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경제 전문가 김병연 교수 "北의 최근 도발은 페인트모션"
 

북한이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두 달여 만에 '강경' 도발에 나섰다. 지난 4일 이스칸데르급(級) 미사일을 쐈고, 8일엔 핵·경제 병진을 재선언했다. 한편으론 심각한 식량난을 호소한다. 경제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에선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북한 경제 전문가인 김병연 서울대 교수는 "국제사회의 북한 제재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북 권력층에 큰 (경제적) 충격을 줬다"며 "그 영향이 이제 점차 북 전체에 퍼지기 시작했다. 초입 단계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최근 북 도발은 하노이 회담 때 북한이 내놓은 비핵화 호가를 높이려는 엄포에 불과하다"며 "현 단계에서 제재를 약화시키면 안 된다. 비핵화는 요원해진다"고 했다. 지난달 23일과 지난 7일 두 차례 김 교수와 대면·전화 인터뷰를 했다.
 
김병연 서울대 교수는 지난달 23일 본지 인터뷰에서
김병연 서울대 교수는 지난달 23일 본지 인터뷰에서 "대북 제재는 북한의 무역에 큰 충격을 줬고, 그 파급이 북 전체 시장에 퍼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

―올 들어 북한은 국제기구에 식량 140만t 원조를 요청했다. 북 식량난이 실제로 심각한가.

"꽤 어려운 듯하다. 다만 얼마나 심각한지는 평가가 다를 수 있다. 최근 북한 식량 사정을 실사한 유엔식량농업기구(FAO)·유엔세계식량계획(WFP) 등은 북한이 준 공식 통계를 바탕으로 북한 정부가 동의한 지역에서 북한 정부가 선택한 사람만 만난 뒤 보고서를 냈다. 어느 정도 실체적 진실을 반영했는지 알기 어렵다."

―지난해 북 식량 생산량은 490만t으로 추정된다. 최근 10년래 가장 적다. 올해는 이보다 더 적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우선 가뭄·홍수 등 기후적 원인이 있을 것이다. 여기에 대북 제재로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 정제유 공급이 크게 줄면서 연료 등이 부족해졌고, 연쇄적으로 식량 운송·저장 등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 FAO·WFP 보고서도 손실 곡물이 87만t에 이를 것이라고 봤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때와 같은 큰 위기가 올 수도 있나.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식량 생산 능력이 커졌다. 1990년대엔 한 해 350만t 정도였다. 최근엔 400만~500만t이다. 또 북한에 진짜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중국 개입 가능성이 90% 이상이다. 재밌는 건 장마당 쌀값이 올 초 1㎏당 5000원에서 지난 4월 말 4200원으로 떨어졌다는 사실이다. 주민들이 품질 좋은 북한 쌀 대신 값싼 중국 쌀을 더 먹는 것 같다."

―북한은 왜 지금 탄도미사일을 쐈을까.

"하노이 회담 때 김정은은 처음으로 자신의 매물을 내놨고, 최고 수준의 호가를 불렀다. 미국은 퇴짜를 놨다. 김정은은 꼼수가 통하지 않아 엄청 화가 났을 거다. 대북 제재가 유지되면 갈수록 국내 사정은 나빠질 것이고, 호가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김정은은 이게 안 떨어지도록 노이즈(잡음)를 일으킨 것이다. 앞으로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약세를 드러낸 것이다. '내가 좀 급한데…'라는 뜻 아니겠나. 게임이론에서 말하는 '칩 토크(cheap talk·빈말)', 스포츠의 페인트 모션(속임수 동작)이다. 시간은 미국 편이다."
 
북한 무역 추이 외

―시간이 미국 편, 무슨 뜻인가.

"갈수록 북한이 지는 게임이다. 지금 정도의 제재가 2년 더 지속되면 북한은 진짜 어려울 거다. 제재는 북 무역에 강한 충격을 줬다. 작년 수출은 전년에 비해 90%가 줄었다. 충격은 일정 기간 지나면 북 전체로 퍼진다. 최근 그런 증거가 나온다. 수입 소비재 물가가 작년 10% 이상 올랐다. 평양 시내 아파트 값이 떨어졌고, 전기료가 올랐다. 장마당에선 물건이 줄고 있다. 하지만 아직 전면적(full scale) 충격은 아니다. 쌀값과 환율이 안정적이다."

―뉴욕타임스는 제재로 북 지도층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고 최근 보도했다.

