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모든 방면서 한국 무시… 그들 본질 못보고 '겉치레말'에 취해
美 패권 넘어서는 '대전략' 추진 중국, 한반도 전략은 그 종속 변수
시 주석 다음 달 방한… 韓·中 대등·공정 관계 분기점 될 듯
 

지해범 동북아시아연구소장
지해범 동북아시아연구소장

한·중(韓中) 정부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6월 말 방한을 협의 중이다. 약 5년 만의 중국 지도자 방한이 큰 성과를 내길 바라지만,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미·중(美中) 무역 전쟁이 한창인 데다, 북핵과 사드, 경제 보복 문제 등 의제가 모두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 주석은 지난 2년간 양국 관계에서 많은 외교적 관례를 깬 인물이다. 그는 2017년 말 문재인 대통령을 베이징으로 초청해놓고 여러 끼를 '혼밥'하도록 홀대했다. 중국 경호팀은 한국 기자를 구두로 짓밟았다. 그해 5월 이해찬 특사가 찾아갔을 때, 시 주석은 상석(上席)에 앉아 이 특사를 아랫사람 대하듯 했다. 이달 초 문희상 국회의장은 만나주지도 않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중국은 군사·경제·환경 등 모든 방면에서 한국을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있다. 중국 군함은 서해 중간선을 100회 이상 침범했고, 중국 전투기는 동해까지 출몰하며 한국을 위협한다. 3년째 계속되는 중국의 사드 경제 보복으로 롯데와 LG 등 많은 한국 기업이 고통을 겪고 있다. 한국을 뒤덮는 미세 먼지의 상당량이 중국에서 넘어오는데도, 중국은 "증거를 대라"며 오히려 한국에 큰소리친다. 중국 방송사들은 한국 프로그램을 베껴 해외에서 큰돈을 버는데도 베이징 정부는 모른 체 한다. 그래서 많은 한국인은 "대중 굴욕 외교"라며 분노한다.

겉치레 말만 화려해진 韓·中 관계

이쯤에서 우리는 한·중 관계가 왜 이런 지경이 되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우리는 중국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저들의 '커타오화(客套話·겉치레 말)'에 취해 있었다. 중국은 한국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내어 양국 관계를 '격상(格上)'하는 것처럼 요란하게 선전했다. 노태우-김영삼 정부 시절 '우호 협력 관계'였던 이 용어는, 김대중 정부 때 '협력 동반자 관계', 노무현 정부 때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 이명박 정부에선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박근혜 정부 때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의 심화'로 계속 바뀌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시 주석과 '실질적인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약속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용어는 화려해졌지만, 양국 관계에서 '전략적 협력'과 '동반자 의식'은 사라져갔다.
 

사회주의 중국의 '말(선전)'과 '행동'이 다른 이유를 알려면, 그들의 한반도 전략을 파악해야 한다. 중국의 한반도 전략은 세계 전략의 일부분이다. 시진핑의 중국은 '위대한 중화 민족의 부흥'이란 꿈[中國夢]을 실현하기 위해 미국의 패권을 넘어서는 대전략을 추진 중이다. 중국은 '강대국 관계를 가장 중시(大國是關鍵)'하면서도, '주변국 관계를 먼저 해결(周邊是首要)'하려 한다. 미국과의 군사적 충돌을 피하면서 아시아 주변국을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유라시아 경제 통로인 일대일로(一帶一路)에 미국이 없는 까닭이다. 주변국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은 한반도다. 중국은 미래 동북아 판도에서 '통일된 한반도가 중국적 질서로 복귀해야 한다'고 본다(王義桅·중국 인민대 교수). '중국적 질서로 복귀'한다는 것은 미군 없는 한반도가 명청(明淸) 시대 조선처럼 중국 품에 안긴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중국은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 동맹 해체를 끊임없이 추구한다. 중국 당정군(黨政軍)이 남북한과 교류를 할 때 '(그것이)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유리하냐, 불리하냐'가 판단 기준이다(時殷弘·인민대 미국연구센터주임).

이러한 전략적 관점에서 보면, 중국이 사드 배치에 극렬히 반대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사드는 중국의 한반도 영향력을 축소시키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북핵 문제에서 북한 편향적 태도를 취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중국은 북한 핵을 없애는 것이 당면 목표가 아니라(장기적 목표일 수는 있지만), 북핵 카드를 이용해 미국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이 더 큰 목표이다. 왕이(王毅) 외교부장이 '비핵화 협상과 평화 협정'의 연계를 강조하는 것도, 평화 협정이 미군 철수의 명분이 되기 때문이다. 김정은을 4번이나 베이징으로 불러 동맹 관계를 과시한 시진핑에게 남북한 사이의 '공정한 중재자'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중국에 고개 숙이고 들어가면 홍콩 꼴 날 것

문 정부 내에는 한국이 미국보다 중국과 손잡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뿌리 깊은 반미(反美) 의식 탓이다. 이들의 바람대로 한국이 '중국 영향권'에 들어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1997년 중국에 반환된 홍콩을 보면 답이 나온다. 100년간 영국식 민주주의를 누렸던 홍콩인들은 요즘 중국 공산당 전체주의 아래서 인권과 언론 자유, 민주주의의 심각한 후퇴에 좌절하고 있다. 대만인들조차 '오늘 홍콩에서 벌어지는 일이(今日香港), 내일 대만에서 일어날까(明日臺灣)' 걱정한다. 한·미 동맹이 깨지는 순간, 한국도 급격히 중국 영향권으로 빨려들 것이다.

6월 말 한·미, 한·중 정상회담은 미·중의 전략 이익이 부딪히는 한반도에서, 패권경쟁이 격화되는 시점에 열린다. 한국 외교에 그만큼 중요하다. 만약 정부가 북핵과 사드 의제에서 어설프게 미·중(美中) 사이의 균형을 취하려 한다면, 중국의 '외교 전략'에 말려들어 한·미 동맹에 큰 상처를 낼 것이다. 우리의 대중국 외교 역량은, 역설적으로 한·미 동맹과 한·일 관계를 강화할 때 더욱 커진다. 우리 정부는 또한 국제법과 평등 원칙에 따라 중국의 안보 내정 간섭과 불공정 경제 보복을 당당히 따져야 한다. 이번 회담은, 한국이 중국과 대등하고 공정한 관계를 수립하느냐의 역사적 분기점이 될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5/21/2019052103467.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