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북 경성서 출항, 삼척 앞바다서 날 새길 기다렸다가 들어와
육군 레이더와 해안영상감시망에 2차례 잡혔지만 소홀히 넘겨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19일 "북한 어선 관련 상황에 대해서 우리 모두 매우 엄중한 상황으로 인식해야 한다"며 "우리가 100가지 잘한 점이 있더라도 이 한 가지 경계 작전에 실패가 있다면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틀 전인 17일 군은 북한 목선 관련 경계 실패의 책임에 대해 "책임을 물을 사안이 아니다"라고 했었다. 그러나 사태가 커지자 이날 정 장관 지시를 계기로 "해상 경계 작전을 책임지는 지휘관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입장을 바꿨다. 군 안팎에서는 국방부 수장인 정 장관이 일선 지휘관에게 책임을 전가해 사태를 수습하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야권에서는 "최종 책임자는 장관이 아닌가"라는 지적이 나왔다.
 
정경두(왼쪽에서 둘째) 국방부 장관이 19일 서울 용산 국방부에서 열린 전군 지휘관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정 장관은 “북한 어선 관련 상황에 대해서 매우 엄중한 상황으로 인식해야 한다”며 “우리가 100가지 잘한 점이 있더라도 이 한 가지 경계 작전에 실패가 있다면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고 했다.
정경두(왼쪽에서 둘째) 국방부 장관이 19일 서울 용산 국방부에서 열린 전군 지휘관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정 장관은 “북한 어선 관련 상황에 대해서 매우 엄중한 상황으로 인식해야 한다”며 “우리가 100가지 잘한 점이 있더라도 이 한 가지 경계 작전에 실패가 있다면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고 했다. /오종찬 기자
군경과 통일부는 이번 북한 목선 귀순을 설명하면서 사건을 축소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9·19 남북 군사 합의의 여파로 동해가 뚫렸다'는 비판을 지레 의식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정도였다. 군은 지난 17일 "북한 목선을 삼척항 인근에서 접수했다"고 했다. 삼척항에 정박한 목선을 해상에서 발견해 데려온 듯한 뉘앙스였다.

그러나 삼척항에서 귀순자들을 목격한 우리 주민들의 증언과 사진이 공개되자 매일 말이 달라졌다. 18일에는 "해경으로부터 방파제에서 접수했다는 상황을 전파 받았다"고 했고, 다음날에는 "북한 목선이 삼척항 방파제 부두 끝에 접안했다"고 했다. 군 관계자는 "발견 지점과 이동 경로는 합동 심문 중이었기 때문에 밝히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단순히 사실을 전달하지 않은 게 아니라 진상을 흐려 혼란을 초래했다는 말이 나왔다.

군은 북한 목선이 "떠내려 왔다"고 했다가 "엔진을 가동해 움직였다"고 말을 바꾸기도 했다. 군의 한 관계자는 "떠내려왔다는 표현은 표류 끝에 우연히 삼척항에 북한 목선이 온 것과 같은 느낌을 주려 했던 것이 아니겠나"고 했다. 하지만 북한 목선은 귀순을 위해 계획적으로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온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는 이번 사건의 '물증'인 북한 목선에 대해서도 설명이 오락가락했다. 통일부는 18일 "북한 목선을 선장 동의로 폐기했다"고 했는데, 군은 다음날 "동해 1함대에 목선을 보관 중"이라고 했다. 군 관계자는 이에 대해 "통일부가 폐기했다고 발표한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고 했다.
 

군은 이날 문제의 북한 목선이 지난 9일 함경북도 경성에서 출항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목선은 10일 동해 NLL 북방에서 조업 중이던 북한 어선군에 합류했고, 11~12일 위장 조업을 하다가 12일 오후 9시쯤 NLL을 넘었다. 목선은 13일 오전 6시쯤 울릉도 북동쪽 약 55㎞ 해상에 정지해 있다가 기상 악화로 표류했고, 이후 가까운 육지를 향해 항해하다 14일 오후 9시 삼척항 인근 3.7~5.5㎞ 지점에서 대기했다. 이들은 야간에 해안으로 접근하면 우리 군이 사격할 가능성을 우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박은 15일 일출 이후 삼척항으로 출발해 오전 6시 20분 삼척항 방파제 인근 부두 끝에 접안했다. 이들을 가장 먼저 발견한 건 인근 주민이었다. 신고자는 차림새가 특이한 북한 선원을 발견하고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고, 이들은 "북한에서 왔다"고 답했다.

북한 선원 중 한명은 "서울에 사는 이모와 통화하고 싶다"며 휴대전화를 빌려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당시 북한 선원 중 2명은 방파제 부두에 올라와 있었다. 군은 "4명은 각각 인민복(1명), 얼룩무늬 전투복(1명), 작업복(2명)을 입고 있었다"며 "복장과 관계없이 모두 민간인으로 확인됐다"고 했다.

이번 사건에서는 군경의 3중 감시망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해상에서는 오징어잡이 철을 맞아 북한 어선의 NLL 월선을 감시하기 위해 초계기 등 감시·정찰 자산이 보강된 상태였지만, 군 관계자는 "사각지대로 목선이 지나간 것 같다"고 했다. 삼척 지역 육군의 레이더에 잠시 목선의 모습이 포착됐지만 "파도가 일으키는 한 반사파로 인식했다"고 했다. 북한 목선은 삼척항 인근의 해안선 감시용 '지능형 영상 감시 체계'에 1초간 두 차례 포착됐지만, 군은 "남측 어선으로 판단했다"고 했다. 군 관계자는 "해양수산청과 해경의 CC(폐쇄회로)TV 영상에서도 북한 목선이 식별됐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6/20/2019062000210.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