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경제 개혁을 3대 세습 기득권 보호라는 정치 논리로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본질적인 개혁·개방이 불가능한 구조가 됐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국가정보원 1차장을 지낸 한기범<사진> 북한연구소 석좌연구위원은 7일 펴낸 책 ‘북한의 경제개혁과 관료정치'에서 이 같은 '3대 세습 기득권 보호'를 ‘비핵화 문제’에 대입할 경우, 비핵화 문제도 경제 개혁과 같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책은 북한연구소(소장 정영태)에서 펴냈다.

한 전 차장은 "우리 정부가 어떤 대북 정책을 구사하던 북한 정권이 개혁·개방을 회피해가는 전략에는 큰 변함이 없었다"며 "북한의 개혁개방 지체는 내부 정책 결정 체계에서 뭔가 해보려면 끌어내리는 세력이 강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그들의 완고한 정치 논리가 변화 거부를 뒷받침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책에서 북한의 관료정치 현상을 이중구조론에 대입해 분석했다. 각급 조직들과 권력층 인물들은 공포정치 영향으로 겉으로는 순응하나 각자 생존을 위한 투쟁을 치열하게 전개하고 있으며 지도자의 장악력이 떨어지면 관료정치는 파벌정치로 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11년 ‘획기적인 경제개혁 주문’한 김정은, 9개월 뒤엔 ‘경제개혁 주장 씨까지 파내라’ 돌변

한 전 차장은 책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집권 첫해인 2011년 ‘12·28담화’를 통해 과감한 경제개혁을 주문했다가 9개월 만인 2012년 ‘9·29담화’를 통해 전격적으로 철회하는 ‘변덕’을 부렸다고 지적했다.

한 전 차장에 따르면 김정은은 부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례를 치른 날인 2011년 12월 28일 "경제간부들이 어떤 의견을 낸다고 자본주의 방법이라고 ‘걸각질’(시비걸지)말라"며 ‘사상해방’에 가까운 발언을 했다.‘걸각질’은 함경북도 토속어로 ‘말썽을 피우다’는 의미가 있는데 내각의 경제개혁 정책을 당에서 뒷다리 잡지 말라고 경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한 전 차장은 "선대(김정일 시대)에도 경제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섰다가 숙청·처형을 경험한 경제 간부들의 소극성을 우려해 힘을 실어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12·28담화’로 북한에선 2008년 이후 불가능해 보였던 경제개혁 의제가 4년 만에 부활했다. 2012년 초엔 경제개혁을 위한 ‘내각 상무조’가 구성되기도 했다. 김정은은 이들의 제의서를 집중적으로 살펴본 뒤, 그해 4월 공개적으로 "다시는 인민들의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장이라도 개혁·개방을 추진할 것 같았던 김정은의 입장은 9개월도 안돼 돌변했다. 김정은은 2012년 ‘9·29담화’를 통해 "중국식으로 가자고 허튼소리하지 말라"면서 "당의 경제정책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 더 이상 시비하지 말라"고 했다. 심지어 "(경제개혁 주장에 대해)벌초할 것이 아니라 씨까지 파내어 제거하라"고 했다. 두달 뒤엔 당·경제 간부를 대상으로 진행한 ‘사상총화’에서 "잡소리를 계속하면 사상적 변질이나 배신으로 간주하겠다"는 섬뜩한 경고성 발언도 나왔다.

김정은의 경제개혁 의지가 9개월 만에 후퇴한 것에 대해 한 전 차장은 "김정은이 처음에는 순진한 마음으로 인민생활 향상에 대한 책임감을 느껴 파격적이고 대담한 경제개혁을 주문했다"면서 "리영호 총참모장 숙청 사건을 겪으면서 경제개혁에 대한 입장이 부정적으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내각 중심의 경제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 군부의 경제 이권을 내각으로 넘기는 것을 총참모장 리영호가 반대하면서 경제개혁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김정은의 경제개혁 의지에 밀려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노동당이 리영호 사건을 계기로 경제개혁의 부작용을 김정은에게 주입시켰다고 한다. 경제개혁에 대한 김정은의 입장이 부정적으로 바뀌면서 그의 이후 움직임은 경제에서 공포통치와 핵·미사일 개발 집중으로 이어졌다.

