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평양남자 태영호의 서울 탐구생활]

북한과의 정상회담이 진행될 때마다 북한 기자들의 취재 모습이 화제다. 지난 6월 30일 미·북 정상회담 때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넘는 순간 북한 기자들이 다람쥐처럼 오가며 취재하는 모습이 언론의 눈길을 끌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의 판문점 '도보 다리' 단독회담 땐 북한 기자가 불쑥 김정은의 코앞까지 다가가 요리조리 카메라를 돌리다가 김정은이 나가라고 여러 번 손짓한 적도 있다. 다른 기자들이 들어와 그 기자를 데리고 나가는 사이 또 다른 북한 기자가 나타나 촬영을 계속했다. 결국 의전 담당자들이 북한 기자들을 철수시키면서 상황은 마무리되었다.
 
판문점서 분주하던 北기자들 '취재 경쟁'보다는 '충성 경쟁'
일러스트= 안병현

그날 네티즌 사이에선 최고 존엄의 지시를 어긴 그 기자들은 처형될 것이라느니, 목숨 걸고 취재하는 북한 기자들이야말로 진정한 언론인이라느니 별별 반응이 있었다. 그러나 북한 기자들이 보였던 모습은 취재 경쟁이라기보다는 '충성 경쟁'이다. 김정은 곁에 그렇게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북한 기자는 몇 명밖에 없다. 김정은이 직접 참석하는 행사를 '1호 행사'라고 하는데 노동신문사, 조선기록영화촬영소, 조선중앙통신사, 조선중앙방송위원회 기자 중에서 극소수만 현장 취재가 가능하다. 1호 행사 보도도 언론사별로 달리 보도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노동신문 '본사 정치보도반'에서만 보도할 수 있다. 김정은에게 최대한 접근하려는 것은 행사가 끝난 다음 김정은의 모습을 찍은 사진들을 기자별로 모아 놓고 누가 제일 잘 찍었는지 평가하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기자는 당에서 배치한다. 평양에 있는 주요 언론사 기자로 선정되려면 실력도 좋아야 하지만 출신 성분이 좋아야 한다. 취재 기자는 김일성종합대학이나 김형직사범대학 등 중앙대학 사회학부를 졸업해야 하고, 사진 기자는 영화연극대학 사진촬영학부 졸업생들이 대부분이다.

북한 기자들은 형식적으로는 한국기자협회와 비슷한 기자 단체인 '조선기자동맹'에 가입돼 있다. 조선기자동맹에서 기자 급수를 6급부터 1급까지로 정해 놓고 근무 연한과 능력에 따라 사정 시험을 쳐 급수를 준다. 급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칭호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에서 선전·선동 사업에 기여한 공로에 따라 '공훈기자'와 '인민기자' 칭호를 수여한다. 평양의 주요 언론사에서 기자로 30년 정도 근무하면 50대 후반이 되는데 그때면 국가로부터 3칸짜리 아파트를 배정받을 수 있다. 북한에서 항일 빨치산 1세도 퇴직하면 자가용을 받지 못하는데 인민 기자가 되면 일부는 자가용을 '선물'로 받는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때 노동신문에서 일하던 동태관, 량순 기자 부부는 '장군님과 쪽잠, 줴기밥(주먹밥의 북한식 표현)'이란 제목으로 된 칼럼을 써서 김정일로부터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영웅'이라 칭송받았다. 부부는 "장군님께서 나라의 긴장한 식량 사정을 해결하시려고 매일 현지지도의 차 안에서 쪽잠을 자고 줴기밥으로 끼니를 때우시고 있다"고 써서 주민들을 감동시켰다. 굶어 죽는 사람이 급속히 늘면서 김정일에 대한 불만이 많았는데 이 칼럼이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당시 나는 유럽에서 근무했는데 김정일이 수백만달러어치 사치품을 사들여가면서도 이 기사 하나로 주민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을 보면서 언론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인민기자 칭호를 받는 기자는 극소수다. 대부분 기자는 힘들게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 기자들처럼 북한 기자들도 일에 쫓겨 가정생활을 잊다시피 하고 산다. 남자가 기자생활을 하려면 금수저로 태어나든지 부유한 집 딸과 결혼해야 한다.

남한 기자들 눈에는 노동신문이 매일 같은 소리만 반복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당 선전선동부의 사전 검열에서 통과되면서도 새로운 내용이 담긴 기사를 계속 만들어 내는 일도 보통이 아니다. 어서 통일이 돼 북한 기자들도 쓰고 싶은 기사를 맘껏 쓰는 날이 왔으면 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7/12/201907120147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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