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中 정상회담]
김정은·시진핑 '1박2일 밀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첫 방북은 1박 2일, 만 27시간짜리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이 짧은 시간을 자신과 시진핑 주석의 '브로맨스'를 대내외에 과시하는 기회로 만들었다. 북한은 시 주석에게 그동안 공개한 적이 없는 새 영빈관을 숙소로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하노이 노딜' 이후 미·북 대화가 교착에 빠지면서 한국의 '중재자' 역할에 기대를 접은 북한이 중국의 지지·후원을 기대하며 '시진핑 맞춤용 초특급 의전'을 베풀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런 분위기가 정점에 달한 건 방북 첫날(20일) 밤 5·1경기장에서 열린 매스게임 '불패의 사회주의' 관람 때였다. 원래 '인민의 나라'였던 제목과 내용을 대폭 수정한 공연이었다. 두 정상 부부는 오후 9시 40분 관중석을 가득 메운 평양 시민의 '만세' 함성 속에 주석단에 등장했다. 경기장 수용 인원이 15만명임을 고려하면 이날 낮 가두 퍼레이드에 동원된 25만명, 공연 출연 인원까지 합쳐 연인원 40여만명이 단 하루에 동원된 셈이었다. 전체 평양시민의 16%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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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방문한 시진핑(오른쪽 앞줄 셋째) 중국 국가주석이 20일 평양 능라도 5·1 경기장에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불패의 사회주의'를 관람하며 김정은(오른쪽에서 둘째) 북한 국무위원장과 대화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리설주 여사, 김 위원장, 시 주석, 시 주석 부인 펑리위안 여사.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공연은 북한 사회주의 성과와 인민의 생활상, 북·중 우호 관계, 시 주석의 방북 환영 등을 테마로 약 1시간 30분간 펼쳐졌다. 카드섹션은 북·중이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戰爭)'이라 부르는 6·25전쟁 장면과 '피로 세운 전우의 정' 등의 글귀를 보여줬다. 어린이들의 공연 땐 '시진핑 할아버지 만나서 반갑습니다'란 뜻의 중국어가 새겨졌다. 공연의 마지막은 카드섹션으로 재현한 시 주석과 김정은 초상화였다. 순간 전 관중이 기립해 박수를 쳤다.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도 집단 체조 '인민의 나라'를 관람했지만 문 대통령 초상화는 없었다. 시진핑 초상화는 주석단 뒤에도 걸려 있었다. 작년 문 대통령이 관람할 때 한반도기가 있던 자리다.

앞서 첫날 오후 7시부터 평양 목란관에서 열린 환영 만찬은 시진핑 주석 내외를 "가장 존중하는 중국 귀빈"이라고 한 김정은의 축사로 시작됐다. 한복 차림의 부인 리설주를 대동한 김정은은 "오늘 시 주석의 방북으로 북·중 우호의 새로운 한 페이지가 열렸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상전벽해의 변화에도 북·중 우의는 더욱 굳건해졌다"고 말했다.

북한은 시 주석의 방북 첫날에만 대형 환영 행사를 세 번 열었다. 공항과 금수산태양궁전 광장에 이어 만찬 직전 김정은 집무실이 있는 노동당 중앙위 본부청사에서도 행사를 했다. 노동당 핵심 엘리트인 정치국 상무위원(3명), 위원(18명), 후보위원(12명) 전원이 도열해 시 주석에게 인사하고 단체 기념사진을 찍었다. 장쩌민(江澤民)·후진타오(胡錦濤) 등 역대 중국 최고 지도자들의 방북 때 없던 파격적 예우였다. 지난해 9월 문 대통령 방북 때는 공항에서만 환영 행사가 있었다. 중국 인민일보는 "지난 50년래 외국 정상이 북한 노동신문 1면에 기고문을 실은 것은 시 주석이 처음"이라며 금수산태양궁전 광장 환영식, 25만 환영 인파, 노동당 본부 환영식에 대해 "시 주석의 방문을 고도로 중시하는 김정은 위원장의 특별한 의전"이라고 전했다.

방북 마지막 날인 21일 시 주석 부부는 평양 모란봉구역의 조·중우의탑을 참배했다. 김정은 부부는 미리 나와 시 주석 부부를 맞았다. 6·25전쟁에서 전사한 중국인민지원군을 기리기 위해 1959년 건립된 조·중우의탑은 북·중 혈맹 관계를 상징하는 조형물이다. 두 정상 부부는 이어 시 주석의 숙소인 금수산영빈관으로 옮겨 영내 정원을 산책한 뒤 환담을 겸한 환송 오찬을 가졌다. 시 주석은 이날 오후 3시쯤 전용기편으로 귀국길에 올랐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6/22/201906220024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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