◇공포정치와 핵·미사일 개발에 집중된 국력…경제는 후순위로 밀려

2013년말부터 2014년, 2015년에 이르는 2년여 기간 김정은의 공포정치는 극에 이르렀다. 이 기간 처형된 간부는 130여명에 이를 정도다. ‘국가전복 음모’에서 '지도자 권위 무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사유로 간부들이 처형됐다. 특히 자신의 고모부인 장성택을 처형한 것을 기점으로 김정은의 숙청은 횡포화됐다고 한 전 차장은 밝혔다.

김정은은 2012년 1월 김철 인민무력부부장, 5월 박용무 서기실 과장, 7월 리영호 총참모장을 숙청했다. 2013년 11월~12월엔 장성택을 비롯해 이용하, 장수길, 백용철 등 30명을, 2014년엔 박춘홍·김근섭 당 부부장 등 36명을 처형했다. 2015년엔 조영남 국가계획위 부위원장,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최영건 부총리, 임종추 보위부 부부장이 처형됐다. 특히 이 해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넷째 부인으로 알려진 김옥 서기실 서기도 숙청된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엔 김용진 내각부총리, 2017년엔 보위부 부상 등 5명이 처형됐다.

한 전 차장은 "김정은은 집권 초기에 테러에 의존하여 정치적 도전 여지를 제거함으로써 부족한 권위와 카리스마를 극복했다"면서 "이는 존경받기 보다는 두려운 존재가 되라는 마키아벨리의 충고에 충실했다"고 분석했다. 김정은이 ‘애숭이 지도자’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가장 센 부하들을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처벌함으로서 권력층 내 도전 가능성을 봉쇄하고 기강을 잡았다고도 했다.

공포통치의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는데 김정은의 리더십에 이의를 제기하는 현상들이 없어졌다. 김정은 지시에 토를 다는 현상들도 사라지고, 김정은을 신성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고 했다. 언제 누가 밀고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간부들은 "정책에 실패하면 살아도 의전에 실패하면 죽는다"는 것을 충분히 학습했다고 한다.

◇김정은 실리 추구하면서도 경제 전반에 대한 노동당 지도 강화

한 전 차장에 따르면, 김정은은 2013년 3월 병진노선의 선포와 12월 장성택 숙청은 경제개혁 추진 분위기를 더욱 위축시켰다. 또 경제확대 재창출 구조를 악화시켰으며 민생향상에 대한 기대감도 후퇴시켰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기왕에 착수한 ‘우리식경제관리방법’ 연구는 지속했다. 또 개별 기업에 경영권을 부여하면서 생산책임을 주는 ‘5·30담화’를 발표했다. ‘5·30담화’는 경제문제에서 ‘실리추구’를 강조하면서 내각 책임제를 강화하는 한편 경제문제 전반에 대한 노동당의 지도를 강조함으로서 절충주의를 선택한 반쪽짜리 개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김정은이 경제개혁 담론을 내세웠다가 후퇴한 것은 김정일 시기와 비교해도 그 기간이 짧은 데다 내용도 부실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정일은 10년간 경제개혁 담론을 제시하고 추진한 반면 김정은의 개혁담론 논의는 9개월에 그쳤다. 과거 김정일이 경제개혁을 담당한 박봉주 내각총리에게 인사권과 검열권 등을 부여했다면 김정은은 총리에게 실권을 주지 않았다. 김정일이 내각에 경제개혁을 전담시켰다면 김정은은 ‘내각 상무조’와 별도로 ‘당 전문기구’를 병설해 견제했다.

한편 한 전 차장은 "김정은이 2018년 4월 경제건설에 총력 집중을 새로운 전략노선으로 선언했는데 이는 핵·미사일 집중 개발 입장에서의 후퇴를 과시하기 위한 선전 차원의 조치인 측면도 있으나 공급 부족 누적 상황에서 경제 제재의 가중으로 경제 동원이 불가피한 처지가 도래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8/08/201908080096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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