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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받으려 김정은 고소했겠나, 그저 北서 당한게 억울해…"
조선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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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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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에 손배소 신청한 한재복씨
"국군포로라고 평생 감시하고 30년간 탄광 일 시키더니 자식들마저 탄광 보내더라"
 

6·25 때 북한으로 끌려가 강제 노역을 하고 탈북한 국군 포로 두 명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첫 재판이 지난달 21일 열렸다. 김정은을 '피고'로 한 첫 재판이었다. 그 소송을 낸 두 명 중 한 명인 한재복(85)씨를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구 사단법인 물망초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북에 50년간 억류돼 있다가 돌아온 국군 포로이고, 물망초는 국군 포로 지원 사업 등을 한다.

한씨 얼굴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오른쪽 이마의 상처였다. 어른 엄지손가락 길이만 했다. "6·25전쟁 때 포탄 파편에 맞아 생긴 상처"라고 했다. 그는 전북 정읍에서 6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1951년 4월 동네 형들과 함께 자진 입대했다. 열일곱 살이었다. 그해 8월 강원도 양구의 한 부대에 배치됐고, 12월 중공군 기습을 받아 포로가 됐다. 1953년 7월 정전(停戰)이 됐지만 한씨는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북한 장교는 "다른 부대로 이동한다"면서 한씨 등을 평안남도 신창탄광으로 끌고 갔다고 한다.

한씨는 "아침 7시 전에 막사를 나섰다. 탄광으로 우리를 끌고 가던 북한군은 다 소총이나 권총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북한에서도 '탄광 다니는 사람들은 아기도 새까맣다' '탄광 다니는 남자한테 딸 주지 말라'는 말이 있다. 제일 천시되는 직업이었다."

그는 이후 함경북도 궁심탄광을 거쳐 고건원탄광으로 갔다고 했다. 그는 "고건원탄광은 깊었고 메탄가스가 있었다. 갱도 일을 하다가 불꽃이 튀면 살아 나오기 힘들었다"며 "갱도 한쪽에 가서 용변을 보다가 가스를 마셔 죽은 사람도 많이 봤다"고 했다. "갱도 안에서 몇 번이나 작업복을 벗어 땀을 짜낸다. 그걸 다음 날 다시 받아 입는다. 그 지독한 쉰내가 아직도 안 잊힌다"고도 했다.

한씨는 1953년 7월부터 30년 넘게 탄광에서 일했다고 한다. 그는 이번 소송에서 돈을 못 받고 일했던 3년 치 임금에 대해서만 배상을 요구했다. 그는 "소송이란 걸 해봐야 김정은이 돈을 주겠나. 50년간 나와 내 자식들이 당한 게 억울해서 그랬다"고 했다. 그러면서 "차별이 제일 힘들었다. 국군 포로라고 나를 평생 감시하고 탄광 일 시키더니 대를 이어야 한다면서 내 자식들도 대학 못 가게 하고 탄광 일을 시키더라"고 했다.

결국 그는 2001년 탈북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67세였다. 그는 "북에서도 '남조선(한국)에 비해 우리가 100년 뒤처져 있다'는 말을 들었다. 실제 와 보니 그렇더라"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7/02/201907020024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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