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5일 북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해 "중·장거리 미사일이나 ICBM은 아니라고 확신한다"며 "북과 협상할 모든 의사를 갖고 있다"고 했다. 북이 탄도미사일 발사 사진을 공개했는데도 '미사일'이란 표현을 쓰지 않고 '그것들(they)'이라고 지칭했다. "국제적 경계선을 넘지 않았다"고도 했다. 이번 도발이 '북 탄도미사일과 관련한 모든 활동을 중단한다'는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란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문제 삼지 않으려는 태도는 두 차례 미·북 정상회담으로 미국 안보 위협을 제거했다고 선전해온 트럼프 행정부 업적에 정치적 상처를 내기 싫어서일 것이다.

폼페이오는 하노이 미·북 회담을 앞두고 "궁극적으로 미국 국민의 안전이 목표"라고 했다. 그 무렵 '북한 비핵화' 대신 '미국에 대한 직접 위협 제거'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최우선 관심이 북 ICBM 제거에 있다는 뜻이다. ICBM급 발사만 아니면 '미 국민이 안전해졌다'는 말로 미·북 협상을 포장해 트럼프의 외교 성과로 내세우려는 것이다. 지금 트럼프 외교는 이란·베네수엘라·시리아 등 곳곳에서 수렁에 빠졌다. 대중 무역 협상도 순조롭지 않다. 북한마저 탈선하면 내년 대선에서 야당 공격을 피하기 어렵다. 트럼프 재선이 북핵 폐기나 동맹 한국의 안보보다 우선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7일 공개된 독일 언론과 인터뷰에서 "한반도의 하늘·바다·땅에서 총성은 사라졌다"며 "한반도의 봄이 이렇게 성큼 다가왔다"고 했다. 지난달 보낸 원고라고 하지만 4일 북 탄도미사일 도발 상황을 반영할 수 있었는데도 내용을 바꾸지 않았다고 한다. 무슨 총성이 사라졌다는 건가. 총성은 우리 쪽에서만 없어졌다. 국군은 '지상·해상·공중 등 모든 공간에서 적대 행위를 중지한다'는 남북 군사 합의를 충실히 이행한다며 방어 훈련을 대폭 줄였다. 최전방 공중 정찰과 서북 5도를 지키기 위한 포병 훈련을 중단했다. 북이 미사일 발사로 군사 합의를 깨도 '우려스럽다'는 말이 전부다.

북의 단거리 탄도미사일은 대한민국이 직접 타격 대상이다. 특히 이번 신형 미사일은 저(低)고도·불규칙 비행으로 우리 미사일 방어 체계를 뚫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상적인 정부라면 서둘러 대응책을 마련해야 하지만 국정원은 6일에도 '분석 중'이라고만 했다. 미국이 자신들 땅에 도달 못 하는 단거리 미사일이라 '괜찮다'고 해도 한국 정부는 '그러면 안 된다'고 설득해야 하는데 오히려 "도발적으로 안 본다"며 맞장구를 쳤다. 내년 총선에서 설사 가짜라도 '평화'를 선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북이 유엔 결의를 위반해도, 남북 군사 합의를 깨도 한·미 정부는 국내 정치의 주판알을 튕기느라 넘어갈 궁리만 한다. 북핵 폐기는 점점 멀어지고 우리 안보도 멍들고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5/06/201905060148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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