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미 중심에 선 김정은 모습 보여주며 대내 선전 효과 거둬
'트럼프의 마음만 얻으면 핵보유 불가능하지 않다' 판단도
체제 안전 보장과 대북 제재 완화에 대한 美 태도 전환 유도
 
(오른쪽부터)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 30일 판문점 남측지역 자유의집 앞에서 만나 대화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오른쪽부터)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 30일 판문점 남측지역 자유의집 앞에서 만나 대화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미·북 정상의 지난 30일 판문점 회동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하루 전 트위터로 깜짝 제안하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를 전격 수용하면서 성사됐다. 김정은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정식 만남이란 걸 (어제) 오후 늦게야 알았다"고 했고, 트럼프는 "오지 않았다면 제가 굉장히 민망했을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서 지난달 중순부터 두 사람이 친서를 주고받으며 물밑 교감이 있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지만, 두 사람의 이런 대화로 볼 때 최종 성사는 막판에 결정됐을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지난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한·미 양측 모두를 비난해왔다. 그런 가운데 김정은이 트럼프의 깜짝 제안을 전격 수용한 것은 하노이 결렬로 손상된 자신의 리더십을 회복하기 위한 목적이 컸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과의 신뢰를 강화함으로써 향후 진행될 비핵화 협상도 ‘톱다운 방식’으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끌어가려는 의도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를 통해 비핵화 회담을 핵군축 회담으로 유도하겠단 생각이 깔려있다는 것이다.

① 내부 통치기반 강화 위한 이벤트

김정은이 스스로 ‘깜짝 놀랐다’라고 한 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판문점 회담’은 사전 정지작업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 전날 판문점 회동 현장에서 남·북·미 정부 당국자들과 정상 경호진, 취재진이 뒤엉키는 혼란이 벌어졌다. ‘잘 만들어진 무대’에만 오르는 김정은으로선 참석하기에 부담스러울 수 있는 이벤트였다. 이런 부담감을 무릅쓰고 김정은이 트럼프의 ‘원포인트 회동’ 제안을 수용한 온 것은 트럼프 못지 않게 그 역시 대형 이벤트 효과를 노린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판문점에서 남·북·미 정상이 만나고, 그 중심에 자신이 서 있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하노이 노딜로 손상된 내부 통치 기반 강화를 도모하려 했다는 것이다.

하노이 노딜은 북한 내 김정은 리더십에 흠집을 낸 게 사실이다. 북은 '수령 무오류설'을 중시한다. 최고지도자의 말은 진리이며, 그의 행동에는 실수가 없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완벽한 최고지도자상'을 유지하기 위해 실무자들을 대거 숙청했다. 그 과정에서 통일전선부가 주도하던 핵협상은 외무성으로 역할이 넘어왔다. 김영철-김혁철 협상 라인도 리용호-최선희로 바뀌었다. 김정은은 이와 함께 6년여만에 '중대장·중대정치지도원대회'를 주재하며 당과 군의 말단 조직원들의 충성 맹세를 받기도 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김정은은 언제나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고 싶어한다"라며 "트럼프를 만나 악수하고 친근하게 대화를 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대내에 자신이 세계 수준의 지도자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 센터장은 "이러한 의도는 노동신문에 실린 35장의 판문점 회담 사진이 보여준다"면서 "미·북 회담이라는 이벤트를 트럼프 대통령만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는 게 아니다. 김정은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김정은이 이번 회담을 통해 하노이 노딜을 만회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내부적으로 비핵화에 대해 회의적인 분위기를 불식시키는 명분이 있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 30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안내를 받고 북측 땅을 밟고 있다./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 30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안내를 받고 북측 땅을 밟고 있다./연합뉴스
② ‘트럼프만 설득시키면 된다’⋯ 집요한 ‘톱다운’ 고집

김정은은 하노이 노딜 이후에도 트럼프를 직접 공격하는 것은 피해왔다. 그런 김정은은 전날 열린 판문점 회담에서도 트럼프에 대한 강한 신뢰를 드러냈다. 김정은은 판문점 회동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각하(트럼프 대통령)와 나 사이의 훌륭한 관계가 아니었다면 이런 상봉이 하루만에 전격적으로 이뤄지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각하와의 훌륭한 관계는 우리가 앞으로 맞닥뜨릴 난관과 장애물을 극복하는 신비로운 힘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전형적인 ‘트럼프 띄워주기’ 발언이다.

