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 무대가 돼가는 DMZ… 양쪽 가르는 단순한 선 아닌 北 퇴행적 전체주의에 맞서
南 대성취 담보한 자유의 방파제… 북핵으로 군사분계선 무의미
DMZ 평화, 북 비핵화돼야 온다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철조망은 1860년대 프랑스에서 농장의 울타리 재료로 처음 등장하였다. 특히 남북전쟁 이후 미국에서 가축의 통제와 관리를 위한 용도로 인기가 높았다. 호주의 미술사가(美術史家) 앨런 크렐에 의하면 인류가 발명한 수많은 형태의 경계물 가운데 '효율적인 지배와 소유를 위한 도구'로서 철조망만 한 것은 일찍이 없었다. 적어도 20세기까지는 말이다. 세계대전 및 냉전과 더불어 철조망이 국가 간 갈등의 상징으로 부상한 것은 이런 연유다. 남북한을 나누는 DMZ 역시 핵심 구조물은 155마일 철책선이다.

오는 7월 27일, 1953년 '한국군사정전협정'에 의해 설치된 DMZ가 66주년을 맞는다. 최근 DMZ는 세계적인 핫플레이스(hot place)로 주목받고 있다. '4·27 판문점 선언'이나 트럼프·김정은 '번개 회동'은 모두 DMZ 한복판에서 벌어진 일이다. 대북 포용 정책에 발맞추어 우리 사회에는 'DMZ 러시' 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다. 정부 내 모든 주요 부처나 조직은 물론이고 전국의 웬만한 지자체들도 줄줄이 'DMZ 바라기'가 되어간다. 쏟아지는 나랏돈을 좇아 학계나 연구기관, 시민사회, 문화·예술단체들 또한 연일 DMZ 관련 프로젝트요 콘퍼런스며, 페스티벌이요 퍼포먼스다.

이처럼 DMZ가 무슨 국운(國運) 융성의 노다지라도 되는 양 들떠 있는 시대 분위기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에 대한 답변은 오늘날 우리에게 DMZ는 과연 무엇으로 존재하는가를 묻는 근원적 질문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DMZ는 한국전쟁의 정전 상태를 나타내는 군사분계선이자, 남북한 두 국가 사이에 존재하는 사실상의 국경선이다. 그러므로 태생적 기원을 따지자면 DMZ는 민족의 분단과 민족사의 단절을 상징하는 비극적 경계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식의 '민족주의' 담론이 DMZ의 총체적 진실은 아니다.

DMZ는 단순한 경계선의 의미를 넘어선다. 남북한을 지리적으로 구분하기 위해서라면 굳이 DMZ가 필요 없다. 남북이 다른 나라, 그것도 완전히 다른 나라라고 하는 사실은 DMZ가 아니라 DMZ 양쪽의 대조적 풍경이 온몸으로 웅변하기 때문이다. DMZ라는 선(線) 대신 풍경이 국경인 것이다. 독일의 미술사가 마르틴 바른케에 따르면 '모든 풍경은 정치적 풍경'이다. 정치적 선택이나 역학 관계, 의미 부여에 따라 풍경은 다르고 또 달라진다는 뜻이다. 한반도 야경(夜景) 위성사진 한 장이면 삼척동자라도 남한과 북한을 정확히 구별해 낼 수 있는 게 이를 증명한다.

미국의 경제학자 애스모글루와 로빈슨은 국부와 국력의 불평등이 '제도' 차이에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같은 문화와 언어를 갖고 오랜 단일민족의 역사를 자랑해 왔던 한반도 사람들의 운명이 확연히 갈린 것은 분단과 전쟁 이후 남북한이 서로 다른 제도를 도입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택했던 남한과 독재정치와 통제경제를 택했던 북한은 처음부터 현재의 예정된 미래로 나아갔을 뿐이다. 이는 원래 하나였던 노갈레스(Nogales)시가 미국·멕시코 전쟁 직후 미국 쪽 애리조나주 노갈레스와 멕시코 쪽 소노라주 노갈레스로 나뉘면서 천양지차의 두 도시로 재탄생한 것과 비슷하다.

요컨대 DMZ는 분단의 질곡이나 민족의 고통을 말하기에 앞서 남한의 풍요와 북한의 빈곤을 너무나 극명하게 대비시키는 미장센(mise-en-sc�]ne)이다. 그렇다면 DMZ는 근대와 중세를 식별하고 개화와 미망을 판별하는 일종의 문명사적 경계로 재인식되어야 한다. 북방의 퇴행적 전체주의적 세력에 맞서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대성취를 담보한 자유의 방파제로 재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세계사적 기적은 DMZ를 지키는 유엔사(司)가 있고, 주한미군이 있고, 우리나라 국군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만큼 요사이 DMZ를 둘러싸고 갑자기 넘쳐나는 관제(官製) '평화' 담론은 불안하고 불길하다. 전통적으로 대한민국에 대한 안보 위협은 대개 DMZ로부터 나왔다. 하지만 북한의 핵무장에 따라 지금은 군사분계선으로서 DMZ가 차지하는 위상 자체가 원점에서 흔들리고 있다. 대한민국 전역이 북한의 '핵 인질'로 살아갈지 모르는 세상이 되었는데, DMZ 일대의 평화 '감성 팔이'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DMZ의 평화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이후에 찾아와도 늦지 않다. 그 언젠가 DMZ는 역사적 소임을 완수하며 한반도에서 명예롭게 퇴역해야 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7/22/2019072202718.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