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경협 항로를 오가는 중국선적의 정기화물선이 중국산으로 추정되는 엄청난 양의 마약을 북한 나진항에서 실어 한국으로 밀수입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남북교역과 교류가 갈수록 활발해질 전망인데도 이 같은 범죄를 감시하고 통제할 남북 간의 제도적 장치가 전무한 형편이니 앞으로가 더욱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다.

문제의 필로폰은 마약 밀수사건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로, 300만명이 투약할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우리 수사당국은 이 필로폰이 북한 항구에서 출발한 사실을 알고서도 5개월간 쉬쉬해 왔다고 하니 그 강심장이 놀라울 뿐이다. 당국은 수사관행 운운하고 있지만 여러 정황으로 볼 때 북한정권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감추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부는 북한지역이 대규모 마약밀수 루트로 활용되고 있는 사실을 즉각 공개해 국민의 경각심을 높이고 북한당국에도 책임추궁과 함께 재발방지 대책을 촉구해야 했다. 이제 국민건강마저 눈치보기의 희생물로 삼겠다는 것인가. 우리 사회가 아무리 마약퇴치를 위해 진력한들 북한쪽 루트가 이렇게 무방비 상태로 뚫려 있어서는 그야말로 깨진 독에 물붓기일 수밖에 없음은 너무나 자명하다.

북한당국이 마약을 주요 외화수입원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북한에서, 또는 북한을 통해 마약이 한국으로 유입되는 사태를 차단하기 위해 정부는 모든 가능한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남북대화에서 이 문제를 제기해 제도적 장치를 강구하는 일도 시급하다. 북한 스스로도 마약퇴치를 위한 국제협약에 가입하고 ‘마약수출국’의 오명을 벗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남북경협의 대가로 마약이 스며드는 것을 용납할 한국민은 없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