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인도적 지원 한다면 최소한 모니터링은 보장받아야"
"현 정권, '북한'과 '인권'에 관심 많은데 유독 '북한 인권'엔 무관심"

북한이 지난 4일과 9일 두 차례에 걸쳐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다. 인도적 지원이란 명분을 내걸고 대북 식량 지원을 본격 추진하려던 한국 정부로선 곤혹스러워졌다. 국민 공감을 통한 대북 지원을 공언해온 정부로선 '북이 쌀에 미사일로 화답했다'는 비판적 목소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외교부 인권대사를 지낸 제성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북한의 적반하장식 태도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식량난이 핵·미사일을 위해 민생을 포기한 김정은 체제의 구조적 문제라는 점"이라고 했다.
 
제성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윤희훈 기자

제 교수는 13일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과의 인터뷰에서 "식량 지원을 하겠다는 우리 정부의 선의(善意)에 북한은 감사는커녕 거듭 도발을 감행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제 교수는 그러면서 "북 식량난은 가뭄 등 기후 영향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김정은 체제가 변하지 않는 이상 해결될 수 없다"며 "올해는 쌀을 지원한다 치자. 그럼 내년, 후 내년엔 또 어떻게 할 것이냐"고 했다. 그는 "식량난이 심각하다면 북한 당국 스스로 농업 개혁을 하든지 외화를 벌어서 쌀을 수입해야 한다"며 "우리 정부도 북한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고 이끌어내야 한다"고 했다.

제 교수는 쌀 지원 자체에 대해서도 "사실상 북한에 달러, 벌크 캐시(대량의 현금)를 주는 것과 다를 바가 없고, 북한의 버릇을 잘못 들이는 일"이라고 했다. 다만 인도적 차원에서 식량 지원을 한다면 "쌀이 북 주민에게 어떻게 지급되는지 최소한 모니터링은 할 수 있어야 한다"며 "정부는 북한에 모니터링을 반드시 요구해야 한다"고 했다.

제 교수는 이명박 정부 때 외교통상부 인권대사를 지냈다. 그는 "식량 지원이 인도적 문제라면, 북 인권 문제도 마찬가지"라며 "현 정부가 왜 북한에 인권 문제를 꺼내지 않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그는 "현 정권의 북한 인권 정책은 '3무'(三無)'다. 무관심, 무책임, 무능력"이라며 "문재인 정권은 '북한(협력)'과 '인권' 문제에는 관심을 두면서 유독 '북한 인권'에는 관심이 없다는 말을 들어서야 되겠느냐"라고 했다. 그는 "오죽했으면 조명균 전 통일부 장관이 북한 인권 정책과 관련해 '높은 점수를 받긴 어렵다'라고 말했겠나"라면서 "현 정부는 북한 인권 관련 실정법이 있는데도 이행을 하지 않고 있다. 이건 직무유기고 심각한 법률 위반"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제 교수와의 인터뷰 전문.

─북한이 4일과 9일 미사일 도발을 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대북 식량 지원을 계속 추진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시점은 우리가 대북 식량 지원을 하겠다고 발표한 직후다. 우리의 선의에 북한은 감사는커녕 재차 도발을 감행했다. 이런 상황에 북한에 쌀을 지원하면 다수 국민이 이견을 가질 것이다. 이런 식의 조건 없는 대북 지원은 북한의 버릇을 잘못들이는 일이 된다.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대북 제재와도 역행하는 정책이다. 정부가 설득력 있는 설명을 내놓아야 한다."

─인도적 차원의 식량 지원은 대북 제재와 무관하지 않나.

"국제사회가 대북 제재를 하는 것은 강력한 압박으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북한 식량난이 왜 발생했나. 일차적으로 북한 당국에 책임이 있다. 당국이 재정을 핵·미사일 개발에 우선으로 사용하고, 핵·미사일 개발로 인한 제재로 식량을 수입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에 식량난이 발생한 것이다. 북한을 변화시키기 위해 대북 제재를 유지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대북 지원으로 숨통을 틔워준다는 건 모순된다. 또 쌀은 군사적으로 전용될 가능성이 큰 지원품이다."

─북한군의 군량미로 들어갈 수 있단 것인가.

"그렇다. 북한은 모든 재원을 다 군에 우선으로 공급한다. 쌀도 우리가 북으로 보내면 군량미로 갈 것이다. 북한 식량난의 핵심은 차별적인 식량 배급이다. 만약 우리가 지원을 한다면 최소한 모니터링은 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북한이 모니터링 요구를 거부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런 식으로 가는 식량은 달러를 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렇더라도 북 주민들에게 조금이나 굶주림을 덜어줄 수 있지 않나.

"내년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북 식량난은 가뭄 등 기후 영향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북 체제의 구조적인 문제다. 식량난이 심각하다면 북한 당국이 농업 개혁을 한다든지 외화를 벌어서 쌀을 수입하든지 해야 한다. 북한이 외화벌이로 모은 달러로 식량을 수입하는 데 쓰도록 해야 하는데, 우리가 쌀을 지원하면 쌀 수입에 쓰려고 했던 달러가 그대로 남게 된다. 결국 쌀을 준 만큼 벌크 캐시를 준 것과 마찬가지다. 정부가 북한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고 이끌어내야 한다."

─그래도 대북 인도적 지원은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은데.

