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北 싱가포르 회담 1년]
한국, 북핵협상에 점진적 핵군축 적용땐 미국과 마찰 불보듯
 

싱가포르에서 '6·12 미·북 정상회담'이 열린 지 1년을 맞고 있지만 북한 비핵화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고, 한·미 간에 해결해야 할 현안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여전히 남북 정상회담 등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돌파구로 인식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대화의 문은 열어 놓으면서도 'FFVD(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 이전에 대북 제재 완화는 없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오히려 미국의 관심은 북한에서 미·중 갈등 등 동맹의 문제로 옮겨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반(反)화웨이 전선 동참'과 '한·일 갈등 해소' 문제에 뚜렷한 입장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한·미의 관심사와 인식 차이가 작지 않은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작년 6월 12일 싱가포르 카펠라호텔에서 공동성명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1년전 악수하며 합의문에 서명했지만… -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작년 6월 12일 싱가포르 카펠라호텔에서 공동성명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AFP
미 국무부는 비핵화 없이는 대북 제재 해제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오테이거스 대변인은 10일(현지 시각) "미국은 이것(비핵화)을 여전히 열망·희망하고 있다"며 "경제 제재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북한과의 협상은 열려 있다"고 말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1일(현지 시각) "3차 미·북 정상회담이 전적으로 가능하며, 열쇠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쥐고 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미·북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지만, 아직 '비핵화'의 정의조차 제대로 내려지지 않은 상태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은 "우리 정부가 처음부터 북한이 무조건적인 비핵화 의지가 있는 것처럼 과대 포장한 경향이 있다"며 "북한은 대화를 진행하면서도 핵·미사일 고도화 작업을 진행해 왔다"고 말했다.
 
6·12 싱가포르 미·북 합의 이행 상황
이런 가운데 외교부 강정식 다자외교조정관은 11일(현지 시각)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핵 군축·NPT 관련 장관급 회의'에 참석해 "핵 군축이 개별 국가의 안보 현실을 고려하는 가운데 점진적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우리 정부가 미국·러시아·영국·프랑스·중국 등 핵비확산조약(NPT)에 따른 5개 핵보유국에 대해 가져온 원칙이다. 하지만 북한이 이 같은 접근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할 여지가 있다. 미국이 '빅딜' 방식의 북한 비핵화를 주장하는 상황에서 '점진적 핵 군축'은 전혀 다른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미측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미 동맹 강화와 북한 FFVD를 달성하기 위한 긴밀한 공조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또 미·일 정상회담에서는 "북한 문제와 다른 도전들에 대한 통합된 접근을 위한 한·미·일 3각 공조 강화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했다. 한 외교부 전직 차관은 "동맹의 전열을 정비하고자 하는 미국의 속내가 반영된 것"이라며 "미국에서 말하는 한·미·일 공조는 중국을 상대로 한 팀이 돼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미·중 간 패권 싸움이 격화되면서 미국 입장에서도 한·일 관계를 개선할 필요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에도 한·미 동맹의 세부 항목으로 미국의 '반화웨이 캠페인', 항행의 자유, 사드(THAAD) 배치 문제 등에 있어 미국 편에 서라는 압박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

미·중 갈등으로 비핵화 협상의 판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간 북한 비핵화 문제에서 어느 정도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춰온 중국이 돌아설 수 있다는 것이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미·중 갈등의 진전이 없으면 중국이 제재의 뒷문을 열어주며 북한 편을 들 가능성이 있다"며 "미국도 북한 문제를 고리로 한국에 '확실히 우리 편에 서라'고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남북 정상회담으로 모든 문제를 풀겠다는 생각이 강하다. 문정인 통일·외교·안보특보가 이날 "6월 기회를 놓치면 상황이 상당히 어려워질 수 있다"며 트럼프 방한 전에 남북 정상이 만나야 한다고 한 것도 이 같은 기류를 반영한다. 지난 2월 말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실패 이후부터 거론됐던 '선(先) 남북 정상회담, 후(後) 미·북 정상회담'을 여전히 돌파구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대화 요청에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전직 외교부 관리는 "북한에 구애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스스로 협상력을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존 박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연구원은 "기회를 다시 살리려면 (정상 대화보다는) 디테일한 실무 협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6/12/201906120018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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