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무력 협박]
무기구입·방어훈련까지 간섭, '南北군사합의'가 우리軍 족쇄로
美는 빼고 南만 비난… 실무협상 대비, 서울 흔들어 워싱턴 압박
 

북한 관영 매체들이 26일 공개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대남 경고와 위협에 정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김정은이 전날 무력시위를 대남용으로 못 박은 것도 이례적이지만,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해 "이중적 행태" "자멸적 행위" 등의 자극적 표현을 쓴 것은 예상을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그만큼 북한이 문재인 정부를 만만하게 여긴다는 얘기"라며 "북한에 올인하는 대외 정책을 고집해온 대가를 비싸게 치르고 있다"고 했다.

◇"김정은, 만만한 南을 두들겨 패"

북한은 작년 김정은의 신년사와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계기로 남북 대화 국면이 조성된 이후 한동안 대남 비난을 자제했다. 우리 정부에 '충격'을 안긴 김정은의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지난 4월 12일)은 이런 상황에서 나왔다. 당시 김정은은 문재인 정부를 향해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후 강도를 높여가던 북한의 대남 비난은 지난달 30일 전격 성사된 남·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을 계기로 중단된 듯했지만 이달 중순부터 재개됐다. 북한이 문제 삼은 것은 F-35A 스텔스 전투기 도입과 8월로 예정된 한·미 연합훈련이었다.
 
이미지 크게보기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5일 북한군 간부들과 함께 신형 단거리 탄도미사일의 발사 장면을 모니터로 보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이 한·미 연합훈련 등에 대한 '경고' 의미로 신형 미사일의 '위력 시위 사격'을 직접 조직·지휘했다고 26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김정은이 25일 문 대통령을 겨냥해 "위력(무력)시위 사격 소식과 함께 알린다"고 명시한 것도 첨단 무기 도입과 군사훈련 중단 요구였다. 예비역 장성 A씨는 "한·미 연합훈련을 하면 북한도 맞대응 훈련을 해야 한다"며 "경제난 극복을 위해 인민군 병력을 건설 현장에 동원하고 있는데 한·미 훈련을 한다니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전직 정보기관 고위 관계자는 "제재 장기화로 인한 정권 핵심층의 사기 저하와 불만이 상당하다"며 "김정은이 이들을 달래기 위해 만만한 한국을 두들겨 패고 있다. 그래도 문재인 정부가 크게 반발하지 않을 것으로 확신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북한 입장에선 문재인 정부가 훈련을 연기·축소하는 게 최선이지만, 예정대로 훈련이 이뤄져도 내부 불만을 해소하는 소재로 활용할 수 있단 것이다. 실제 군 안팎에선 "정부가 북한의 불만을 의식해 8월 훈련의 일정이나 규모를 조정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족쇄가 된 9·19 군사합의

김정은은 "남조선 당국자들이 세상 사람들 앞에서는 '평화의 악수'를 연출하며 공동선언이나 합의서 같은 문건을 만지작거리고 뒤돌아 앉아서는 최신 공격형 무기 반입과 합동 군사연습 강행과 같은 이상한 짓을 하는 이중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했다. 우리 군의 무기 도입과 훈련을 '남북 합의 위반'으로 몰아간 것이다.

이를 두고 군사 전문가들 사이에선 "'9·19 남북 군사 합의'가 우리 군에 족쇄로 돼 버렸다"는 말이 나온다. 전직 안보부서 관계자는 "북한이 한국의 무기 도입, 방어 훈련도 자신들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며 "9·19 군사 합의가 우리 군을 무장해제시킬 판"이라고 했다. 우리 군의 무기 도입을 비난한 김정은은 정작 자신들의 무기 개발에 대해선 "급선무적인 필수 사업" "당위적 활동"이라고 했다.

◇한국은 '인질', 결국 對美 메시지

북한은 '하노이 노딜' 이후 우리 정부의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방역 제안을 거부하고, 식량 지원도 걷어차는 등 대화의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 지난 23일 신형 3000t급 탄도미사일 발사 잠수함 공개에 이어 25일 이스칸데르급 신형 미사일을 쏘는 등 군사 도발 수위도 급격히 끌어올리고 있다.

북한이 이처럼 도발의 수위를 높이는 것을 두고 외교가에선 "북한의 도발은 표면적으로 한국을 향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대미 압박 메시지"란 분석이 나온다. 미국이 비핵화와 제재 문제에서 양보하지 않으면 도발의 강도를 높여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을 난처하게 할 수 있다는 경고란 것이다. 전직 고위 외교관은 "북한이 아직은 미국과 본격 대화에 나설 때가 아니라고 보고 한국을 인질 삼아 미국에 압박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다"고 했다. 최진욱 전 통일연구원장은 "북한이 최근 한·일 갈등으로 한·미·일 공조가 이완되며 한국이 외교적으로 고립됐다고 판단하고 그 틈을 파고들었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7/27/2019072700110.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