"만약 홍수와 같은 대규모 재난이 발생했을 때 긴급 구호 차원에서 도와주는 것이라면 괜찮다. 또 질병예방을 위한 백신 지원이나 영유아를 위한 밀키트 제공 같은 경우는 지원해도 된다. 이런 것은 군용으로 전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지금의 식량난은 북 체제로 인한 만성적인 문제다. 만약 식량난 해소를 위한 지원을 한다면 북한이 생산량을 늘릴 수 있도록 비료나 종자 등 농사활동에 필요한 물품을 주는 게 바람직하다."
 
북한이 지난 4일 원산 호도반도에서 동해상으로 이스칸데르급 탄도미사일(추정)을 발사하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지난 2017년 11월 이후 1년 6개월 만이다. 북한 매체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발사를 참관했다고 전했다. 북한이 이번에 사용한 이동식 발사대도 성능이 상당히 개량된 것이라고 군은 보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이달 초 미국 워싱턴에서 북한자유주간이 폐막했다. 이번 북한자유주간은 탈북자들의 항공료 지원과 관련해 논란을 빚었다.

"탈북민이나 북한 인권 관련 비정부기구(NGO) 단체들이 통일부에 항공비 지원을 요청했을 때, 정부는 처음에 지원하겠다는 입장이었다고 언론에 보도됐다. 당연히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해서 의외였다. 그러나 결국 지원은 없었다. 정부의 행동을 보면서 오해사기 딱 좋은 행동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어떤 오해를 산단 말인가.

"만약 단체들이 정부의 지원만 기다리고 있었다면 행사 직전에서야 '지원 불가'를 통보받고 워싱턴에도 가지 못했을 것이다. 정부에서 주겠거니 하고 기다렸을 것 아닌가. 당연히 국민 모금 같은 활동도 안 했을 것이다. 단체들의 워싱턴행을 방해하려고 꼼수를 쓴 것이라는 오해를 살 수 있는 행동이었다."

─현 정부의 북한 인권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현 정부는 '북한(협력)'과 '인권'에는 관심이 많은데 유독 '북한 인권'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북한 인권에 대해 계속 쉬쉬하고 있다. 현 정부가 왜 북한에 인권 문제를 꺼내지 않는지 의문이다. 북 주민의 최소한의 인권을 위해 쌀을 지원하겠다면서, 진짜 인권 문제에는 '3무'(三無)', 즉 무관심, 무책임, 무능력하다. 오죽했으면 조명균 전 통일부 장관이 북한 인권 부문에 대해서는 ‘높은 점수를 받긴 어렵다’라고 했겠나."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이 북한 전체가 아닌 평양, 즉 김정은 정권만 바라보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북한의 핵 문제, 3대 부자 세습, 고립과 경제난, 이 모든 것은 북한의 수령 독재 체제로 인해 불거진 문제다. 북한이 유일 독재 체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먼저 해결하지 않으면 북핵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 북한 인권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나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한국 정부가 북핵 문제가 아니라 북한 인권 문제 해결에 힘을 썼다면 북한이 상당히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현 정부의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무관심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가 있나.

"북한인권법이 제정된 지 2년이 넘었지만, 법 시행의 핵심 기구인 ‘북한인권재단’이 표류하고 있다. 작년 2월엔 재단에서 근무하는 실무 직원을 철수시키고, 6월엔 사무실을 폐쇄했다. 2019년도 예산에선 북한인권재단 예산을 108억원에서 8억원으로 줄이기까지 했다. 또 2017년 9월 임기가 끝난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의 후임자를 임명하지 않아 지금까지 계속 공석상태다."

─강경화 장관은 최근 '비핵화협상에서 인권문제는 우선순위가 아니다'라고 했는데.

"만약 강 장관이 일반적인 외교관 출신이었다면 그럴 수 있겠다 생각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외교관들은 인권 문제보다 안보를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 장관은 유엔 인권 최고대표사무소에서 부대표를 역임하지 않았나. 인권 문제에 누구보다 신경을 써야 할 사람이다. 강 장관으로선 '필요한 계기 때마다 인권 문제를 부각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현재는 비핵화 문제가 우선이니 여기에 집중하고 북한 인권문제도 다룰 것이다'라고 했어야 한다. 그런데 '우선순위가 아니다'라고 해버리니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다."

─정부는 남북 교류 협력을 통해 비핵화를 촉진할 수 있다는 입장인데.

"교류협력으로 북한 변화시킬 수 있느냐, 나는 어렵다고 본다. 북한을 변화시키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 먼저는 정보를 계속 북한에 제공해야 한다. 그다음으로는 북한 주민의 인권 의식을 각성시켜야 한다. 마지막으로 장마당을 통해서 시장경제 체제가 활성화되도록 해야 한다. 장마당이 활성화되면 사람이 모이고 정보가 돌고 거기서 또 사람들 간 커뮤니티가 형성된다. 김정은 체제로선 상당한 위협이 될 것이다."

─그래도 작년부터 남북 대화 기조가 마련되지 않았나.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조성된 남북 교류 협력 분위기는 최근 들어 꺼지고 있다. 남북 대화 기조란 것도 특정 시기의 남북관계를 보여주는 그림이었을 뿐이다. 문제는 이게 진짜 모습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사람들은 낭만적 평화주의에 빠져 있다. 낭만적 평화주의에 빠지면 대북 대비태세도 약해지고 국민의 안보의식 수준도 낮아진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5/13/201905130143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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