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의 하노이 공동선언 초안… 볼턴이 주장한 '리비아 모델' 닮아
 

강인선의 워싱턴 Live

지난 2월 2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김정은에게 요구한 북한 비핵화의 구체적인 내용이 처음 공개됐다. 로이터통신이 30일 일부 내용을 공개한 이른바 '빅딜 문서'를 통해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에서 김정은에게 건넨 문서를 통해 '북한의 핵무기와 핵물질 미국 반출 등 북한 핵 시설과 화학·생물전 프로그램, 탄도미사일 등과 관련 시설의 완전한 해체'를 요구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이날 전했다. 미국은 또 "핵 프로그램에 대한 포괄적 신고, 미국과 국제 사찰단에 완전한 접근 허용, 관련 활동 및 새 시설물 건축 중지, 모든 핵 시설 제거, 모든 핵 프로그램 과학자 및 기술자들의 상업적 활동으로의 전환"도 요구했다.

로이터는 북한에 "핵무기를 미국으로 넘기라"고 요구한 이 문서가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오래 견지해온 '리비아 모델'과 유사하며, 김정은에게는 굴욕적이고 자극적으로 보였을 것이라고 전했다. 미·북 모두 명확하게 밝히지 않은 하노이 회담 결렬의 이유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미·북 협상 과정을 잘 아는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은 이날 "이 '빅딜 문서'는 미국이 북한과의 실무협상 결과를 토대로 작성했던 '하노이 정상회담 공동선언의 초안'이었다"고 말했다. 미국은 싱가포르 1차 미·북 협상 때와 마찬가지로 한글과 영문으로 공동선언문 초안을 마련해 김정은에게 제시했다고 한다. 이 소식통은 그러나 "회담 결렬 이후 미국이 이 초안을 한국 정부와 공유하지는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불발된 하노이 공동선언 초안은 이번에 로이터가 보도한 비핵화 조항을 비롯, 종전선언과 연락사무소 설치, 대북 경제 지원 방안, 미군 유해 발굴 작업 등 5개항으로 구성돼 있었다고 한다. '북한이 해야 하는 비핵화 조치'와 '미국이 제공할 상응 조치'가 담겨 있었다는 것이다. 볼턴 보좌관도 최근 한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광범위하게 정의된 비핵화'를 요구하고 이에 상응하는 경제적 보상을 해주겠다는 내용을 남은 '빅딜 문서'를 건넸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공동선언문 초안 내용 중 상응 조치 부분은 스티븐 비건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김혁철 북한 대미 특별대표가 실무협상을 통해 대부분 합의한 내용이었다고 이 소식통은 전했다. 하지만 비핵화 부분은 미국 측이 꺼내기만 하면 북한이 '강도' 같다고 날뛰는 바람에 실무협상에서는 제대로 얘기를 못 하고 미국 측이 요구하는 바를 그대로 써서 김정은에게 제시했다고 한다. 비핵화 문제는 트럼프와 김정은의 담판으로 넘겼다는 것이다. 미국은 그러나 북한 측에 미국이 생각하는 비핵화 정의를 여러 차례 밝혔기 때문에 김정은에게 이 내용이 전달됐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다고 한다. 워싱턴 전문가들은 "그런데도 김정은이 오로지 '영변 핵시설 해체'만으로 '대북 제재 해제'를 얻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하노이에 왔다는 것은 미스터리"라고 보고 있다.

워싱턴의 한 전문가는 "미국은 이번에 구체적인 내용이 처음 공개된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 원칙에서 한 발짝도 벗어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미국 협상팀이 이런 비핵화 개념을 북측에 설명하려고 할 때마다 북한이 '강도 같다'며 과격하게 대응하는 바람에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측면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래서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하노이 회담에선 아예 작심하고 비핵화에 대한 미국 입장을 문서로 제시했다는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4/01/2019040100247.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