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호랑이가 일본 꿩에 소리쳤던 게 오랜 구도
이번에 거꾸로 꿩이 노호… 재발 막으려면 정치 리더십 중요
 

마이클 브린 前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한국, 한국인' 저자
마이클 브린 前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한국, 한국인' 저자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반도체 첨단 소재 수출을 규제해 한국을 당혹하게 했다. 일본을 상징하는 국조(國鳥)가 꿩이다. 우리는 한국이라는 호랑이가 일본이라는 꿩을 향해 화가 나 소리치는 구도에 익숙했다. 그런데 일본이라는 꿩이 한국이라는 호랑이를 향해 노호하는 구도가 되니,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이번 일에 대해 나는 낙관적이다. 일본의 조치는 한·일 양국 경제에 모두 해롭다. 무역 협상자들이 곧 해법을 찾을 거라고 본다. 다만 이제 일본이라는 꿩이 노호할 줄 알게 됐다. 앞으로 또 비슷한 행동을 하지 않을까? 그래서 한국이라는 호랑이가 자칫 고양이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해 양국의 갈등을 들여다보고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할 때가 아닐까.

외부인의 눈으로 보면, 한국과 일본은 자연스러운 동맹이고 비즈니스 파트너다. 문화가 다르고 국익이 다르지만 민주주의 국가로서 한·일은 같은 가치를 공유한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현대사에서 한 민주주의 국가가 다른 민주주의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시작한 적은 없다. 지난 역사가 아무리 피에 얼룩졌을지라도, 한·일 양국이 모두 민주주의 국가인 한, 양국이 교전할 일은 결코 없을 게 확실하다.

일본과 가까운 동맹 관계를 유지해야 할 또 다른 이유는 우리가 비상한 위협과 마주하고 있어서다. 한·일 모두 최대 무역 상대가 중국이다. 중국은 인류의 4분의 1을 충격적인 인권 개념으로 통치하고 있는 비(非)자유주의 국가다. 따라서 중국은 태생적으로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중국이 궁극적으로 민주주의 국가가 되려면 한·일은 하찮은 일로 다투는 걸 멈추고 홍콩·대만과 더불어 중국의 모델이 돼야 한다.

이럴 때 필요한 게 정치적 리더십이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 혹은 그의 후임자에게 두 가지 임무가 있다고 본다. 첫 번째 임무는 한·일 관계에 대해 비전을 제시하고 새로운 미래를 선언하는 일이다. 다만 한국 대통령들이 여론을 이끌기보다 대중의 감정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는 걸 감안하면, 어느 대통령이건 이 일은 못할 것이다.

두 번째 임무는 대통령이 지나온 역사를 쓸어버리는 혁명가가 아니라, 한국의 과거와 현재를 지키고 대표하는 위치에 서는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5년에 한 번씩 혁명가 대통령이 나올 순 없다.

나는 두 가지 사안을 염두에 두고 얘기하고 있다. 첫 번째는 1965년에 맺은 한·일 기본조약이다. 이 조약에 따라 일본은 식민지배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제공했다. 당시 한국 정부는 그 돈을 개인에게 분배하기보다 경제개발에 쏟는 걸 선택했다.

이건 위안부나 강제징용처럼 1965년 이후에 나온 여러 문제에 대해 정부가 국민에게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불가능한지 명쾌하게 설명하고, 별도의 기금을 조성해 대처해야 한다는 뜻이다. 일본이 그 기금에 기여하는 건 가능하다. 하지만 역대 정부는 국민의 비판을 받을까 두려워서 모호한 태도 뒤에 숨었다.

두 번째는 2015년에 맺은 한·일 위안부 합의다. 한국 정부가 이 합의를 버린 건 위험한 전례를 만든 것이다. 어째서 국민이 이 합의를 반기지 않는지 이해하지만, 외교 합의는 현재의 국익을 해칠 때만 파기할 수 있다.

또 한·일 관계에 대해 더 많은 토론이 필요하다. 일본을 가장 격렬하게 비판하는 이들이 식민 통치를 겪은 적 없는 이들이라는 데 나는 놀랐다. 현대 한국 사회의 반일 감정이 경험이 아니라 교육에 기초하고 있다는 뜻이다. 교육이 바뀌면 감정도 바뀔 수 있다.

북한과 관련해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다. 나는 현 정부 인사들이 충심으로 대북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본다. 그들은 북한에 친절하고 관대하고자 한다. 하지만 북한이 더 이상 위협이 아니라 약하고 궁하다면, 그때도 우리는 그들에게 친절할까?

북한은 우리에게 정치 보복 관행이 있다는 걸 안다. 우리가 역대 모든 대통령을 교도소에 보내는 걸 북한도 봤다. 한국 주도로 통일된 국가에선 그보다 얼마나 심한 일이 벌어질 것인가? 북한이 주도하는 형태로 통일하지 않는 한, 북한 지도부는 교도소에 가고 북한 국민은 통일 한국의 '상놈'으로 전락할 거라는 걸 북한도 안다.

만약 과거의 적에게 손을 내밀어 더 나은 무엇인가를 일구겠다는 바람이 정말로 우리에게 있다면, 한·일 관계에서 시범을 보이자. 우리가 다른 민주주의 국가와 과거사 문제를 풀지 못한다면, 대북 관계를 개선하려고 하는 노력도 북한 눈엔 '위협'으로 비칠 뿐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7/14/2019071402058.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