 관계로 알려진 박 의원까지 격하게 비난하고 나온 것을 두고 국제 사회의 대북제재에 묶인 한국의 대북정책 변화를 압박하는 한편, 한국 내 유화론자들을 사실상 인질로 삼으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날 페이스북에서 "최근 북한이 문재인 정부와 문 대통령에 대한 비난·조롱에 이어 대표적인 대북 온건론자인 박 의원을 꼭집어 공개적으로 모욕하는 경우는 과거에도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대화와 협력에 우호적인 정부와 인사를 최대한 압박해서 대북정책 전환을 견인해내거나 그게 불가능하다면 심한 모욕과 조롱까지 견디게 함으로써 김정은의 영원한 인질로 잡아놓겠다는 심산"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참을 수 없는 모욕에도 문재인 정부와 박 의원이 북한에게 반응하는 방식은 두가지"라며 "북의 요구와 압박에 굴복해서 더이상의 모욕을 견딜수 없어서 과감하게 대북정책의 전환을 시도하거나 단호한 꾸중 한마디 못하고 그저 북한 눈치보기(만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오늘 문 대통령이 '대화를 해쳐선 안 된다'며 '천금같이 찾아온 대화국면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박 의원이 구린내·구역질· 배신·추태 등의 모욕에도 '북한의 심정을 이해한다'며 '그냥 웃어 넘긴다'고 한 것도. 김정은의 영원한 인질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김 교수는 이어 "북한의 이례적인 대남 비난 행태의 목적이 근본적인 대남전략의 전환의 결과일 수 있다"면서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시기처럼 북이 남북관계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북한이) 대화에 나선 것은 미국과의 협상을 성사시키기 위한 중개인으로서 (남한이)필요했던 것이고, 김정은과 트럼프가 직접 접촉이 가능해지면서 남북관계는 용도폐기된 것"이라며 "과거 남쪽에 의존했던 경제적 지원도 이젠 중국 등으로 대체가능해지면서 남북관계의 효용가치가 사라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북이 남북관계 자체에 큰 관심이 없는데 우리가 아무리 참고 인내하고 선의로 기다린들 손바닥이 마주치기 어렵다"며 "그저 대화가 될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적 사고만으로는 지금 북한의 대남비난에 대해 말 못하는 벙어리 노릇밖에 못할 것"이라고 했다.

김정봉 전 국정원 대북실장은 "북한의 대남 전략 변화는 권정근 북한 외무성 북미국장과 최근 조평통 대변인의 담화를 통해서도 감지된다"고 했다. 권정근과 조평통 담화를 통해 북한이 더이상 남측과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밝혔고, 그 원칙에 따라 행동하고 있는 것이란 주장이다. 김 전 실장은 "김정은은 지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만 설득하면 남북관계도 다 풀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굳이 제재에 묶여있는 남측과 대화를 해봤자 별볼일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번에 박 의원을 직접적으로 겨냥한 것은 박 의원이 김정은이 지도한 미사일 실험을 직접적으로 언급했었기 때문일 것"이라면서 "북한으로선 최고 영도자가 비판받는 것에 대해 반격을 안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박 의원은 지난 17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고(故) 정주영 회장님의 고향인 통천에서 북한이 미사일을 2회 발사한 것은 최소한의 금도를 벗어난 것"이라며 "남북교류를 위해 소 떼 방북과 평양에 정주영체육관을 건설해 주신 정주영 회장님 상징성을 생각하더라도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선중앙통신은 19일 '혓바닥을 함부로 놀려대지 말아야 한다'는 제목의 논평에서 "마치 자기가 6·15시대의 상징적인 인물이나 되는 것처럼 주제넘게 자칭하는 박지원이 이번에도 설태 낀 혀(혓)바닥을 마구 놀려대며 구린내를 풍기였다"며 "다시는 우리와의 관계를 망탕 지껄이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박 의원은 조중통의 논평에 대해 "북한의 심정을 이해한다"면서 "그럴 수도 있으려니 하고 웃어 넘긴다"라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8/19/201908190234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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