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대사관, 탈북단체의 도움 요청에 "외교부에 연락해라"
탈북자, 정부 소극 대응에 분통… "北 자극말라는 지침있나"
 

한국행에 나선 탈북민들이 지난 1일 베트남에서 체포돼 중국으로 쫓겨나기까진 약 36시간이 걸렸다. 북한 인권 단체 관계자들과 탈북민 가족들은 3일 "구조 요청을 받은 우리 외교부가 신속하게 대응했다면 강제 추방을 막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고 주장했다. 김석우 전 통일부 차관은 "탈북민 구출에 모든 수단을 동원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김정은 정권의 눈치를 보느라 소극적으로 대응한 것 같다"고 했다.

이번 탈북을 주도한 북한 인권 단체 관계자 A씨는 "천신만고 끝에 베트남에 들어갔는데 다시 중국으로 쫓겨나는 바람에 북송(北送)당할 위험이 커졌다"며 "더 큰 문제는 처음부터 다시 탈북 루트를 개척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번에 탈북민 체포·추방 사건이 일어난 베트남은 한때 '탈북 허브'로 불릴 만큼 탈북민들이 애용하던 단골 탈북 루트였다. 그러나 근래에는 이 루트를 이용해 한국행에 나선 탈북자들이 각종 사고를 당하는 경우는 과거보다 많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1월 메콩강에서 배가 뒤집혀 익사한 탈북 여성도 베트남에서 체포돼 중국으로 쫓겨난 뒤 다시 탈북을 시도한 경우였다. 북한 인권 단체 관계자 B씨는 "이 여성도 베트남에서 붙잡힌 직후 외교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외면당했다"고 했다. 그는 "2017년 12월에도 탈북민 3명이 베트남에서 체포돼 쫓겨난 뒤 중국 공안에 붙잡혀 북송된 사례가 있다"고 했다.

북한 인권 단체들 사이에선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탈북민 이슈를 대하는 정부의 '달라진 태도'가 많이 거론된다. 김광명 '탈북 동포를 향한 등대' 사무국장은 "과거 정부 때는 외교 당국이 탈북자 구출에 적극적이었고, 동남아 등지에서 사고가 날 경우 외교력을 총동원해 강제 북송을 저지한 사례가 꽤 된다"며 "문재인 정부에선 과거와 같은 적극성을 보기 어렵고 탈북민 이슈 자체를 쉬쉬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고 말했다. 전직 통일부 관리는 "김정은 정권을 자극해선 안 된다는 무언의 지침이 있다는 느낌"이라고 했다.

탈북민들 사이에선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다"는 말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앞서 미 국무부는 지난달 13일 발표한 인권보고서에서 한국 정부가 작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탈북자들에게 북한 비판을 못 하게 하는 등 탈북자와 북한 인권 단체를 압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북한 주민을 노예로 짓밟은 김정은은 위인으로 칭송받고 해외의 탈북민은 구조 요청을 해도 외면당하는 게 현실" 이라고 했다.

외교가에선 "김도현 주(駐)베트남 대사가 탈북민 이슈에 소극적이다"란 말도 나온다. 김 대사는 노무현 정부 시절 외교통상부 내 '자주파·동맹파' 갈등이 불거졌을 때 자주파의 핵심 인물이었다. 김 대사는 작년 4·27 남북 정상회담 직후엔 "친미(親美) 외교관들이 나서지 않아서 성공했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가 외교부의 경고 조치를 받기도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4/04/201904040033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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