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장관·합참의장, 입항 귀순한 15일 당일 합참 벙커서 회의
이후 "해경 관할"이라며 軍이 준비하던 귀순 보도자료 중단 지시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박한기 합참의장 등 지휘관들은 '북 어선 입항 귀순' 사건이 일어난 지난 15일 합참 지하 벙커에서 최초 상황 평가 회의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합참의장은 이 회의를 마친 뒤 '이번 사건은 해경이 할 일'이라고 말하고, 합참에서 준비하던 보도 자료 중단을 지시했다고 자유한국당 백승주 의원이 밝혔다.

백 의원은 "위기관리 매뉴얼에 해경 관할이기 때문에 그래야 한다는 취지였다"며 "해경이 처리하면 사건이 적게 보이도록 역할 분담을 한 것 아니냐"고 했다. 군 관계자는 "매뉴얼에 따르면 민간 선박은 해경이 먼저 조치를 할 때까지 별도 조치를 하지 않도록 돼 있다"며 "해경에서도 준비하는 것으로 알고 추가적인 조치는 하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정경두(왼쪽) 국방부 장관과 권영진(왼쪽서 셋째) 대구시장이 28일 오후 서울 용산 국방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3회 대구 군공항 이전 부지 선정위원회'에 참석하고 있다.
정경두 국방, 대구 軍공항 이전부지 선정위 참석 - 정경두(왼쪽) 국방부 장관과 권영진(왼쪽서 셋째) 대구시장이 28일 오후 서울 용산 국방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3회 대구 군공항 이전 부지 선정위원회'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합참의 지시 이후 이틀간 사건 브리핑을 하지 않던 군은 지난 17일 언론 발표에서 '삼척항 입항'을 '삼척항 인근'으로 바꿔 브리핑했다. 당초 군 보고서에는 23사단과 동해 1함대의 경계 태세 문제와 관련된 사실도 적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또한 '경계에 문제가 없었다'고 바뀌었다. 다수 군 관계자들은 "당시 보고서에 '문제가 없다'는 내용은 없었다"며 "그렇게 판단한 건 지휘관의 몫이었다"고 했다. 보고서와 달리 '윗선'에서 내린 지침대로 브리핑이 이뤄진 것이라는 얘기다.

17일 언론 발표 직전 장관과 합참의장을 비롯한 군 주요 지휘자들은 대책 회의를 연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정 장관이나 박 의장 등이 축소·은폐 브리핑 내용에 관여했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전비태세검열실의 보고서를 받은 청와대 국가안보실 역시 왜곡 브리핑을 방조 또는 배후 조종한 의혹을 받고 있다. 청와대는 "군 언론 발표문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고 했다. 안보실에서 군 관련 업무는 김유근 1차장이 맡고 있다.

군 안팎에서는 지난 17일 '축소·왜곡 브리핑'에 청와대 행정관이 몰래 참석한 것이 이와 같은 청와대·군의 밀접한 관계를 '천기누설'하는 장면이었다는 말도 나왔다. 군 고위 관계자는 "청와대 행정관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았으면 이렇게까지 사태가 확장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그 부분은 군에서도 설명이 잘되지 않아 난감하다"고 했다.

군 당국은 이번 '입항 귀순' 사건에 대한 합동 조사를 28일 사실상 마무리했다. 군 관계자는 "어느 정도 사실 관계는 확인됐다"며 "조사를 마무리한 뒤 발표 시기를 고심하고 있다"고 했다. 사실은 규명됐지만 축소·은폐가 있었다고 발표할 수 있는지 여부를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축소 논란 과정에서 군 수뇌부와 청와대가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는 정황이 하나 둘 나타나고 있다. 군 안팎에서는 "일부러 발표를 미루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합동조사단은 군 실무진을 주로 조사했을 뿐 축소·은폐 의혹의 핵심인 군 수뇌부나 청와대는 제대로 조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일선 부대에선 "우리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억울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28일 국방부를 항의 방문한 한국당 김영우 의원은 "정 장관에게 합동조사단이 청와대나 국정원까지 조사할 수 있는 것이냐고 물었는데 대답을 못했다"며 "셀프 조사만 하고 그만두는 수준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합동조사단은 이날 국가정보원으로부터 목선에 탔던 북한 주민 4명의 1차 합동 심문 결과 자료를 일부 받아 분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칼 주름' 인민복을 입은 채 "이모에게 전화하겠다"며 휴대전화를 빌려 달라고 했던 20대 귀순 선원은 "이모를 만날 생각에 다림질해 준비해 온 깨끗한 옷을 입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 당시 삼척항 방파제에 있었던 '흰색 옷' 인물이 간첩·마약 접선책이라는 소문이 돌았지만, 해경은 "확인 결과 바다 구경을 하던 삼척 시민"이라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6/29/2019062900131.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