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직후의 ‘해방 공간’에서 민족 분단에 이르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인물인 우사(우사) 김규식(김규식·1881~1950) 과 박헌영(박헌영·1900~?)의 전집이 잇따라 준비되고 있다. 전집은 한 역사적 인물의 사상과 행동을 제대로 이해하는 출발점이다. 해방 후 55년. 남북한이 전쟁과 대립을 거쳐 이제 교류와 통일을 얘기하는 시점에 중도 민족주의자 김규식과 좌익 공산주의자 박헌영의 전집이 나온다는 것이 묘한 시의성을 느끼게 한다. 그간 우리 학계는 근대 인물들이 남긴 각종 기록을 집대성한 전집 출간 작업에는 인색한 편이었다.

해방후 남로당을 이끌었으며 북한 부수상을 지낸 박헌영(박헌영·1900~?) 전집이 나온다.

박헌영의 아들 원경(원경·59·평택 만기사 주지) 스님은 평생 모은 아버지에 관한 자료를 집대성, 박헌영 탄생 100주년이 되는 올 연말쯤 총 12권에 이르는 전집을 출간할 예정이다. 전집은 원고지 5만장의 방대한 분량이며, 미공개 사진을 포함해 100여장의 사진자료가 실릴 예정이다.

특히 원경 스님이 지난 10여년 간 모스크바를 직접 방문하거나 모스크바 유학생을 통해 레닌도서관 등에서 입수한 박헌영 관련자료들이 다수 전집에 실려 빛을 보게 된다. 모스크바에 생존해 있는 박헌영의 장녀 비바 안나(75) 여사가 간직해 온 자료들도 상당수 공개된다. 원경 스님은 전집 발간을 필생의 작업으로 준비해 왔으며, 박헌영 탄생 100주년이 되는 올해에 맞춰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전집은 박헌영의 활동 시기별로 일제시대와 해방공간, 월북전과 월북후 활동으로 나눠 편집될 예정이며, 일제시대 경찰 수사기록과 공판자료, 신문보도, 박헌영의 편지와 일기, 연설문, 박헌영 주변 인물들의 증언을 담고 있다.

원경스님 측의 한 관계자는 “박헌영이 지금까지 알려진 것처럼 55년 12월 15일 사형선고를 받은 뒤 바로 처형된 것이 아니라, 이듬해인 56년 11월 30일 스탈린을 만나고 온 김일성의 지시로 산으로 끌려가 살해됐다는 증언 등 새로운 사실들이 적지않다”고 말했다.

사진자료 중에는 북한서 결혼한 부인과 아들·딸이 함께 찍은 가족사진, 김일성·홍명희 등과 함께 찍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초대내각 기념사진 등이 눈길을 끈다.

박헌영은 북한정권에서 부수상을 지낸 6·25전범이면서 ‘미제의 고정간첩’으로 숙청당한 인물로, 남과 북에서 모두 버림받은 ‘실패한 공산주의자’였다.

그는 이념적 동지였던 첫번째 아내 주세죽과 망명생활 중 헤어졌으며, 해방 후 남한에서 만난 정순년과 사이에서 원경 스님을 낳았다.

이후 북한정권에서 부수상을 지낼 당시 김일성의 소개로 북한여성과 결혼, 1남1녀를 뒀다. 그가 숙청된 후 가족들의 생사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승인배기자 jane@chosun.com

‘우사 김규식 생애와 사상’(한울·전3권)은 좌우익 타협·합작노선으로 생애를 일관했던 김규식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48년 4월, 67세의 나이로 38선을 넘어 김일성·김두봉과 성과없는 회담을 하고, 한달 후 ‘5·30 남한단독 총선거’에 ‘불반대·불참가’의 성명을 발표하면서 우사의 정치활동은 끝을 맺는다. 1920년대 이후 줄기차게 우사가 견지해온 좌우합작론의 종언(종언) 시점이기도 했다. 선교사 언더우드의 양자로 미국에 유학한 기독교 장로 출신의 우사다.

그가 외교독립론이나 실력양성론에 서지 않고, 당시 역사에서 실패로 판명난 좌우합작에 매달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현실성은 있었을까.

전집 1권 ‘항일독립투쟁과 좌우합작운동’의 전반부를 집필한 고려대 강만길 교수는 “(이유에 대해) 스스로 말한 적은 없는 듯하다”고 운을 뗀 뒤 “이같은 노선은 민족해방운동전선의 경우 가장 현실적인 것이었다”고 했다.

48년 그 북행(북행)의 길에 우사의 파트너는 백범(백범) 김구(김구)였고, 그같은 맥락에서 두 사람이 함께 거론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전집 2권 ‘남북협상―김규식의 길, 김구의 길’을 집필한 성균관대 서중석 교수는 “45년 이전 중국관내에서의 활동, 이후 47년까지의 활동을 볼 때 두 사람중 누구를 더 평가할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는 “해방직후 친일파 처단을 역설한 사람도, 소작농 위주의 토지개혁을 강력히 촉구한 것도 우사였다”고 말한다. 서 교수는 “좌우대립이 심해 그 시기 절실히 요청되었던, 당파성을 떠난 통찰력을 지니기 쉽지 않았다”며 우사의 ‘식견’을 희귀한 능력으로 평가했다.

경남대 심지연 교수는 전집 집필에 참여해 1권 중 ‘해방과 좌우합작’ 부분을 썼다. 또 해방후 우사를 보좌했던 송남헌 우사연구회 회장의 ‘김구·김규식은 왜 38선을 넘었나’, 김우종 전 중국 흑룡강성 당사연구소장의 ‘중국에서 본 김규식’등 7편의 글이 한데 묶여 전집 3권 ‘몸으로 쓴 통일독립운동사’를 구성한다. 우사연구회는 또 전집 3권외에 우사가 쓴 영문장시 ‘양자유경’과 ‘송남헌 회고록’을 별권으로 포함시켰다.

/이지형기자 jihyung@chosun.com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