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美北회담 이후]
美 비핵화 협상전략 달라지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판문점 전격 회동으로 '하노이 노딜' 이후 교착에 빠졌던 미·북 관계를 급반전시키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향후 북핵 전략을 어떻게 구사할지에 외교가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대 변수는 미국 대선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비핵화 협상의 목표치를 'FFVD'(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에서 '핵 동결'로 낮추기 시작했다는 관측도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용 업적 쌓기'와 관련이 깊다. 외교 치적이 급한 트럼프 행정부가 '영변+알파(α)'와 제재 완화를 맞바꾸는 등 '설익은 합의'를 할 가능성, 별다른 합의 없이 북한의 추가 도발을 막는 선에서 '정치 쇼'가 이어질 가능성 등이 거론된다.

◇핵 동결, 한국엔 재앙

뉴욕타임스가 제기한 '핵 동결 시나리오'는 미국이 북한의 현재와 미래의 핵 능력을 제거하는 대신 이미 개발한 핵무기는 인정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플루토늄을 최소 50㎏ 갖고 있다. 핵폭탄 10여개를 생산할 수 있는 양이다. 또 다른 핵폭탄 재료인 고농축우라늄의 양은 이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상태에서 핵 동결이 되면 사실상 핵보유국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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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김정은 회담장에 나타난 맏딸 이방카 - 북한 조선중앙TV는 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전날 판문점 회동을 기록한 영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인 이방카 백악관 선임보좌관이 김정은과 인사를 나누는 장면을 공개했다. 왼쪽 두번째부터 이방카 선임보좌관, 김정은, 트럼프 대통령. /조선중앙TV 연합뉴스
더 큰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를 용인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과의 판문점 회동 직후에도 최근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해 "다른 나라도 발사한다. 미사일 발사라고 보지 않는다"고 했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행위는 사거리와 무관하게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 본토에 닿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만 아니면 괜찮다'며 한국 전역을 위협하는 북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에 '면죄부'를 줬다.

◇'트럼프 쇼', 대선까지 이어질 듯

전직 외교부 관리는 "트럼프 행정부가 비핵화 협상의 목표에서 후퇴한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로선 '노딜'을 기도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어떤 합의가 나오든 북한의 핵 동결을 전제로 할 경우 한국의 안보를 크게 위협하기 때문이다.

하노이 회담 당시 쟁점은 북한의 '영변 핵시설+알파(α)'에 대한 신고·폐기와 미국의 대북 경제 제재 해제를 맞바꾸는 문제였다. 외교 소식통은 "하노이 회담 당시 미국은 영변의 가치를 높게 치지 않았지만 대선이 임박할수록 셈법을 바꿀 가능성이 커진다"며 "빅딜도 스몰딜도 아닌 어중간한 거래, 최악의 경우 스몰딜에 덜컥 합의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김정은이 지난 4월 시정연설에서 미국에 '올바른 셈법'을 요구하며 '연말'을 협상 시한으로 제시한 것도 미국의 대선 일정을 의식한 결과로 보인다. 대선이 다가올수록 트럼프 대통령의 '치적 갈증'이 심해질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때까진 '북한 관리' 차원에서 대화 국면을 이어 갈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남궁영 한국외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에 판문점을 무대로 '내 덕분에 전쟁 위기에 있던 미국이 안전해졌다'는 점을 최대한 홍보했다"며 "재선까지 활용하기 위해 길게 끌고 가려 할 것"이라고 했다. 전직 외교부 차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쇼'는 내년 대선까지 계속될 수 있다"며 "예측 불가능한 시도를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했다. 지지율에 도움이 된다면 미·북 정상이 평양과 워싱턴을 오가는 이벤트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재 유지되나 어떤 일 벌어질 수도"

트럼프 대통령은 30일 김정은과 판문점 회담 직후 약식 기자회견에서 "(대북) 제재는 유지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하지만 협상 중 어느 시점에 어떤 일들(things)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말도 했다. 비핵화가 돌이킬 수 없을 때까지 제재 완화는 없을 것이라는 기존의 입장보다 한층 유연해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제재만큼은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를 달성할 때까지 유지할 것이란 관측도 만만치 않다. 자칫 북한의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 없이 제재를 완화했다가 북한이 협상 궤도를 이탈할 경우, 외교 치적은 고사하고 정치적 치명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 민주당 의원들은 이번 판문점 회동도 '선거용 사진 찍기'라며 강력 비난하는 상황이다. 에이미 클로버샤(미네소타) 상원의원은 "북한은 지난 5월 바다 위로 미사일 발사 시험을 했다"며 "이번 판문점 회담처럼 김정은을 쉽게 만나선 안 된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7/02/201907020029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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