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 어떻게 알아냈나" 묻자… 경찰 "CCTV로 차량번호 확인"
 

지난 1일 대학생 모임 '전대협'이 국회의사당에 붙인 여권 풍자 대자보.
지난 1일 대학생 모임 '전대협'이 국회의사당에 붙인 여권 풍자 대자보. 경찰은 이 단체 수사에 본격 착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대협 제공

대학생 모임인 '전대협'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편지 형식으로 여권(與圈)과 지지층의 행태를 풍자한 대자보를 전국 대학가와 국회에 붙인 것에 대해, 경찰이 무단 가택 침입 논란까지 빚으며 관련자들에 대해 사실상 수사에 나선 것으로 14일 확인됐다.

강원 횡성경찰서의 경찰관 2명은 최근 전대협의 대자보를 운반한 '전대협 지지연대' 소속 A씨의 서울 동작구 자택을 찾아가 압수수색영장 없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

A씨는 갑자기 문을 열고 들이닥친 경찰에게 "마음대로 문을 따고 들어와도 되냐"며 "여기는 주거지 아니냐"고 했다. 그러자 경찰은 "노크를 했고 문이 열리길래 들어온 것이며 신분증을 보여 드리지 않았냐"고 했고, A씨는 "문을 안 잠그긴 했지만, 노크 소리도 못 들었고 했어도 문을 열어줘야 들어오는 거지 마음대로 따고 들어오지 않았냐"고 항의했다.

A씨가 "어떻게 주소를 알게 된 거냐"고 묻자 경찰은 "차량 번호를 확인했으며 수사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대자보를 붙이는 과정이 담긴) CCTV를 본 거냐"는 질문에는 "네, 보여 드려요?"라고 했다. 이 같은 사실은 A씨가 직접 녹취해 제보한 파일에 담겨 있었다. 전대협과 야권에선 "여권 비판 대자보를 붙였다는 이유로 경찰이 민간인 사찰을 하고 강압 수사를 하냐" "군부정권을 방불케 하는 신공안정국"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보수 단체인 '행동하는 자유시민'이 제보받아 공개한 파일에 따르면, A씨가 경찰에 '무슨 일로 왔냐"고 묻자 경찰은 "그 대자보, 벽보 대자보"라면서 "차량 번호를 확인했다. ○○차를 봐서"라고 했다. "신고가 들어와서"라고도 했다.

그간 경찰은 이 사안과 관련해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단계"라며 "수사 여부는 어떤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지 검토해 봐야 한다"고 했었다. 하지만 이날 경찰들의 답변은 실제로 수사가 진행 중임을 인정한 것이었다. 하지만 어떤 혐의인지는 제대로 답하지 않았다. A씨가 "죄목이 확인돼야 보는 것 아니냐"고 하자 경찰은 "그러니까 그걸 저희가 확인하려고 온 것"이라고 했다. 이어 "옥외광고물 불법 부착"이라고 했다.

경찰은 A씨에게 "성함하고 연락처를 알려 달라. 수사 보고를 하고 쳐넣어야 한다"고 했다. 또 "세무서에다 좀 확인을 했다"며 "사업자 등록증 이런 걸 좀 여쭤보려고"라고 했다. A씨는 경찰들이 계속 개인 정보를 추궁하듯 묻자 "별 관여가 없기 때문에 말씀을 안 드리고 그냥 변호사를 불러서 얘기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이에 경찰은 "모른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A씨는 경찰이 허락 없이 집에 들어온 것에 대해 항의하며 "오원춘 사건 당시에는 사람이 죽어가도 경찰이 가택에 강제 진입할 수 없어 대응이 늦었다고 하던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도 했다. A씨는 본지 통화에서 "대자보는 현행법상 문제가 없는 일로 알고 있는데 경찰이 무단으로 개인 정보를 수집해서 가택 침입까지 하다니 상상도 못 할 일"이라고 했다.

'행동하는 자유시민'은 '전대협' 소속 한 대학생의 상담 전화 녹취도 본지에 공개했다. 이 학생은 "대구 북부경찰서 소속 경찰이 전화를 걸어 '이런 대자보를 붙이는 행동이 국가보안법 위반이 될 수 있다' '바로잡으러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했다. 이어 "'김정은을 희화화하는 것인데 이게 왜 국보법 위반이 되냐'고 물으니까 경찰이 대답을 잘 안 해주더라"고 했다. "경찰이 '당신 집을 알고 있다' '지문이 나왔다'며 반말을 했다"고도 했다.

'전대협'은 지난 1일 전국 450여 곳에 '남조선 학생들에게 보내는 서신'이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붙였다. 북한의 선전·선동 기법을 흉내 내 문재인 대통령을 '남조선 인민의 태양 '이라고 했고, '평화·인권 등 아름다운 용어를 사용하고 상대는 막말·적폐·친일로 몰아라' 등 여권을 풍자하는 내용도 담겼다. '행동하는 자유시민' 공동대표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은 "대학생들의 풍자 대자보에 정권 비판 내용이 있다고 온 경찰이 조직적인 수사를 하는 상황으로 보인다"며 "경찰청장 윗선에서 어떤 지시가 있었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4/15/201904150016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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