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때 트럼프 미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북한 핵무기와 핵물질을 미국에 넘기라"고 요구했다고 외신이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전했다는 이른바 '빅딜 문서'에는 모든 핵시설과 탄도미사일은 물론 화학·생물전 프로그램까지 해체해야 한다는 직설적이고 포괄적 요구가 담겼다고 한다. "북한이 먼저 핵을 완전히 반출하면 그 후에 보상해주겠다"며 볼턴 안보보좌관이 제기했던 리비아식 해법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오는 4월 11일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다. 미국이 "그날밖에 일정이 나지 않는다"고 하자 대통령이 오랜 기간 공들여온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식 참석도 포기하고 달려가기로 한 것이다. 문 대통령이 만사를 제쳐놓고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을 서두르는 것은 미·북 협상 틀을 복원하기 위해서다. 트럼프 대통령에 이어 김정은과의 회담을 추진한 뒤, 그 결과를 바탕으로 미·북 간의 대화를 재개할 수 있는 접촉점을 제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돈다.

하노이 회담 결렬로 헝클어진 미·북 협상 구도가 통제 불능 상태로 악화되지 않도록 관리할 필요가 있다. 우리 정부가 긴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재는 협상 당사자들의 입장을 정확히 파악하고, 양측이 수용 가능한 대안 제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하노이 회담 직후 문 대통령이 "미국과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를 협의하겠다"고 했을 때 미국 측은 "귀를 의심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국이 동맹국인 미국 대신 북한 편을 든다는 불만인 것이다. 강경화 외교장관이 지난 주말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만난 뒤 "개성 공단, 금강산 관광 문제를 포괄적으로 논의는 했다"면서도 "아주 구체적으로, 정식 의제로 올린 것은 아니다"라고 아리송한 말을 한 것이 바로 그 연장선인 셈이다. 김정은의 서울 답방을 빠른 시일 내에 성사시키겠다는 조바심에 상대가 받아들일 수 없는 중재를 하겠다고 무리수를 두다간 한반도 문제의 '운전석'은커녕 '조수석'에서도 밀려나는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3/31/201903310189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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