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항 귀순' 언론 탓, 北 눈치보기… 소극 대응 속내 드러나
軍·통일부·해경 우왕좌왕하는데 컨트롤타워 역할도 못해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21일 북한 어선의 '입항 귀순' 사건에 대해 "(입항 귀순 관련) 보도가 나갔으면 안 됐다"며 "만일 4명이 다 귀순 의사를 갖고 넘어 왔다면 그것이 보도됨으로써 남북 관계가 굉장히 경색됐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언론에 보도가 되면 북한이 당장 돌려 보내라고 요구할 것 아닌가"며 "잘못 알려진 부분이 보도되면서 증폭됐다"고 했다. 남북 관계 때문에 이번 사태 대처가 소극적이었음을 간접적으로 인정함과 동시에 언론 탓을 한 것이다. 군 안팎에서는 윤 수석의 발언이 청와대와 관계 부처들이 이번 사건에 소극적인 대응을 한 배경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지난 15일 목선을 타고 강원도 삼척항에 도착한 북한 선원들(왼쪽)이 주민 신고를 받고 출동한 우리 해경 요원들과 대화하고 있다.
해경과 대화중인 北 선원들 - 지난 15일 목선을 타고 강원도 삼척항에 도착한 북한 선원들(왼쪽)이 주민 신고를 받고 출동한 우리 해경 요원들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사건은 지난 15일 오전 6시 50분 일어났다. 북 어선은 전날 삼척 앞바다에 와 있다가 이 시각 삼척항으로 들어와 부두에 정박했다. 인근 주민이 이 목선(木船)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이 사실을 해경에 알렸고, 해경은 이날 오전 7시 9분 청와대 국정상황실과 국가위기관리센터·총리실·국정원·합동참모본부 등 주요 기관에 일제히 상황보고서를 올렸다. 당시 보고서에는 '오전 6시 50분쯤 삼척항 방파제에 미상의 어선이(4명 승선) 들어와 있는데, 신고자가 선원에게 물어보니 북한에서 왔다고 말했다고 신고 접수' '함경북도 경성에서 6월 5일 조업 차 출항하여 6월 10일경 기관 고장으로 표류하다 6월 14일경 기관이 수리되어 삼척항 입항'이라고 기록돼 있다.

정부는 이 상황을 언론에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러 정부 부처에 이 사실이 전파되면서 이날 오전 11~12시쯤 목선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다. 정부의 공식 발표는 언론 보도 이후인 이날 오후 2시 10분에야 이뤄졌다. 해경은 삼척 지역 언론에 '북한 어선 발견, 승조원 4명, 조업 중 기관 고장으로 표류하다가 자체 수리하여 삼척항으로 옴으로써 발견돼 관계 기관에서 조사 중임' '통일부에 문의 바란다'고 공지 문자를 보냈다.

문제는 그 이후 군과 청와대의 대응이었다. 군은 잇단 언론 보도에도 사실 관계를 확인해 주지 않은 채 이틀간 함구했다. "합동 심문으로 넘어간 문제로 다른 기관의 조사 내용을 우리가 밝힐 수 없다"고만 했다. 군은 17일에야 처음 브리핑을 했다. 하지만 "북한 목선이 삼척항 인근에서 접수됐다" "북한 목선은 떠내려왔다" "경비 태세에 문제가 없었다"고 상황을 축소하는 발표를 했다.

그런데 이날 오후 주민들의 증언으로 북한 목선이 삼척항 부두에 정박했고, 일부는 주민과 대화하며 휴대전화까지 빌려 달라고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자 군은 18일 어선 발견 장소를 '삼척항 인근'에서 '삼척항 방파제'로 슬쩍 바꿔 설명했다. 그러다 19일 뒤늦게 어선이 부두 끝에 접안한 사실을 인정했다. 또 목선이 '표류'가 아닌 동력을 이용해 삼척항에 진입한 사실도 확인됐다. 더구나 통일부는 18일 "귀순 목선을 폐기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이 또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목선은 동해 1함대에 보관 중이었다.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자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20일 뒤늦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하지만 해경이 최초 상황보고서를 청와대와 총리실·국정원 등 주요 기관에 모두 보낸 사실이 새로 드러났다.

청와대가 이날 "군이 이번 사건을 왜곡·축소한 적이 없다"고 브리핑을 한 것도 논란을 자초했다. 비판의 화살이 청와대로 향하는 것을 막기 위해 '감싸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것이다.

군과 통일부·해경 등은 이번 사건 대응 과정에서 제대로 소통도 하지 않았다. 군은 "해경이 문자로 보도 자료를 낸 것을 몰랐다"고 했고, 통일부는 군이 1함대에 보관하고 있다는 목선을 계속 "폐기했다"고 우겼다. 한 군 관계자는 '해경으로부터 최초 상황 보고를 받고도 왜 그 내용을 발표하지 않았느냐'는 의문에 대해 "첫 상황 보고와 다른 보도가 나오길래 합심 조사 등에서 사실이 달라진 줄 알았다"고 했다. 부처들이 우왕좌왕하며 책임을 미루는 동안 청와대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또 별다른 설명 없이 "은폐·축소·조작은 없었다"고만 했다. 정부 관계자는 "경계 실패만을 부각해 군 일부에만 책임을 뒤집어씌우려는 게 아니냐"고 했다. 정부가 남북 대화의 불씨를 살려 보려 하는 상황에서 '입항 귀순'이 알려지는 것을 숨기려 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6/22/201906220025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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