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칼럼
[김창균] 核은 그대로인데 뭐가 그리 '역사적'인가
조선  |  @chosun.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9.07.04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美대통령 월경, 韓美 정상 DMZ행… 남북미 회동까지 "史上 최초"
김정은 드라마 벌써 6번째인데 무대 바꿔가며 "새 역사" 감격
김정은이 역사책 기록될 일은 "한반도 핵구름 제거"뿐이다
 

김창균 논설주간
김창균 논설주간

트럼프의 판문점 이벤트를 지상파로 시청한 지인이 "과도한 의미 부여로 손발이 오그라들더라"고 했다. 유튜브로 찬찬히 되돌려 봤다. '역사적' '사상 최초' '극적인 장면' 같은 표현이 분 단위로 쏟아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비무장지대(DMZ)를 시찰하는 현장에 문재인 대통령 모습이 보이자 진행자는 "문 대통령도 함께 있네요"라며 흥분했다. 한국 대통령들은 DMZ를 수시로 드나들었고, 미국 몇몇 대통령도 다녀갔지만 한·미 대통령이 함께 방문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그래서 '역사적'이라는 것이다.

트럼프의 DMZ 방문은 앞섰던 클린턴, 부시, 오바마와 다른 역사성이 있다는 해석도 곁들여졌다. "역대 대통령들은 북한을 압박하러 갔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평화를 전하러 간 것이지요. 맥락이 전혀 달라요." 다른 진행자도 거들었다. "역대 대통령들은 국방색 재킷을 입었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양복 차림입니다. 메시지가 다르니까 복장도 달라지는군요." TV 화면에 '양복 차림 방문'이라는 친절한 자막까지 떴다.

'역사적' 장면의 정점은 트럼프가 공동경비구역(JSA) 군사분계선을 넘는 장면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때 문 대통령이 분계선을 넘는 장면을 보며 "멋지다"고 했었다. 이번에 판문점에 간 것도 그걸 따라 해 보고 싶어서였다. 트럼프가 분계선을 넘는 순간 진행자는 "미국 현역 대통령이 정전 66년 만에 북한 땅을 밟는다"고 했다. 트럼프는 1분 만에 김정은과 함께 분계선을 넘어 남쪽 구역으로 돌아왔다. '트럼프 대통령 월경 15시 37분' '북·미 정상 공동 월경 15시 38분'이라는 자막이 잇따랐다.

마지막 '역사적' 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남·북, 미·북 정상은 각각 만났었지만 남·북·미 정상이 한자리에 모이는 건 사상 최초라는 것이다. 그 '역사적' 만남은 어정쩡하게 이뤄졌다. 미·북 정상의 악수 장면은 포토라인을 정해 연출했고 두 사람의 대화도 통역을 통해 전달됐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합류하자 미·북 경호원들이 둘레를 에워싸고 언론의 접근을 막았다. 정상들의 대화 내용도 들리지 않았다. 이날 드라마의 주연은 미·북 두 정상으로 한정한다는 설정이 있었던 모양이다. 스포트라이트에 남이 끼어드는 걸 싫어하는 트럼프 아이디어였는지, 대한민국의 중재를 거부하는 북한 측 요구였는지 분석이 엇갈린다. 청와대는 미·북 대화를 촉진하려는 문 대통령의 속 깊은 배려였다는 해설을 흘려보내고 있다.

문재인,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과 각각 세 번씩 만났다. 등장인물과 주제가 겹치는 드라마를 벌써 6번이나 봤다. 그런데도 매 차례가 '역사적'이란다. 북한이 협상 때 비핵화 조치를 잘게 잘게 쪼개서 대가를 얻어내는 수법을 살라미 전술이라고 부른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과 만나는 장면을 잘게 잘게 쪼개서 의미를 부여한다. '역사적'의 사전적 의미는 "역사에 기록될 만한 중요한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의 남북 첫 정상회담, 미·북 정상이 처음 만난 싱가포르 회담은 '역사적'이라고 불릴 만하다. 그러나 그 후에 벌어진 남북 정상의 백두산 공동 방문, 미·북 정상의 판문점 회동은 그것이 처음 있는 일이라는 이유로 역사책에 담기지는 않는다. TV 시청자의 눈길을 잠시 잡아끌 뿐이다.

문 대통령은 2일 국무회의에서 "지난 일요일 판문점에서 미·북이 사실상 적대 관계를 종식하는 역사적인 장면이 있었다"고 했다. 미·북의 적대 관계가 정말 끝났다고 믿는다면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당장 핵을 내려놓으라고 요구해야 한다. 북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이유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때문이라고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12년 전, 문 대통령은 작년, 트럼프 대통령은 며칠 전 각각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그때마다 당사자들은 '역사적' 순간이라고 했다. 그래도 핵은 그대로 있다. 아니 그사이 오히려 확충됐다.

남·북·미 정상이 벌이는 비핵화 쇼를 못 미더워하는 사람들을 대통령은 "평화의 물길을 되돌리며 갈등과 대결을 부추기는 세력"이라고 불렀다. 판문점 이벤트가 '역사적'이라고 보이지 않으니 필자도 그런 무리인 모양이다. 김정은이 역사에 기록될 방법은 하나뿐이라고 믿는다. 북핵을 진짜 폐기하는 거다. 사반세기 동안 한반도를 짓눌러온 핵 구름이 걷힌다면 필자도 기꺼이 '역사적 순간'이라고 부를 것이다. 그때 진짜 평화가 온다. 그 물길을 되돌리려고 갈등과 대결을 부추길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7/03/2019070303292.html

조선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  Tel : (02)724-6650,6523  |  E-mail : nkchosun@chosun.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SITE_MANAGER
Copyright © 2013 NK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Contact webmaster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