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 고삐 풀리는 국경
 

안용현 논설위원
안용현 논설위원

지난 6월 시진핑 중국 주석의 방북 이후 북·중 국경 지역에서 대북 제재의 고삐가 풀리고 있다는 현지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랴오닝성의 한 소식통은 "작년 이맘때와 비교할 때 북·중 간 인적 및 물적 교류가 어떤 사람은 2~3배, 어떤 사람은 최대 5배 이상 늘어났다고 전한다"고 했다. 이어 "시진핑이 평양에서 '협력 심화'를 공언한 이후 북·중 주민 모두 제재 단속에 따른 불이익을 걱정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서방 국가와 달리 북·중에서 최고 지도자의 약속이나 지시는 반드시 지켜야 할 바이블과 같다. 이번 시진핑 방북에는 중국 실물 경제 책임자인 허리펑(何立峰)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주임과 중산(鍾山) 상무부장이 동행했다. "새로운 북·중 경협을 예고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제무역센터(ITC) 자료에 따르면 지난 5월 북한의 대중(對中) 수입은 약 2억5000만달러로 2017년 제재 본격화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북 수출도 슬금슬금 고개를 들고 있다. 선양·단둥·지안·옌볜 등지의 북한 소식통을 통해 북·중 국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봤다.

◇북 "중국 관광객, 하루 1000명"

단둥 소식통은 "신의주 당일 관광에 중국인은 여권 없어도 공민증(주민증)과 사진만 있으면 통행증을 발급받아 갈 수 있다"며 "중국 전역에서 국경으로 놀러 오는 중국인에게 북 단기 여행은 필수 코스"라고 했다. 북 관광은 유엔 제재 대상이 아니다. 신의주 반일짜리는 1인당 400위안(약 6만8000원), 하루짜리는 790위안, 신의주 인근까지 둘러보는 1박 2일은 1280위안이다. 북 유치원생이나 여성 악단 공연을 곁들인 식사가 제공된다. 숙소는 신의주에서 50㎞쯤 떨어진 동림군에 중국 자본이 세운 호텔(동림빈관)을 이용한다. 돌아올 때는 '봉사 센터'라고 하는 북한 면세점에서 술·담배 등을 구입한다. 최근 단둥 기차역과 터미널에는 신의주를 거쳐 평양·개성·묘향산·금강산으로 가려는 관광객들이 북적거린다고 한다. 침대 열차로 평양·금강산을 둘러보는 5일짜리 상품은 4380위안(약 75만원)이다.
 

北안내원과 찰칵… 애들 공연도 관광상품 - 북한을 찾은 중국 관광객이 북한 안내원과 함께 김씨 일가 초상화가 걸린 신의주 광장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위 사진). 아래 사진은 북한 유치원생들이 중국 관광객 앞에서 공연하는 모습이다.
北안내원과 찰칵… 애들 공연도 관광상품 - 북한을 찾은 중국 관광객이 북한 안내원과 함께 김씨 일가 초상화가 걸린 신의주 광장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위 사진). 아래 사진은 북한 유치원생들이 중국 관광객 앞에서 공연하는 모습이다. /단둥천마국제여행사

지난 4월 압록강 상류인 지안~만포를 연결하는 다리가 개통됐다. 지안 소식통은 "승용차나 버스로 만포 들어가는 길이 열리면서 신의주처럼 만포도 하루짜리 관광이 인기"라고 했다. 고구려 유적지가 많은 지안을 둘러보고 만포 시내와 6·25 때 김일성 임시 사령부였다는 고산진 유적지 등을 방문하는 코스다. '볼 게 있느냐'는 질문에 "북 국경도시들은 문화혁명 당시 중국 분위기를 연상시켜 중·노년층이 좋아한다"고 했다. 두만강 하류인 훈춘에도 북한 나선 특구로 여행하려는 사람이 몰리고 있다. 훈춘 소식통은 "올해 1월 훈춘에서 중국 관광객 100여 명이 얼어붙은 두만강을 걸어서 건넜다"며 "북·중 간 빙상 관광은 처음일 것"이라고 했다. 국경 지역에서 북한 관광 상품을 파는 여행사만 100곳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도 관광객의 휴대전화와 카메라 사용을 허용하는 등 여행 통제를 대폭 완화했다고 한다.

