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9 군사합의 후 완충 지대 충돌 피하려 감시 전력 후퇴시킨 것 아닌가 의심"
"北 주민 귀환 결정 통상 절차보다 빠르게 진행…규명해야 할 내용 중 하나"

강원도 삼척항에 유유히 들어온 북한 소형 목선 한척이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다. 지난 15일 북한 주민 4명이 탄 목선이 삼척항 안 부두에 스스로 정박하고 선원들은 육지에 상륙까지 했다. 이들 중 한명은 지나가던 주민에게 "북한에서 왔다"고 밝히면서 "서울에 있는 이모에게 전화를 하려고 하니 휴대전화를 빌려달라"고 했다. 이때까지 한국군과 경찰은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이들을 발견한 주민이 112에 신고하고서야 대한민국 해상 경계에 구멍이 난 사실이 드러났다.

군 당국에선 "이번 사건과 9·19 남북군사합의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선 "남북군사합의 이후 대북 경계태세가 약화한 것이 경계 실패를 가져온 것 아니냐"고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송대성 전 세종연구소장도 6개월 전인 작년 12월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과의 인터뷰에서 "9·19 군사합의로 대문을 지키는 수위를 집 뒤로 보내고, 대문을 부셨다"며 해상 경계 약화를 우려했던 사람이다. 송 전 소장을 22일 다시 만나 북 목선 '입항 귀순' 사건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송대성 전 세종연구소장이 22일 서울 논현동 거평빌딩 사무실에서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윤희훈 기자
송대성 전 세종연구소장이 22일 서울 논현동 거평빌딩 사무실에서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윤희훈 기자

송 전 소장은 이날 서울 강남의 개인 사무실에서 한 인터뷰에서 "북한 선박이 대한민국 항구에 스스로 정박할 때까지 군·경이 까맣게 몰랐다는 것은 정상적인 국가에서는 발생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현 정권 들어 안보 장벽을 허물고 사회를 안보불감증으로 물들게 만든 결과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송 전 소장은 보안사 참모장(예비역 공군 준장) 출신으로 미 미시건대학에서 정치학 박사를 하고 세종연구소장을 지냈다.

송 전 소장은 '북한 주민이 타고 온 배가 소형 목선인 데다 당시 파고가 높아 탐지가 어려웠다'는 군 해명에 대해선 "물론 레이더가 모든 것을 잡아낼 순 없다"면서도 "하지만 당시 일기(日氣)를 보면 바다가 상당히 고요한 편이었다. 설사 레이더 장비로 관측이 안 되더라도 육안으로는 탐지를 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삼척 지역의 해안 둘레길을 트레킹했는데, 경비초소가 있어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되는 곳에 초소나 경계병이 없었다"며 "군인들의 주적관이 희미해지고 평화 프로세스를 의식하며 정치적 고려부터 하는 분위기가 퍼져 있다면 경계 작전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제대로일 리가 없으니 걱정"이라고 했다.

그는 "북한 목선이 지난 12일 동해 NLL(북방한계선)을 넘어 나흘동안 우리 영해를 떠돌았다면 해상초계기나 함정으로 탐지했어야 한다"며 "9·19 군사합의 이후 해상 완충지대에서 충돌을 피하기 위해 감시 전력까지 후방으로 후퇴시킨 것은 아닌지 검증을 해봐야 한다"고 했다. 남북군사합의는 우리 측 속초에서 북측 통천까지 약 80㎞ 해역을 완충 수역으로 설정하고 이 수역에서 포병·함포 사격과 해상 기동 훈련을 중지토록 했다. 다만 해상초계 작전 등 대북 해상 경계 활동엔 영향이 없다는 게 군 당국의 설명이다.

송 전 소장은 목선을 타고 온 북한 주민의 귀순·귀환 결정이 단 하루 심문 끝에 내려진 것도 규명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목선에 탑승한 4명 중 2명은 귀순하겠다고 하고 2명은 북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면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고 보고 좀 더 신중히 조사를 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정부 합동정보조사팀이 하루 조사한 뒤 이틀 만에 바로 북송한 것은 뭔가에 쫓겨 서둘러 일을 매듭지은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는다"고 했다. 그는 "이 문제와 관련해 북한과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정부가 국민 앞에 설명을 해야 한다"고 했다.

