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mature to call it a breakthrough)


로버트 아인혼
Robert J Einhorn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이제 미국과 대화를 재개하기로 했다. 부시 미 행정부의 강경책이 먹혀들었다는 뜻일까? 또 이로써 상당한 돌파구가 마련됐다는 의미일까? 나는 부시 행정부가 북한과 그 지도자에 대해 거친 표현들을 사용하는 것은 미·북 사이의 경색 국면을 장기화시킬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 표현들은 북한으로 하여금, 미 행정부가 북한 정권과 거래할 의사는 확실히 없으므로 미·북이 다시 협상 테이블에 마주앉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생각하게 만들 위험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우려했던 것만큼 북한 지도자들이 예민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부시 팀은 전임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과의 대화에서 나갔던 지점에서부터 대화를 재개해야 한다는 요구를 포함한 북한측 조건들을 수용하지 않았지만, 북한은 자존심을 어느 정도 접고 미국과의 대화에 다시 나설 태세를 보이고 있다.

북한측의 그 같은 태도 변화는 부시 행정부의 강경책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미국의 말과 행동들, 이를테면 ‘악의 축’ 연설이라든가, ‘핵 태세 검토’ 보고서, 대규모 한·미 합동 군사 훈련, 북한의 제네바 합의 준수 여부에 대한 인증 유보, 무엇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보여준 군사력의 맹위 등은 북한에 대해 ‘미 행정부와 게임을 하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주었음이 틀림없는 것 같다.

하지만 북한이 태도를 바꾸어 미국과의 대화에 응하기로 한 것이 순전히 부시 행정부의 강경정책 때문만이라면 잘못일 것이다. 더욱 중요한 원인은 북한의 절박한 사정 때문일 것이다. 북한은 다시 외국의 원조, 특히 식량과 비료를 필요로 하고 있다.

짐작하건대 북한 지도자들은, 단순히 미국과 다시 만나기로 하는 것만으로는 부시 행정부의 너그러운 지원을 얻어내기 어렵다는 점을 알 만큼 현실적인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은 북한 자신이 미국과의 대화에 다시 나서지 않는 한, 북한을 너그럽게 도와주려는 한국 정부의 능력도 제약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계산한 것 같다.

다시 말해 북한이 미국과 대화를 재개하겠다는 것 자체가 미국의 대규모 원조를 초래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그것이 남한의 원조의 빗장을 풀 열쇠는 될 수 있을 것이다. 흥미롭게도 임동원(林東源) 특사가 평양에 다녀온 뒤 즉각 한국 정부는 상당한 양의 식량과 비료를 북한에 보내겠다고 발표했다.

핵심 문제는 미·북 대화를 재개하기로 한 김 위원장의 결정이 곧 미국의 관심 이슈들에 대한 북한 입장의 상당한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냐 여부다. 미국의 관심 이슈들이란 경수로 건설이 더이상 지연되지 않게 하기 위해 북한이 과거 핵활동에 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에 협력해야 한다는 점, 북한의 미사일 수출 중단과 미사일 능력의 제거 등을 검증할 수 있는 방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점, 한반도의 재래식 군사력 문제 해결에 착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 등이다.

임 특사는 평양에서 이 같은 안보문제들을 제기했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에 앉을 경우에 이들 문제에 융통성있고 건설적인 자세로 임하기로 결정했다고 볼 만한 대목은 없었다. 북한 지도자들은 어쩌면 자신들의 정책에 큰 변화를 가져오지 않고서도 그저 미국과의 대화에 응하기로 하는 것만으로 자신들의 최소한의 목표, 즉 추가적인 원조를 얻어내면서 미국과의 심각한 위기는 회피한다는 것쯤은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내달쯤 미·북 대표들이 만나면 북한의 의도를 좀더 명확히 파악하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는 우선 미·북 대화의 재개를 긍정적 조치라고 환영할 수 있다. 하지만 회담은 글자 그대로 서로 만나는 것일 뿐, 반드시 돌파구인 것은 아니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 상임고문·전 미국 국무부 차관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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