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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호] 이제 북한엔 '물과 공기만 마시며' 기다릴 주민은 없다
조선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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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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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北 태도 김정은 생각이 매일 바뀌는 것
北 연일 자력갱생 호소 모습 '대량 餓死' 불렀던 시절 떠올라
北 오판 않도록 현실 알리는 게 우리 정부의 운전자 역할
 

태영호 前 북한외교관
태영호 前 북한외교관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 후 김정은이 흔들리고 있다. 북한은 회담 결렬 직후 며칠 동안 회담이 미·북 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도약시킬 수 있는 중요한 계기'였다고 자축했으나 일주일이 지나 세계가 정상회담에서 합의문이 나오지 않아 아쉬워하고 있다면서 회담 결렬 소식을 주민들에게 우회적으로 전했다.

3월 15일 최선희 부상이 기자회견을 통해 핵·미사일 실험 카드까지 꺼내 들며 김정은의 입장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미국을 기선 제압할 듯하였으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3월 22일 개성 남북연락사무소에서 급히 인원을 전부 철수시켜 대남 압박 공세를 펼 듯하더니 25일 슬며시 다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이런 오락가락 행보가 대응 수위를 조절하면서 협상을 이어가려는 계획된 행동이라고 평가하고 있으나 필자가 보기에는 김정은 생각이 매일 강온을 넘나들고 있는 것 같다. 하노이에서 최고 존엄이 뒤통수를 맞았는데 평시 북한이라면 지금쯤 미국을 성토하고 강경 행동으로 나왔어야 정상이다. 기존 상식이 들어맞지 않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북한 내부 사정이 어려워 북한으로서도 새판을 짜는 데 고민이 많다는 것이다.

2017년 11월 김정은은 '핵무력 완성'을 선포했다. '혁명의 승리가 눈앞에 왔다'면서 '강력한 보검'이 생겼으니 잘 살 날만 남았다고 주민들을 격려했다. 그러던 북한은 최근 '자력갱생만이 살 길이다'라고 외치더니 며칠 전부터 '물과 공기만 있으면 살 수 있다는 각오'를 가지라고 주민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이 구호를 들으니 1990년대 말 대량 아사 현상 앞에서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라며 김일성 시신이 있던 금수산 태양궁전 개건에 수억달러를 쏟아붓고 핵 개발을 멈추지 않았던 '고난의 행군' 시대가 생각난다.

당시 덴마크 주재 북한 대사관에서 근무하던 필자는 거의 매주 덴마크 외무성을 찾아가 굶고 있는 북한 주민들에게 다만 얼마간 식량이라도 지원해 달라고 애원했다. 덴마크 정부는 1996년 9월 강릉잠수함 침투 사건으로 전 세계가 북한을 질타하고 있을 때였지만 굶어 죽어가는 북한 주민들을 외면할 수 없어 치즈 3000t 등 수백만달러의 식량을 무상으로 주었다. 1998년 8월 북한이 '광명성 1호'를 발사해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으나 미국·유럽은 인도주의 식량 지원을 멈추지 않았다.

지금 상황은 그때와 완전히 다르다.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 식량 지원은 물론 민생 경제까지 제재로 꽉 막혀 있어 북한 주민들 고통이 커가고 있으나 북한에 식량 지원을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나라가 없다. 지금 수준의 제재가 계속되어도 북한은 힘들어진다.

하노이 회담 결렬 후 대북 제재 회피망을 강력히 처벌하려는 미국 움직임이 경고성 차원을 벗어나 미 해안경비정까지 한반도 주변에 배치하는 등 행동으로 넘어가고 있다. 하노이 회담에서 제재 해제에 대단히 집착하는 김정은 모습을 본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제재로 김정은 생각을 바꿀 수 있다고 자신감을 가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한국에 미국 눈치를 보지 말고 남북합의서를 이행하라고 압박하는가 하면 은근히 중국과 러시아 쪽으로 다시 가 붙고 있다.

이럴 때 우리 정부가 중재자, 촉진자, 운전자 역할을 해야 한다. 남북 정상회담이라도 열고 현 상황에 대해 올바로 알려줘 북한이 오판하지 않게 해야 한다. 북한 비핵화가 한두 번 정상회담이나 합의로 성사될 일이 아니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며 어차피 단계적으로 갈 수밖에 없다.

비핵화 초기 단계에서 핵 물질 생산 관련 시설을 모두 공개·폐기하는 것은 첫걸음이다. 김정은에게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업지구에 대한 제재 해제라도 가져가려면 숨겨놓고 있는 우라늄 농축 시설들을 내놔야 한다고 솔직하게 얘기해 줘야 한다. 비핵화 입구에 들어서면서 영변만 내놓고 다른 것들은 그대로 가지고 있겠다는 자세를 용인해주면 핵·미사일 폐기까지 절대 갈 수 없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대' 때 수많은 북한 주민이 배급소에 식량이 도착할 날만 기다리면서 '물과 공기만 마시다' 굶어 죽었다. 이제는 물과 공기만을 마시면서 죽을 날만 기다릴 북한 주민들이 아니다. 북한에서 대량 아사 현상이 일어나더라도 북한 주민들이 불쌍해 핵을 가지고 있는 북한에 인도주의 식량 지원에 나설 나라도 없다. 김정은이 북한 주민들을 걱정하면서 '핵 포기'라는 과감한 전략적 결단을 내릴 일만 남았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3/31/201903310191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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