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P 등 "약식 회담 가능성", 청와대는 "정해진 것 없다"
"실무협상도 없이 판문점 회담? 덕담 말고 뭘 하겠나"
 

오는 2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1박2일 방한(訪韓)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판문점에서의 '약식 회담'이 성사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실무 협상 없는 '톱 다운' 방식의 비핵화 협상을 비판해왔다. 전문가들은 "미·북 정상이 이벤트성 만남에 집착할 경우 북한 비핵화라는 본질은 뒤로 밀려날 것"이라며 우려했다.

청와대 고민정 대변인은 24일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일정을 공식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9일 오후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가 열리는 일본 오사카에서 서울에 도착해 다음 날인 30일 청와대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갖고 미국으로 돌아간다. 한·미 정상회담은 지난 4월 워싱턴 이후 80일 만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 기간 중 비무장지대(DMZ) 방문을 추진한다는 외신 보도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이날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워싱턴포스트는 일부 전문가를 인용해 "트럼프가 남북 국경지대(판문점)에서 김정은과의 만남을 준비할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알 수가 없다"고 했다. 일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이 주고받은 친서 내용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이 "흥미롭다"고 한 사안이 미·북 정상의 판문점 만남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서도 청와대 관계자는 "흥미로운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씀드릴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 방한 기간 동안 남·북·미 3자 정상회담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판문점에서의 미·북 회담에 대해선 "알 수 없다" "정해진 것이 없다"는 것이 청와대와 정부의 설명이었다.

통일부와 여권(與圈) 인사들은 미·북 및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에 무게를 두며 분위기 조성에 나섰다. 통일부 이상민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미·북 정상회담 전(前)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을 묻자 "정부는 남북 및 북·미 대화가 조속히 재개되도록 다각적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도 "남북 정상회담은 늘 열려 있다"고 말했다. 25일부터 30일까지 문 대통령의 외교 일정이 꽉 차 있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남북 및 미·북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기간 중 판문점밖에 없다는 분석을 하고 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도 라디오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오는 김에 DMZ를 간다니 (김정은과) 깜짝 만남이 이뤄질 수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판문점 북쪽 지역으로 못 넘어갈 이유도 없다. 세계적인 뉴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관건은 김정은의 대응이다. 트럼프 대통령 친서에 "흥미롭다"고는 했지만 제재 해제에 대한 확신 없이 섣불리 판문점에 나오긴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판문점에서의 미·북 또는 남북 정상회담이 이뤄진다면 미·북 협상은 과거 '톱 다운' 방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도 이날 "(친서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북한과 중요한 논의를 이어가는 데 좋은 토대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미 조야(朝野)는 지난 2월 하노이 결렬 이후 '톱 다운'보다는 실무진의 충분한 협상이 우선되는 '상향식' 방식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미국 정부가 실무 협상 없이 북한이 고집해온 '톱 다운' 방식으로 협상을 진행할 경우 알맹이 없는 싱가포르 선언이나 하노이 결렬이 반복될 뿐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문 대통령도 북유럽 방문 때 톱 다운 방식을 하면서도 '선(先) 실무 협상, 후(後) 정상회담' 원칙을 강조하며 미국의 대북 정책과 보조를 맞춘 바 있다.

미·북 간 실무 협상은 '하노이 노딜' 이후 4개월간 거의 이뤄지지 않아 이번 미·북 정상의 판문점 회담이 성사되더라도 '속 빈 강정'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외교 소식통은 "하노이 회담은 그래도 수차례 실무 협상을 했지만 그 이후론 어떤 실무 협상도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이런 상태에서 판문점에서 미·북 정상회담이 갑작스럽게 열리게 된다면 '평화' '대화' 같은 덕담만 오가는 이벤트성 자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내년 재선(再選)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판문점 미·북 회담 같은 '깜짝쇼'를 연출해 '선거용'으로 활용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판문점을 방문해 김정은과 만나는 모습이 전 세계에 생방송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자신의 외교 성과를 과시하는 '업적'으로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 유권자들을 상대로 북한의 핵·미사일 모라토리엄(실험 중단)을 얻어냈음을 부각시키는 '선전 무대'로 판문점을 생각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미주연구부장은 "이란 호르무즈해협의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국제 유가가 올라 미 여론도 악화하고 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어떻게든 분위기 전환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트럼프 대통령의 판문점 방문과 김정은과의 만남을 성사시켜 그동안 훼손됐던 '중재자' '촉진자'로서의 역할을 다시 부각시켜야 하는 상황이다. 미·북 간 협상이 다시 재개될 경우 김정은도 남북 정상회담에 다시 관심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내년 총선을 좌우할 키워드는 경제와 함께 남북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6/25/2019062500182.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