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노무현 정부 때처럼 쌀 1억달러 규모 10만~20만t 보낼 듯
여론조사서 "식량지원 반대"47% "찬성"44%, 국민의견 팽팽
 

정부가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도발 상황에서도 대북 지원에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대북 식량 지원을 두고 국내외적 논란이 커지자 영유아와 임산부 등에 대한 800만달러 규모의 인도적 지원 카드를 먼저 꺼내 들었다. 일단 대북 지원의 물꼬를 튼 후 식량 지원도 연이어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개성공단 기업인 방북(訪北) 허가와 대북 특사 추진까지 이날 청와대가 '대북 지원 패키지'를 제시한 것은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 및 미·북 대화를 견인해 보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해 보상부터 해주는 모양새가 돼선 곤란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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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용(왼쪽)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17일 오전 청와대에서 리비아 피랍 한국인의 석방과 관련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정 실장 오른쪽으로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과 김유근 1차장이 서 있다. 이날 오후 정 실장이 주재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는 국제기구의 대북지원 사업에 800만 달러를 공여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결정했다. /연합뉴스

청와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17일 브리핑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대북 식량 지원이 어려워진 게 아니냐'는 질문에 "식량 문제는 안보 사항과 관계없이 인도적 측면에서, 특히 같은 동포로서 검토해야 한다고 본다"고 했다. 정 실장은 "정부가 대북 식량 지원 원칙을 이미 확정했고, 이를 어떻게 추진하느냐 하는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 다양한 준비를 하고 있다"며 "조만간 구체적 계획을 밝힐 것"이라고 했다. 정 실장은 대북 특사 파견 가능성에 대해서도 "항상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청와대는 이날 오후 곧바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를 열어 세계식량계획(WFP)과 유니세프의 북한 아동·임산부 영양 지원 및 의료 지원 사업에 800만달러를 공여하기로 결정했다. 일단 국제기구를 통해 간접 지원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2017년 9월 WFP와 유니세프의 북한 지원 사업에 남북협력기금 800만달러를 공여하기로 의결했지만 미국 등이 부정적 반응을 보여 집행하지 못했다. 당시 350만달러는 보건사업용, 450만달러는 영양 지원 사업용에 배정했었다.

대북 인도적 지원이 실행되면 대북 식량(쌀) 지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연간 10만~20만t가량의 쌀 지원이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이번에도 당시와 비슷한 규모로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 금액상으로는 1억달러(약 1195억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쌀 지원은 국제기구를 통해 지원하는 방식과 우리 정부가 직접 주는 방식이 병행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대북 지원 계획 발표가 시기상조라는 우려가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일 취임 2주년 대담에서 "식량 지원이 국민적 합의를 얻어야 하고 국회 논의도 있어야 한다"고 했다. NSC 상임위도 "국민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국민적 합의나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이번 대북 지원은 북한에 대한 인도적 차원이라기보다는 남북 정상회담과 미·북 정상회담을 하기 위한 하나의 '당근'으로 보인다"며 "북한 쌀값이 안정된 상태에서 식량난이 과장된 측면이 있고 7월 1일부터는 옥수수가 수확된다"고 했다.

실제로 북한의 올해 1분기 대중(對中) 식량 수입액은 담배나 과일 수입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미국의소리(VOA) 방송이 유엔 산하 국제무역센터(ITC) 통계를 인용해 보도했다. ITC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북한은 중국으로부터 밀가루와 쌀 등 약 1800만달러어치의 식량을 수입했다. 전체 대중 수입액에서 식량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4% 수준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식량 수입 비중(6.5%)보다 줄었다. 반면 감귤·사과·바나나·포도·멜론 등 과일과 견과류의 경우 1분기 수입액이 2600만달러였다. 1분기 담배 수입도 밀가루 수입액보다 많았다. 브래들리 뱁슨 전 세계은행 고문은 VOA 인터뷰에서 "북한의 이 같은 수입 구조는 식량난이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한국갤럽이 이날 전국 성인 남녀 1004명(14~16일)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대북 식량 지원에 대해 응답자의 47%가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지 말아야 한다"고 답했다. 북한 식량 지원을 찬성하는 응답자는 44%였다.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와 종전선언 등 합의한 내용을 잘 지킬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는 61%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잘 지킬 것"이라는 응답은 26%였다.

청와대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해서도 "아직 분석 중"이라고만 했다. 북한의 도발은 외면하면서 대북 지원엔 가속 페달을 밟는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5/18/201905180022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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