군 당국이 오락가락하는 설명으로 은폐·축소 의혹이 불거진 것도 지적했다. 송 전 소장은 "'평화가 왔다'던 정부도 '경계망이 뚫렸다' '안보 의지가 의심스럽다'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인지 여론의 눈치를 살피며 브리핑을 여기에 맞췄다, 저기에 맞췄다 한다"며 "군이 뭔가 정치적 고려를 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니 국민과 언론의 의심을 사는 것"이라고 했다.
 
송대성 전 세종연구소장이 22일 서울 논현동 거평빌딩 사무실에서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윤희훈 기자
송대성 전 세종연구소장이 22일 서울 논현동 거평빌딩 사무실에서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윤희훈 기자

다음은 송 전 소장과 일문일답.

ㄧ6개월 전 인터뷰 때 "9·19 군사합의로 해상 경계가 무너질 것"이라면서 "간첩에게 내려오라고 길을 열어줬다"고 했다. 이번에 내려온 사람들이 간첩은 아니라고 하지만 북한의 선박이 우리 항구까지 들어오는 동안 군·경이 전혀 몰랐던 점에 비판이 거세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사람이나 어떤 물체가 국경을 넘는 순간 이를 포착해내야 한다. 월경(越境) 순간을 놓쳤다면 이후 중첩 감시·경계망을 통해 잡아냈어야 한다. 지금 들어온 목선은 지난 12일 NLL을 넘어 15일에 삼척항에 입항했다. 무려 나흘 동안 우리 영해를 돌아다닌 것인데 삼척항에 정박할 때까지 해경도, 해군도 몰랐다. 그리고 북한 주민이 산책하던 우리 국민에게 '핸드폰 좀 빌리자'고 해서, 주민이 거동수상자로 신고해 군·경이 알게 됐다. 이게 정상적인 일인가."

ㄧ9·19군사합의로 인한 경계 약화가 이번 사건의 주된 원인이라고 보나.

"북한은 여전히 핵을 포기하지 않고 있고, 우리에 대한 군사 경계를 허물지 않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9·19 군사합의를 체결한 뒤, 북보다 먼저 경비를 무너뜨리고 있다. 이번 일을 보면서, 더 큰 일도 벌어질 수 있겠다는 걱정이 든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과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ㄧ 9·19 군사합의 이후 경계 태세가 약해진 구체적인 사례가 있나.

"지난 달 말 행사 차 삼척을 다녀왔다. 당시 삼척에서 2.8km 트레일 코스(둘레길)를 걸었는데, 안보전문가 시각에서 경계 태세를 살펴봤다. 그런데 둘레길을 걷는 동안 경계를 서고 있는 군인이나 해경을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우리 군의 경계 태세가 이 정도로 심각하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군이라면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고 경계 태세를 항시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군이 혹시 태평성대에 빠져있는 것 아닌가 걱정스럽다. 만약 목선에 탄 사람이 북한의 특수작전 부대원들이었다면 어쩔 뻔 했나."

ㄧ이번 목선 귀순 사건의 문제 핵심은 무엇인가. 감시 장비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고, 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나는 정부의 질(The Quality of Government)을 꼽는다. '정치 시스템'이라고도 하는데, 정부의 질에 따라 국가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이 달라진다. 지금 정부는 적이 분명히 있는데도, 적이 없다고 하는 식이다. 또 우리의 적은 무장해제나 감축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마치 그들이 그렇게 할 것처럼 먼저 무장을 약화시키려 한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만악의 근원은 바로 북한이었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북한과 공조하려고만 한다. 북한의 실체를 잘 모르거나, 아니면 알면서도 공조하는 것이다. 이런 정부의 질이 목선 사태가 발생한 핵심 이유다."

ㄧ'소형 목선이라 레이더 탐지가 어려웠다'는 군 당국의 설명에도 일리가 있지 않은가.

"사실 파고가 어느 정도 이상이 되면 장비가 있더라도 탐지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레이더라고 모든 것을 탐지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군사력은 장비에만 100% 의지할 수가 없는 것이다. 또 장비가 갖춰졌다고 해도 중요한 것은 장비를 다루는 사람의 의지다. 지금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장비가 있지만 정식 가동을 안하고 있지 않나. 장비가 있어도 의지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지난 15일 북한 선원 4명이 탄 어선은 조업 중인 어민의 신고로 발견됐다는 당초 설명과 달리 삼척항 방파제에 정박했다. 사진은 북한 어선이 삼척항 내에 정박한 뒤 우리 주민과 대화하는 모습./KBS
지난 15일 북한 선원 4명이 탄 어선은 조업 중인 어민의 신고로 발견됐다는 당초 설명과 달리 삼척항 방파제에 정박했다. 사진은 북한 어선이 삼척항 내에 정박한 뒤 우리 주민과 대화하는 모습./KBS

ㄧ일부에선 레이더 포착은 어려웠다 해도 해상초계기와 해군·해경 함정, 해안 경계병 등의 중첩 감시망까지 뚫린 건 문제란 지적이 있는데.

