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식 정치부 기자
양승식 정치부 기자

북한이 1년 6개월 만에 미사일 도발을 재개한 지난 4일 오전. 군 일부 부대에서는 휴일임에도 '비상대기령'이 떨어졌다. 어린이날 연휴를 즐기려던 많은 군 간부는 약속을 취소하고 부대에 복귀했다. 하지만 오후가 되자 비상대기령은 해제됐다. 한 일선 부대 간부는 "대기령은 해제됐지만 북한이 발사한 게 뭔지 설명은 없었다"며 "그냥 '발사체'라고만 들었는데 그러면 왜 비상대기령을 내린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군 지휘부는 결국 '양치기 소년'이 됐다. 군은 처음에 '미사일 도발'이라고 발표했다가 40분 만에 '발사체'라고 말을 바꿨다. 북한이 5일 관영 매체를 통해 스스로 이스칸데르급 미사일 발사 사진을 공개한 뒤에도 끝내 '미사일'이라고 하지 않았다. 군 내부에서는 "북한이 사진을 공개했기 때문에 미사일이라 인정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지만 국방부는 '신형 전술유도무기'라는 북한 용어를 그대로 사용했다. 그마저도 "한·미 정보 당국은 단거리 발사체와 관련, 세부 탄종과 제원을 공동으로 정밀 분석 중"이라며 판단을 유보했다. 북한이 미사일을 쏜 지 3일째인 6일에도 군은 침묵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군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던 '홍길동' 처지가 됐다. 국방백서에서는 '북한은 적(敵)'이라는 표현이 삭제됐다. 북한이 현존하는 가장 위협적인 적인데도 적을 적으로 부르지 못한다. 훈련을 해도 훈련했다고 떳떳하게 말을 못 한다. 스텔스 전투기인 F35 보유국이 됐지만 도착 환영 행사는 했는지도 모를 만큼 조용하게 치러졌다. 북한이 일거수일투족을 비판해도 우리 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급기야 누가 봐도 탄도 미사일인데 미사일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왔다.

요즘 들어 군 간부들은 사석에서 "오로지 북한과의 '협력'에 초점을 맞추는 현 정부에서 군은 그저 보조를 맞추는 존재로 전락했다"고 한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들 어깨에서 국가와 국민, 가족을 지킨다는 자부심과 명예는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청와대 지침에 따라간 건 '북한이 도발을 중단해 평화가 왔지 않느냐'는 명분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북한이 도발을 재개하면서 그 '변명'마저 흔들리고 있다. 북한은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해 대남(對南)용 지대지 미사일과 장거리 방사포들을 쏴댔다. 한 최전방 부대장은 "요격이 안 되는 그 무기들 앞에서 우리는 '설마 북한이 남한을 향해 쏘겠어'라는 막연한 낙관에 젖어 있는 느낌이다. 불안하다"고 했다. 다른 영관급 장교는 "6·25도 '설마' 했는데 휴일 아침에 터졌고, 제1 연평해전도 월드컵이 열리는데 '설마' 하다가 터졌다"고 했다. 김정은은 공공연하게 "힘에 의한 평화"를 주장하고 있다. 우린 무엇으로 평화를 지킬 것인가.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5/06/201905060150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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