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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이 살려낸 '김원봉' 논란..."근데 김원봉이 누구지?"
조선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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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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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톡] 전문기자가 설명해주는 논란의 주인공 김원봉
독립 무장투쟁에는 기여, 김구와는 대척점
"일본 경찰에 뺨맞고 월북, 김일성의 남침에 반대해 숙청"은 확인안돼 

문재인 대통령이 6일 현충일 추념사를 통해 ‘김원봉(1898~1958)’을 소환해냈다. ‘김원봉 재평가’는 진보 진영에서 간헐적으로 제기해온 아젠다 중 하나였다. 대통령은 이날 마음을 먹은 듯, 김원봉의 ‘의미’를 나열했다. "우리 사회를 보수와 진보,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며 "김원봉의 광복군 합류가 독립운동 역량의 결집 계기였으며 국군 창설의 뿌리와 한·미동맹의 토대로 이어졌다"고 평가한 것이다. 진보에서는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는데 반해, 보수진영에서는 "시점과 논리 모두 잘못됐다"고 강력반발하고 있다.

영화 ‘밀정’ ‘암살’등을 통해 1920년대 약산 김원봉은 다소의 대중적 지명도를 갖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전, 이후의 행적은 대중 매체를 통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때문에 진보 진영에서 제기하는 각종 ‘설(設)’은 검증없이 진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제에 부역한 형사로부터 뺨을 맞은 김원봉이 분을 못이기고 월북했다" "김원봉은 김일성의 남침 노선에 반대하다 숙청됐다" 같은 이야기들이다.

김기철 조선일보 문화부 학술전문기자에게 ‘영화 바깥 김원봉’을 물어봤다.
다음은 일부 내용.

Q. 김원봉, 도대체 어떤 인물인가
A. 김원봉은 21세에 의열단을 만들어 경찰습격·일본 고위직 암살 등의 형태로 독립운동을 한 시대의 풍운아였다. 독1948년 남북협상차 북한을 방문했을 때 월북을 해 북한에서 고위직을 지내다 1958년 숙청당했다.

Q.일본이 김구보다 김원봉에게 더 높은 현상금을 걸었다던데 업적이 더 크고 훌륭한 사람이라는 의미인가
A. 김원봉이 창단한 의열단은 1920년대 독립운동 당시 일본에 무장투장을 한 단체다. 당시 국내외 신문에도 많이 알려져 조선에서 가장 유명한 투사 중 한 명이 됐다. 특히 일본인들에게는 김원봉이 커다란 위협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Q.장준하가 기록한 김원봉은?
A.독립운동가 고 장준하 선생은 저서 ‘돌베개’에서 김원봉이 일본군을 탈영해 광복군에 가담하려는 조선인들을 자기 쪽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술과 미인계를 동원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김원봉의 분열주의를 지적한 것이다.

Q 김원봉이 북한에서 숙청 당한 이유가 남침을 반대해서라는데.
A. 김일성이 연안파를 숙청하는 과정에서 김원봉이 포함됐다는 설부터 시작해 남침 반대로 숙청이 됐다는 설 등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김일성이 북한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김원봉을 장애물로 인식해 숙청했다는 것이다. 청산가리를 먹고 자결했다는 말은 자료로 확인된바 없다.

Q 문 대통령이 국군의 뿌리라고 말하는 배경은 무엇인가, 어느 부분이 문제가 되는건가?
A. 김원봉이 창설한 조선의용대가 1930년대 후반 광복군에 통합이 돼 광복군의 한 원류가 됐다는 것은 사실이다. 광복군이 해방 후 국군을 창설하는데에 주요한 요소를 담당했다는 것을 본다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월북 후 북한 내각의 국가검열상·노동상 등 고위직을 지내면서 6·25 전쟁에 직·간접적으로 관여를 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국군의 뿌리’가 됐다는 발언은 국민 감정상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Q 문재인 대통령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김원봉을 이야기 하는건가요?
A. 문재인 대통령이 김원봉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영화 ‘암살’을 본 뒤다. SNS에 "김원봉 같은 분이 빨리 서훈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고 남길 정도였다. 영화 암살이 얼마나 고증이 정확히 됐는지는 모르지만 김원봉의 1948년 이후 행적은 묘사하지 않고 앞부분 행적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춰 미화한 부분이 있다.

Q 김원봉을 인정했을때 어떤 문제가 생깁니까? 이 발언이 왜 문제입니까.
A. 1945년 이전까지는 인정할 부분이 있다. 정부의 방침도 ‘1945년 이전까지 독립에 기여를 헀으면 인정하자’ 주의로 가고 있다. 그러나 1945년 이후 국가에서 주는 훈장은 ‘건국훈장’이다. 건국이라 함은 1948년 이후 정부 수립때 대한민국 건국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어야 하는 전제가 있다. 그 이전에 아무리 독립운동에 기여를 했다 하더라도 북한 건국에 기여하거나 참여한 사람들은 서훈에서 배제시킨다. 만약 김원봉이 서훈되면 북한 건국과 6·25전쟁 발발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사람에게 서훈을 주는 첫 사례가 될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
 
지난 3월 2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 제2관에서는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 국립여성사전시관 특별기획전 서울전'이 개막했다. 사진은 의열단원 박차정(왼쪽)과 의열단장 김원봉의 결혼사진./연합뉴스
지난 3월 2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 제2관에서는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 국립여성사전시관 특별기획전 서울전'이 개막했다. 사진은 의열단원 박차정(왼쪽)과 의열단장 김원봉의 결혼사진./연합뉴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6/07/201906070247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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