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전문가들이 14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2019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 '지금 이대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실현할 수 있겠는가' 세션에서 토론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이상희 전 국방부 장관, 로버트 아인혼 전 미 국무부 비확산군축담당 특별보좌관, 조태용 전 외교부 차관, 박정현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부차관보,김한권 국립외교원 책임교수, 미레야 솔리스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 /김지호 기자

한국과 미국의 북한 전문가들이 14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개막한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에서 북한 비핵화 전망에 대해 토론을 했다. 이들은 지난 2월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한이 미사일 발사 등 무력 도발에 나선 데 대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비핵화 의지가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면서 "이런 현실을 직면하고 비핵화 협상 '플랜 B'를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로버트 아인혼 전 미 국무부 비확산군축담당 특별보좌관은 이날 ALC '지금 이대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실현할 수 있겠는가' 세션에서 "김정은의 행동을 보면 비핵화를 하겠단 의지를 볼 수 없다"면서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도 '트럼프 행정부가 완전한 비핵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아인혼 전 특보는 "김정은에게 경제 개발과 핵 보유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그는 모두 얻으려고 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상희 전 국방장관은 "합리적 의심이 바탕이 돼야 정책도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면서 "냉철한 정보 판단에 근거하지 않은 ‘희망적 가정’에 근거한 ‘순진한 위장된 비핵화 정책’으로부터 전환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은이 경제 발전을 위해 비핵화를 추진할 것'이라는 기대를 버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민구 전 국방장관은 "북한이 단계적 비핵화나 체제보장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는 결국 미국의 영향력을 최대한 약화시키고 핵 포기 이전에 주한미군의 형해화를 요구함으로써 미국이 북한의 부분적인 핵 능력 보유를 수용하게 만들려는데 있다"고 했다. 핵 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고 한미 동맹을 약화시키기 위해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나섰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교착상태에 빠진 비핵화 협상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확실한 목표지점이 설정되지 않았다'고 했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정의(定義)가 정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인혼 전 특보는 "협상의 목표 지점에 대한 합의가 없다면 협상은 진행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오랫동안 유지해 온 목표는 변함이 없다"면서 "바로 미국의 핵우산 제거다. 이것은 한국과 미국이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라고 했다.

조태용 전 외교부 차관은 "'(북한이 주장하는)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말이 과연 북한의 핵무기 포기, 즉 미국이 말하는 FFVD(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와 같은 의미인지에 대해 처음부터 의문이 제기됐지만 '역사적인' 미·북 정상회담의 그늘에 묻혀 버렸다"면서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을 이용한 북한의 가짜 비핵화 놀음은 언젠가 제동이 걸리게 돼 있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북한 비핵화 해법으로 대북 제재가 필수적이라면서 협상이 실패로 끝날 경우의 대비한 예비 계획(플랜 B)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박정현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는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몇 주가 흐르면서 김정은의 ‘플랜 B’가 구체화되고 있다"면서 "그 모습은 아버지인 김정일 시대의 강압외교와 많이 닮았다"고 말했다. 박 석좌는 "북한이 플랜 B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도 반드시 협상의 성공 뿐만 아니라 실패에 대한 독자적인 플랜 B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면서 "북한 정권에 타격을 줄 수 있는 강력한 대북제재 압박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 석좌는 특히 "북한의 사이버 능력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서도 압박을 강화해야 한다"면서 "글로벌 파트너들과 함께 북한의 행동을 예측함으로써 김정은이 강압외교로 국제사회의 분열을 시도하려는 걸 막아야 한다"고 했다.

이상희 전 장관은 "현재와 같은 대증요법식 처방으로는 북한의 핵무장을 결코 막을 수 없다"면서 "한·미가 공유할 대북 정책은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겠다고 하지 않는 한 '핵을 끌어안고 붕괴'하도록 만드는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것이 유일한 선택"이라고 했다. 이 전 장관은 특히 "한미간에 북한의 핵무장에 대해 서로 다른 해법을 추진해서는 안된다"며 굳건한 한미 동맹을 주문했다.

한민구 전 장관은 "북한이 핵을 보유하더라도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닫게 해야 한다. 이것은 대북 억제력의 문제"라면서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기로 어떠한 정치적 목적도 달성할 수 없다는 점을 알게 할 때 핵 보유의 정치적 동력이 상실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태용 전 차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라면 어느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더라도 미북 정상회담에 선뜻 나서지 않을 것"이라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재임 중일 때가 북한으로서는 천재일우의 기회라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미·중 무역 갈등의 영향으로 중국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대열에서 이탈해 북한에 대규모 경제 지원을 할 가능성은 낮게 봤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책임교수는 "북한과 표면적이 우호관계를 유지하지만 본질적으로 북한에 대해 불만과 불신이 존재하는 중국의 입장에서는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한반도 문제로 미국으로부터 불필요한 오해나 갈등을 일으키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분간 북한에 대한 지원보다는 미국으로부터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는 행보에 무게 중심을 둘 것"이라는 것이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부차관보도 "중국은 남북관계가 여전히 좋은 반면에 한미 동맹관계에 기장이 조성되는 듯한 모습에 만족해할 것"이라며 "다만 중국으로선 평양의 다음 행보가 우려될 것이다.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나 핵실험에 나서는 경우 지금의 협상 국면은 파국을 맞이하고 2017년 말 발생한 미·북 간 군사적 긴장감이 재발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리비어 전 수석부차관보는 이와 함께 현재 비핵화 협상의 불확실 요소(uncertainty)로 한국 정부를 꼽았다. 그는 "문재인 정부는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의 최대 ‘패배자’(loser)"라며 "청와대는 정상회담으로 제재완화가 이뤄지고 남북 경제 협력 확대 및 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단 재개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좌절됐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문 대통령의 좌절과 곤경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당연히 이런 상황을 이용하려 들 것"이라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5/14/201905140239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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