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외무성 국장 "조미협상, 남조선 당국 통하는 일 절대 없을 것"
美엔 "온전한 대안 갖고와라… 연말 시한, 빈말 아님을 명심해야"
 

북한은 27일 우리 정부를 향해 "조(북)·미 대화는 남조선 당국이 참견할 문제가 전혀 아니다"라며 우리 정부와 문재인 대통령을 원색 비판했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믿는다"고 말한 지 하루 만에 우리 정부가 자임해온 '중재자' '촉진자' 역할을 전면 부정한 것이다. 북한은 이날 미국을 향해서도 "조·미 대화가 저절로 열리는 것이 아니다"라며 연말까지 '올바른 셈법'을 갖고 나오라고 요구했다.

권정근 북한 외무성 미국 담당 국장은 이날 오전 발표한 담화에서 "조·미 관계는 우리 국무위원장 동지와 미국 대통령 사이의 친분 관계에 기초하여 나가고 있다"며 "(조·미 협상 시) 남조선 당국을 통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이의 개인적 친분을 강조하며 우리 정부를 사실상 '제3자'로 분류한 것이다. 권정근은 "남조선 당국은 제 집의 일이나 똑바로 챙기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도 했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정부의 대북·대외 정책의 골간인 '중재자론'이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권정근은 "저들이 조·미 관계를 '중재'하는 듯이 여론화하면서 몸값을 올려보려 한다"며 "남조선 당국자들이 지금 북남 사이에도 그 무슨 다양한 교류와 물밑 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광고하고 있는데 그런 것은 하나도 없다"고 했다. 최근 문 대통령과 이낙연 총리를 비롯해 정부 고위 당국자들이 잇따라 '북한과의 물밑 접촉'을 언급한 것을 정조준해 반박한 것이다.

북한 선전 매체 '우리민족끼리' 역시 이날 '북한의 완전한 핵 폐기'를 주문한 문 대통령의 스톡홀름 연설(14일)에 대해 "아전인수 격의 생억지" "궤설" "경악을 금치 못한다" "남조선 당국자(문 대통령)의 낭설에 차디찬 시선을 보내며 분노한다"고 했다. 북한 선전 매체가 문 대통령을 '당국자'로 표현한 건 작년 8월 이후 처음이다. 전날 문 대통령은 국내외 7개 통신사 인터뷰에서 김정은에 대해 "상당히 결단력 있고 유연성 있는 인물"이라고 했지만 북은 이를 정반대로 되갚은 것이다.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은 "'중재자'를 자임하며 북한만 바라보던 문재인 정부가 점점 외교적으로 설 곳을 잃어가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이날 북한의 이 같은 담화에 대해 입장을 내지 않고 "별도로 말할 사항이 없다"(외교부), "남북 간 합의를 차질 없이 이행해 나간다는 입장"(통일부)이라고만 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이날 '한반도평화 심포지엄' 기조연설에서 "남북 간 경제협력은 한반도 모든 주민의 삶을 풍요롭게 할 것"이라며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은 과거 남북 모두에 이익이 됐던 사업"이라고 했다.

권정근은 미국을 향해서도 "최근 말로는 조·미 대화를 운운하면서도 실제적으로는 우리를 반대하는 적대 행위들을 그 어느 때보다 가증스럽게 감행하고 있다"고 했다. 전날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압박 노선을 비난한 데 이어 이틀 연속 대미 비난을 이어갔다. 미 트럼프 행정부가 연일 북한에 실무 협상에 응할 것을 촉구하는 상황에서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못 박은 것이다. 그는 이어 "협상 자세가 제대로 돼 있어야 하고 말이 통하는 사람과 협상을 해야 하며 온전한 대안을 가지고 나와야 협상도 열릴 수 있다"고 했다. 태도 변화, 협상 파트너 교체, 협상안 수정이라는 세 가지 조건이 선행돼야 대화에 응하겠다는 것이다.

권정근은 김정은이 지난 4월 시정연설에서 언급한 '올해 말'이라는 시한을 다시 언급하며 "미국은 우리의 거듭되는 경고가 결코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도 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29~30일)을 즈음한 미·북 실무 회담은 사실상 어려워졌다는 관측이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G20 이후 실무 협상을 가지게 될 때를 대비해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일 수 있다"고 했다.

한편 대남 메시지가 대남 사업을 전담하는 통일전선부가 아닌 외무성에서 나온 것도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대대적 검열과 인적 청산 작업을 거친 것으로 알려진 노동당 통일전선부가 여전히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통전부의 현재 상황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며 "외무성 국장이 대남 메시지를 낸 건 북한이 '통미봉남' 전술로 선회할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6/28/201906280025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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