이에 대해 신범철 센터장은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나온 목적은 사실상 핵보유를 인정받기 위한 것"이라면서 "북한은 핵보유를 위한 가장 용이한 방법이 트럼프를 설득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신 센터장은 "북한이 실무 협상은 집요할 정도로 피하면서 ‘톱다운’ 회담 원칙을 고수하는 것도 이런 전략에서 나온 것"이라면서 "김정은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상황 등을 적절히 이용하며 ‘핵보유’라는 목표를 향해 가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도발로 인해 미·북 핵협상 테이블이 깨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올 때마다 북한 편을 들고 있다. 지난 5월 북한의 단거리 탄도 미사일 발사 때 보인 반응이 대표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 2차 발사를 한 다음날 "(북이 쏜 것들은)단거리 미사일이었고, 신뢰 위반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판문점 회담 직후 가진 약식 기자회견에서도 ‘북한의 미사일 실험에 대한 입장’ 질문에 "다른 나라에서도 미사일을 발사한다. 이것은 소형 미사일로, 나는 이것을 미사일 발사라고 보지 않는다"며 "단순한 테스트"라고 말했다.

③ 제재 완화 기대도 작용한 듯

일부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트럼프와 판문점 회동에서 제재 해제 문제보다는 체제 안전 보장 문제를 거론했을 것이라고 관측하고 있다. 하노이 회담 때 유엔제재 전면 해제를 요구했다가 회담이 결렬된 경험이 있는 김정은으로선 제재 문제를 직접 입에 올리는 게 여러 모로 거북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1일 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서 "지난번 하노이 때는 (경제) 제재 완화를 요구했다가 판이 깨졌는데, 이번에는 안전보장 요구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정은의 가장 큰 관심은 대북 제재 해제란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북한은 하노이 노딜 이후 공식 매체 등을 통해 ‘6·12 미·북 합의’를 언급하며 대북 제재 해제를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지난 5월 "유엔 안보이사회 결의에 대해 말한다면 우리가 이미 수차 천명한 바와 같이 주권국가의 생존권과 발전권을 전면 부정하는 불법무도한 것"이라면서 "우리는 언제 한번 인정해본 적도, 구속된 적도 없다"고 했다. 외무성 대변인은 지난달 26일에도 담화를 통해 "제재 압박으로 우리를 굴복시켜보려는 미국의 야망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으며 오히려 더욱 노골화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며 대북 제재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미·북 회담 직전 비무장지대(DMZ) 오울렛 초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개성공단은 한국 자본과 기술이 들어간 곳"이라며 "남북 경제에 도움이 되고 화해 분위기 조성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문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북 제재의 상징인 개성공단 문제를 직접 꺼낸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개성공단에 대한 대북 제재 예외 인정 필요성은 거론하지 않았다. 하지만 DMZ에서 가까운 개성공단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보여줌으로써 대북 제재 완화를 요청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또 문 대통령의 이런 언급은 제재 완화에 목마른 김정은을 의식한 것일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한·미 정상회담과 미·북 회동에서 북핵 문제의 '포괄적 해결'을 언급하고 미·북 협상을 "서두르지 않겠다"고는 했다. 하지만 김정은을 만난 이후 대북 제재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이 다소 유연해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미·북 회담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대북 제재에 대한 질문에 "나도 대북 제재가 계속 유지되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면서 "지금은 (제재가)유지되고 있지만, 협상을 진행하다 보면 해제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형석 전 통일부 차관은 "김정은 입장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줌으로 인해서 뭔가를 하나 더 얻어낼 수 있는 호기를 잡았다"면서 "확실한 양보까지는 아니더라도 미측으로부터 양보 가능성, 일종의 유연성을 얻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남성욱 교수는 "북한은 판문점 회담 결과를 토대로 중국 등 인접 국가의 대북 제재망 완화를 시도할 것"이라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제재 해제 가능성을 언급했다면서 ‘혈맹’인 중국이 먼저 움직여달라고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7/01/2019070102980.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