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출신 김규민 감독 작품… 국내 배급사들이 문전박대, 해외 영화제서 먼저 선보여
"그나마 개봉이라도 하게 돼 다행… 초반 관객 많아 상영관 늘었으면"
 

김규민 감독
김규민 감독

"여러분의 관심이 상영 기간과 상영관 숫자를 늘리는 큰 힘이 됩니다. 부디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나지 않게 해주세요."

탈북민 출신 김규민(45) 영화감독은 요즘 아침에 일어나면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에 이런 글을 올리는 걸로 하루를 시작한다. 8월 15일 개봉하는 영화 '사랑의 선물(The Gift of Love)'을 홍보하기 위해서다.

영화는 북한 상이군인 아내가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자식을 위해 몸을 팔고 빚을 지는 실화(實話)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1974년 황해북도에서 태어나 줄곧 자란 김 감독이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시기에 보고 들은 이야기다. 김 감독은 2000년 탈북해 2006년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 촬영 현장에서 월 40만원을 받으며 영화를 배웠다. 2011년 북한 기아 상황을 담은 '겨울 나비'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했다.

'사랑의 선물'은 2년 전 촬영을 마쳤고, 이미 해외 여러 국제영화제에서 수준을 인정받았다. 작년 9월 영국 독립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미국 영예의 영화제에서 '사회·정의·해방 특별상'을 받았다. 올해 4월엔 퀸즈국제영화제에서 배우 김소은씨가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해외 관람객들이 "북한의 참상에 관한 이토록 강력한 영화는 없었다" "받아들이기 힘든 비극" 등 찬사를 보냈다.
 
1990년대 후반 식량난이 북한을 덮쳤던 시기 북 주민의 실상을 담은 영화 ‘사랑의 선물’.
1990년대 후반 식량난이 북한을 덮쳤던 시기 북 주민의 실상을 담은 영화 ‘사랑의 선물’. /한마음프로덕션

하지만 국내 개봉이 일주일도 남지 않은 현재 이 영화가 확보한 스크린은 단 2개. 김 감독은 "그나마 개봉이라도 하는 게 어디냐"며 "엎어지면(상영관을 못 구하면) 유튜브에 무료로 공개하려 했다"고 말했다.

이유가 있다. 촬영 과정부터 녹록지 않았다. 2017년 3월 대통령 탄핵으로 정치 환경이 급변하면서 투자자가 등을 돌렸다. 약속된 5000만원이 날아갔다.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3800만원을 메웠다. 그러자 이번엔 일부 배우가 출연 포기를 선언했다. "이런 작품을 찍으면 진보 정권에서 활동이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촬영을 끝낸 후 배급사 6곳을 찾아갔지만 번번이 문전박대당했다. 2011년 첫 작품을 30개 스크린에 걸 때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영화계 관계자들은 "지금 이 시국에 왜 그런 영화를 만들려 하느냐" "분위기 알지 않느냐"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한 극장 사장은 "우리는 그 영화 걸면 망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작품이 해외부터 돌았던 이유다. 김 감독은 "국내 개봉 첫 일주일간 어느 정도 관객을 유치해야 상영 기간과 개봉관 수를 늘릴 수 있다"고 했다. 김 감독은 영화 제작만으로는 가족을 부양할 수 없어 평일엔 공사 현장에서 목수로 일하거나 청소기 조립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두 딸의 만류에도 10년 넘게 북한 인권 영화 제작에 매달리는 이유를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많은 이들이 '고난의 행군'을 기억하지만 아무도 기록하지 않습니다. 먼저 자유를 얻은 목격자로서 사명감이 막중해요."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8/09/2019080900250.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