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9년 6월 30일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노동신문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9년 6월 30일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노동신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회동을 한 직후 미 정부가 핵 동결(nuclear freeze)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핵 협상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다는 관측이 미 언론에서 제기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과 만난 뒤 비핵화 실무 협상을 2~3주 내에 재개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들은 핵동결 시나리오 검토설을 강력 부인했지만, 실무 협상에서 '핵동결' 시나리오가 테이블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국내·외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각) '새로운 협상에서 미국이 북핵 동결에 만족할 수도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번 판문점 회동이 있기 몇 주 전부터 트럼프 행정부 내에선 미·북 협상의 새로운 기반이 될 수 있는 '진짜 아이디어'(real idea)가 구체화됐다고 보도했다. NYT는 이 아이디어의 개념이 '핵 동결', 즉 핵물질과 핵무기를 더이상 생산하진 않지만, 현재 보유한 핵무기의 보유는 암묵적으로 인정해주는 것이라고 전했다.

NYT는 트럼프 행정부가 공식적으론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제시하고 있지만 북한에 핵 프로그램에 대한 '항복'을 요구하는 것이 가까운 시간 내에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새로운 접근법을 저울질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NYT는 "이런 방안은 북한의 핵무기 증대를 막을 수는 있지만, 가까운 미래에 20∼60개로 추산되는 현존하는 무기를 폐기하지 못한다"면서 "북한의 미사일 능력도 제한하지 못한다"고 했다.

NYT는 올 초에도 '트럼프 행정부가 핵동결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NYT는 지난 1월 20일(현지시각) 미·북 협상과 관련 당국자의 발언을 인용해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북한이 핵연료(nuclear fuel)와 핵무기 생산을 동결할 지 여부를 놓고 미국과 북한이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트럼프 행정부, '핵동결' 보도 부인했지만

NYT의 보도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는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가 최종 목표라면서 보도 내용을 전면 부인했다. 비핵화 협상 미측 실무협상 대표인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순전한 추측"이라며 선을 그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도 트위터를 통해 "나를 포함해 어떠한 NSC 참모도 북한의 핵 동결에 만족하는 어떠한 바람에 대해서 논의하거나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미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도 "우리의 목표는 여전히 북한에 대한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라면서 "우리는 현재 어떠한 새로운 제안도 준비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실제 '핵동결'을 미·북 협상의 핵심 의제로 삼을 것이란 관측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동결'은 북한 비핵화의 최종 목표는 아니더라도 비핵화 과정에서 밟아야 하는 단계 중 하나인 것은 사실이다. 이 때문에 미국이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에서 1단계로 '영변 + α(비밀 핵시설)'의 동결을 약속받고, 북이 하노이 회담에서 요구한 '민간 분야 대북 제재 해제'를 내줄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미 고위 당국자는 지난 2월 하노이 회담을 앞두고 진행한 '전화 브리핑'에서 '하노이 회담의 우선순위 과제'로 대량살상무기(WMD)와 미사일 프로그램 동결을 제시하기도 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지난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궁극적 목표는 어떠한 핵무기 공격으로부터 미국을 보호하는 것이며, 또 그 위험을 축소시켜 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FFVD를 추구하고 있지만, 그 이면엔 '미국에 대한 안보 위협 제거가 최우선 과제'라는 생각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 측면에선 '핵 동결'도 100%는 아니어도 미국이 용인할 수 있는 카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대북 강경파인 볼턴 보좌관을 배제하고, 미 국무부가 ‘핵 동결’ 시나리오를 주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 방한에 동행했던 볼턴 보좌관은 지난달 30일 청와대 한·미 정상회담에는 참석했지만 몇시간 뒤 열린 판문점 미·북 정상회담 현장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몽골 울란바토르 일정에 참석했다. 이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의 깜짝 만남을 성사시키기 위해 볼턴 보좌관을 뺀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019년 6월 3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비무장지대(DMZ)내 오울렛 초소를 방문해 함께 북측 지역을 바라보고 있다. /AP 연합뉴스
2019년 6월 3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비무장지대(DMZ)내 오울렛 초소를 방문해 함께 북측 지역을 바라보고 있다. /AP 연합뉴스

◇ 전문가들, '핵동결 시나리오'에 "트럼프라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

'핵동결 시나리오'가 미국에서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북한에 대한 금융 제재를 추진하며 '북한 저승사자'로 불린 로버트 아인혼 전 미 국무부 비확산·군축 담당 특보는 지난달 24일(현지시각) 북한의 '영변+비밀 핵시설' 동결과 유엔 안보리 제재를 맞교환하는 중간 단계의 합의안을 제안했다.

아인혼 전 특보는 당시 미국의소리(VOA)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하노이 회담에서 제안한) 영변 핵시설 폐기를 넘어서되 모든 대량 살상무기의 폐기 단계까지는 가지 않는 중간 단계에서 핵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영변 이외 지역에서도 이뤄지고 있는 북한의 우라늄 농축 활동을 동결하고 핵과 장거리미사일 시험을 영구 금지한 뒤 이에 걸맞는 보상을 미국이 제공하자는 것이다.

미 외교가에선 본토에 대한 위협을 최소화하는 차원에서 '핵 동결' 시나리오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적잖다. 아무런 성과도 없이 교착 상태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보다는 '부분적 성공'이 더 나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트머스대의 대럴 프레스 교수는 북한의 비핵화 가능성이 전혀 없다면 미국이 북한의 핵무기를 암묵적으로 인정(tacitly live with that)하는 대신 미국 본토에 대한 핵위협을 줄이기 위해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시험을 동결하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국내 전문가들도 '핵동결 시나리오'의 현실화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국립외교원의 김현욱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도 북한과 비핵화에 대한 입장차가 큰 상황에서 FFVD(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가 쉽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면서 "임기 중 북한 비핵화를 마무리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에서 핵동결 시나리오는 (트럼프 행정부가 고려할)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안"이라고 했다.김 교수는 "미국의 정치 일정 등을 감안하면 트럼프가 재선 선거 전까지 '핵 동결'을 마무리짓고, 재임 후에 완전한 비핵화를 추진하겠다는 구상을 세웠을 수 있다"면서 "다만 핵동결로 제재가 대부분 풀린 상황에서 후속 회담을 끌고갈 동력을 만들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북한과 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미국이 먼저 '핵 동결 시나리오로 가겠다'라고 하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미국 내에서도 동결에서 만족을 하느냐, 동결을 넘어 다음 단계로 나가야 하는가를 두고 이견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최 부원장은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단거리 탄도 미사일 발사도 '소형 미사일이다. 미사일 실험으로 보지 않는다'며 대중을 현혹시키고 있다"며 "미·북이 '핵동결'에 합의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비핵화'와 비슷한 표현으로 사용하면서 성과로 내세울 수 있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7/02/201907020216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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