"해상초계기가 정상적으로 활동했다면 충분히 찾을 수 있었다고 본다. 또 레이더 장비로 관측이 안되더라도 해안 경계 병력이 육안으로는 탐지를 했어야 했다. 군에서는 파도를 이야기하는 데 당시 일기(日氣)를 보면 바다가 상당히 고요한 편이었다. 지금은 장비 탓을 할 때가 아닌 것 같다. 지금 군대가 어떤 모습인가. 병사들이 평일에도 일과가 끝나면 외출·면회를 하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이 가능하려면 '오늘 밤에도 적은 쳐들어올 수 있다'는 정신무장은 갖춰야 한다. 그런데 군까지 파고든 평화 프로세스 무드가 정신 전력의 약화를 가져온 것 아닌지 의심스럽게 하는 사건이 터진거다."

ㄧ목선 귀순 사건이 드러난 후, 군 당국의 브리핑을 두고 은폐·축소 논란이 일고 있는데.

"'평화가 왔다'던 정부도 '경계망이 뚫렸다' '안보 의지가 의심스럽다'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인지 여론의 눈치를 살피며 브리핑을 여기에 맞췄다, 저기에 맞췄다 한다. 그래서 축소·은폐 의혹이 나오는 것이다. 군이 현 정권의 평화 프로세스를 의식해 정치적 고려를 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니 국민과 언론의 의심을 사는 것이다. 잘못한 게 있으면 잘못한대로 사실을 확실하게 인정을 해야 한다. 아프지만 사실을 정확히 밝히고, 이후 후속 대책을 확실하게 세우면 되는 일이다. 그런데 계속 무엇인가를 감추려는 듯한 브리핑으로 일관했다. 이런 대응은 국민들로 하여금 군에 대한 신뢰를 잃게 한다. 그러면 앞으로 진실을 말해도 국민들이 믿지 않게 된다."

ㄧ이번에 내려온 주민들의 귀순과 귀환 결정이 통상보다 빠르게 진행됐다는 지적도 있다.

"북한 주민이 월남을 했을 경우에 처리하는 절차가 있을 것이고, 목선에 탑승한 4명 중 2명은 귀순하겠다고 하고 2명은 북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면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고 보고 좀 더 신중히 조사를 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 정부 합동정보조사팀이 하루 조사하고 이틀 뒤 바로 북송한 것은 뭔가에 쫓겨 서둘러 일을 매듭지은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이 문제와 관련해 북한과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정부가 국민 앞에 설명을 해야 한다."

ㄧ최근 국방일보에선 '남북 평화를 지켜주는 것은 군사력이 아닌 대화'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문재인 대통령의 스웨덴 의회 연설을 소개한 것인데, 군인이 보는 국방일보에 낼 기사로 적절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안보 주무부서인 국방부가 정치화됐다는 걸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다. 물론 평화를 외교로, 대화로 시도하는 것은 비판받을 일은 아니다. 문제는 이게 군인에게 할 말이냐는 것이다. 군의 역할은 위기 시 적과 싸워 이기는 것이다. '양병 10년, 용병 1일'이라고 한다. 단 하루 쓰기 위해 10년 간 군을 양성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마치 진짜 평화가 온 것처럼 말하면서, 군사력이 필요없다는 듯이 김새게 만들었다."

ㄧ군 선배로서 지금의 군에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군의 수장들은 지금 나의 말과 행동이 역사에 남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조국을 수호한다는 것은 신성한 임무다. 이러한 임무를 망각하고 오히려 조국의 안보를 무너뜨리는 일을 한다면 대한민국의 역사에 죄인으로 기록될 수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송대성 전 세종연구소장: 공군사관학교(17기)를 졸업하고 서울대 외교학과에서 공부했다. 이후 미국 미시건대학교 앤아버(Ann Arbor) 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공사 교수, 합참 전략기획국 군사전략과, 기무사 정책연구실장, 정보처장, 보안처장, 참모장을 지내고 준장으로 예편했다. 이후 세종연구소 정책연구실장, 소장을 지냈다. 현재 한미안보연구회 이사를 맡고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6/23/201906230005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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