"북한엔 세 계층이 있다. 김정은과 그 주변 최고 권력층, 중간 관료층, 일반 주민층 등이다. 최고위층은 무역으로 떼돈을 벌었다. 로또에 당첨되는 정도다. 석탄 1조원어치 팔면 8000억원 남는다. 자기들끼리 나눠 먹었다. 중간 관료층은 주민들에게 뇌물을 받아 산다. 직장 월급은 3000~4000원 정도다. 장마당 달러 환율로 40~50센트이다. 근데 한 달 생활비가 30~50달러다. 뇌물 없인 못 산다. 주민들은 시장에서 벌어먹고 산다. 최소한 700만명 이상이다. 주민들은 번 돈의 10% 정도를 뇌물로 바친다. 북한은 관경(官經) 유착 사회이다. 뇌물 비율이 부패로 무너진 소련 말기보다 2.7배나 높다."

―이란 핵 문제가 다시 국제적 이슈가 되고 있다. 무엇을 시사하나.

"이란 무역 의존도는 25% 정도였다. 미국이 제재에 나서자 연 4%(IMF 기준)였던 경제성장률이 -3.9%로 폭락했다. 제재 전 북한 무역 의존도는 50%였다. 전 세계 평균 60%와 큰 차이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은 개방경제다. 무역 의존도가 높으니 제재가 효과를 냈다."

―난항에 빠진 비핵화 협상, 어떻게 매듭을 풀어야 하나.

"제재를 유지하면서 '최적 타이밍'을 기다려야 한다. 무역 충격이 시장 충격으로 불붙으면 김정은은 협상 테이블에 나올 수밖에 없는 '진실의 순간'을 맞게 될 것이다. 위기가 코앞에 닥쳤을 때냐, 그 전에 미리 나오느냐 하는 선택일 뿐이다."

―우리 정부는 빨리 제재를 풀려고 노력하고 있다.

"정부가 정치적 성과를 내려고 서두르거나 이념적 결정을 내려선 안 된다. 제재는 '아이언 프레임(철로 만든 틀)'이다. 미 트럼프 대통령이 견고한 틀을 만들었고, 중국도 동참하고 있다. 몇 년간 깨지지 않는다. 국제사회 제재와 김정은 꼼수가 맞붙는 이 구조가 비핵화라는 게임의 80~90%를 결정한다. 한국이란 행위자가 뭘 바꾸고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걸 이해 못하면 엉뚱한 일을 하게 된다."


"北 주민 가계소득 90%, 시장서 나와… 돈 많이 벌면 가정부 두고 과외도"

김 교수는 북한을 설명하면서 시장이라는 단어를 많이 썼다. 그는 "북 주민들 전체 가계소득의 70%, 많으면 90% 이상이 시장에서 나온다"며 "애덤 스미스가 말한 '모든 사람이 상인인 사회'를 보는 것 같다"고 했다.

―장마당에서 뭘 사고파나.

"음식, 화장품, 의약품, 밀수품 등 모든 것이다. 한국산 쿠쿠 밥솥은 엄청난 인기 품목이다. 전엔 소비재 위주였는데 이젠 자본재도 있고, 서비스·노동도 거래된다. 돈 많은 사람은 가정부도 두고, 애들 과외도 시킨다. 아파트 베란다에선 돼지·닭을 키우기도 한다. 공장주도 있다. 사람을 고용해 분업을 시킨다. 자본주의 초기 가내수공업 모습이다."

―북 당국도 장마당을 없애기 어려울 것 같다.

"주민들은 장사해서 먹고살고, 중간 관료들은 주민들에게서 뇌물을 받고 산다. 2000년대 중반 김정일이 '시장은 자본주의 서식처'라며 강하게 단속했지만 결국 실패했고, 2009년 화폐개혁을 했지만 역시 실패했다. 북한은 겉모양은 사회주의지만 그걸 떠받치는 건 무역과 시장이라는 자본주의 기둥이다."

―사람들의 본성도 달라지는 것 아닌가.

"북한 주민은 자본주의와 유사한 환경에서 사는 '호모 이코노미쿠스', 즉 경제적 인간이 됐다. 북한 주민에게 배급이 잘 나왔던 김일성 시대로 돌아가고 싶냐고 하면 '절대 아니다'라고 한다. 그땐 주체적 인간이 아닌 노예 같은 인간이었다고. 내가 일해서 아이들 먹여 살릴 수 있는 자유, 이걸 절대 뺏기고 싶지 않다고 한다. 시장에선 '내가 왕'이다. 장사·사업 잘하면 잘 먹고 잘살 수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5/09/20190509040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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