북한을 찾는 관광객과 관광 수입의 정확한 규모는 발표된 게 없다. 중국과 싱가포르 매체는 "북이 관광객을 연간 10만여 명 유치해 약 4400만달러를 벌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10만명이면 하루 274명꼴이다. 그런데 지난달 북·중 합자 여행사가 대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월 이전 하루 100명 수준이던 중국 관광객이 하루 1000명으로 급증했다"고 말했다. 중국 관광객이 하루 500명만 돼도 북 관광 수입은 예년의 2배가 된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올해가 북·중 수교 70년이자 중국 건국 70주년인 만큼 북한을 찾는 중국 관광객이 사상 최다를 기록할 것"이라고 했다. 관광 수입이 제재로 말라가는 북 외화에 단비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북 노동력, 개별로 흩어져 숨어
 

북한의 대중 수출액 그래프

선양 소식통은 "작년만 해도 북 노동자들은 북한 식당·공장 등에 단체로 모여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일반 중국 식당, 소규모 건설 현장 등에 뿔뿔이 흩어져 있어 실태 파악부터 어려워졌다"고 했다. 과거 북한은 해외 노동자를 단체로 관리했지만 노동력 송출이 유엔 제재 대상이 된 이후 단속을 피하려고 개별 취업을 허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북 3성 일대는 조선족, 탈북자, 합법 체류자, 북한에 살았던 화교 등이 섞여 있기 때문에 북한 노동자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올 12월 말까지 유엔 회원국은 북 노동자를 전부 추방해야 한다. 그러나 단둥 소식통은 "북 노동자가 학생 비자나 기술 교류생으로 일한다면 어떤 외국인이 적발할 수 있겠느냐"며 "농촌에 들어가 있으면 중국 정부도 못 찾는다"고 했다. 북 노동력은 동북 3성에서 인기가 높다. 월급은 1500위안 정도로 중국 노동자의 절반이지만 일솜씨는 더 뛰어나다고 한다. 월급 외에 하루 두 끼와 작은 철제 침대만 제공해도 불평 없이 일한다. 중국 내 북한 노동자 규모는 공개된 적이 없다. 올 들어 러시아만 해도 유엔 보고서에서 3만여 명이던 북 노동자가 1만1490명으로 줄었다고 밝혔지만 중국은 공개를 거부했다. 5만~8만명으로 추산되는 중국 내 북한 노동력이 유지되면 김정은은 연간 2억~3억달러를 챙길 수 있다.

◇중국 식당 곳곳에 '북한산 수산물'

최근 선양·단둥을 다녀온 기업인은 중국 식당에서 조개 등 해산물이 싱싱한 것을 보고 원산지를 물었더니 "북한"이라는 답을 들었다. 선양의 북한 식당도 수산물은 "조국(북한)에서 온 것"이라고 답했다. 북한의 수산물 수출은 2017년 12월 안보리 제재로 금지됐다. 중국 해관(세관)의 공식 통계에는 북한산 수산물 수입이 '0'으로 표시된다. 그러나 선양 소식통은 "수산물은 해상에서 '배떼기'로 밀수된다"고 했다. 심야에 단둥과 가까운 평북 철산군 앞바다에서 북한 배가 수산물을 넘기면 중국 배는 자기가 잡은 것처럼 유통한다는 것이다.

제재 전까지 북은 연간 1억5000만달러어치의 수산물을 중국에 수출했다. 대중 수출품 중 석탄·섬유에 이어 셋째 규모였다. 부피가 큰 석탄이나 내륙에서 만드는 섬유와 달리 수산물은 해상 밀수가 쉽고 원산지 구별도 불가능해 대북 제재의 '구멍'이 되고 있다.

20억달러 무역적자 본 北, 중국이 풀어준 '관광·노동자'로 5억달러 메울듯
10년만에 최대 적자에도 숨통

대북 제재로 2018년 북한의 무역 적자가 10년 만에 최고인 20억1000만달러(약 2조3580억원)에 이른 것으로 조사됐다. 수입은 23억1296만달러지만 수출은 2억9404만달러에 그쳤다. 북 수출 1~4위 품목인 석탄·섬유·수산물·철광이 모두 차단됐기 때문이다. 제재 본격화 이전인 2016년만 해도 무역 적자는 2억3199만달러에 불과했다. 올 1~5월 대중 무역 적자만 8억4000만달러다. 이런 통계만 보면 북 보유 외화는 곧 바닥을 드러낼 것처럼 보인다.

그동안 북한은 무역 적자를 관광 등 비상품 거래와 해외 노동자 이전 소득, 통계에 잡히지 않는 밀수, 중국 무상 원조 등으로 메워왔다. 안보리 대북 제재가 엄존하고 미·북 무역 전쟁 와중에 중국이 노골적으로 대북 제재를 위반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제재 대상이 아닌 관광을 늘려주고 수산물 밀수 등을 눈감아 주면 북한은 숨을 쉴 수가 있다. 북 노동자 추방 시한도 아직 5개월 남았다. 중국이 풀어준 관광·노동자·수산물 '3종 세트'로만 북은 연간 5억달러 이상을 충당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대북 제재가 느슨해지면 김정은이 핵을 포기하거나 비핵화 협상을 서두를 이유가 없어진다. 북은 16일 한·미 훈련을 꼬투리 잡아 "비핵화 실무 회담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위협했다. 제재 때문에 숨이 넘어갈 정도는 아니라는 얘기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7/18/201907180002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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