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미래탐험대 100] [10] 외국서 北인권 돕는 사람들, LA 링크 본부에 간 25세 장휘씨
 

"'정치를 넘자' 그게 우리 단체가 탈북인 인권에 접근하는 가장 큰 원칙입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롱비치에 있는 미국 내 탈북민 지원 단체 링크(LiNK·Liberty in North Korea·북한을 위한 자유)의 크리스 송 매니저 목소리엔 힘이 넘쳤다. 그를 따라 들어간 링크 사무실의 작은 방 벽면엔 별 모양 스티커 수백개가 붙어 있었다. 주리·무찬·준하…. 별엔 까만 글씨로 이름들이 적혔다. 크리스는 "지금까지 구출해 온 탈북인들의 가명(假名)"이라고 했다.

링크는 미국을 선택하는 북한 주민의 탈북과 정착을 돕는 비영리기구(NGO)다. 첩보 영화를 방불케 하는 지난달 주(駐)스페인 북한 대사관 습격 사건의 리더로 알려진 에이드리언 홍창이 미국에 설립했다.(홍창은 10여년 전 링크를 탈퇴하고 북한 정권 전복을 목표로 활동 중인'자유조선'에서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계 미국 거주자들의 캠페인으로 '탈북민 100명을 구하자'는 목표를 세우고 2004년 결성된 링크는 지금까지 탈북자 1000명(3월 4일 기준)을 구했다.

정권 따라 바뀌는 한국과 달리, 이념 떠나 北 인권 개선에 초점
지난달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컬버시티에서 탈북화가 선무(오른쪽)와 만난 탐험대원 장휘. 선무는 미국·중국 등지에서 북한 인권 실태를 고발하는 정치 팝아트 활동으로 잘 알려져 있다.
지난달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컬버시티에서 탈북화가 선무(오른쪽)와 만난 탐험대원 장휘. 선무는 미국·중국 등지에서 북한 인권 실태를 고발하는 정치 팝아트 활동으로 잘 알려져 있다. /윤수정 기자

미국 링크는 한국의 탈북민 지원 단체와 여러 면에서 달라 보였다. 남북 관계, 혹은 미·북 관계 등 정치적 사안에 대해 별다른 '색깔'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인권과 관련한 이슈에 대해선 단호한 목소리를 냈다. 북한 인권 개선에 모든 초점을 맞춰둔 모습이었다. 인권 문제가 정치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외부인'에 대해 적대감을 드러내는 도널드 트럼프 정권이 들어선 데 대해서도 별 반감을 보이지 않았다. 탈북민 출신으로 한·미 탈북 단체를 모두 경험하고 링크를 방문 중이던 김금혁(28)씨는 "한국 탈북인 지원 단체는 정권이 바뀌면 '목소리'가 덩달아 달라질 때가 많은데 미국 링크엔 정치색이 거의 없다는 점이 가장 놀라웠다"고 했다. 정치에 치우친 탈북민 문제, 자녀 교육의 어려움, 탈북민에 대한 한국인의 부정적 시선 등으로 인해 최근엔 한국 대신 미국을 선택하는 탈북민이 늘고 있다고 한다.

링크는 북한을 벗어나 중국이나 동남아시아를 살얼음 걷듯 떠도는 탈북민들을 한국·미국 등 좀 더 안전한 국가로 탈출시키는 일을 한다. 링크 사무실엔 탈북민 한 명을 구해내기 위해 얼마가 필요한지를 알기 쉽게 적은 설명서가 있었다. '옷과 음식 250달러, 교통비 500달러, 숙박 100달러….' 그렇다. 그들도 먹고 쉬고 이동해야 하고 거기엔 돈이 들어간다는 사실이 현실로 확 다가왔다.
 

UCLA 링크 지부 회원들과 -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한인타운에서 UCLA 링크(LiNK) 지부 회원들의 뒤풀이에 참석한 지부회장 그레이스 박(가운데 모자 쓴 이), 그 앞으로 장휘(왼쪽)와 에이븐 프라단(오른쪽). 이들은 “북한 인권 문제는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없는 인류 보편의 문제”라고 말했다.
UCLA 링크 지부 회원들과 -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한인타운에서 UCLA 링크(LiNK) 지부 회원들의 뒤풀이에 참석한 지부회장 그레이스 박(가운데 모자 쓴 이), 그 앞으로 장휘(왼쪽)와 에이븐 프라단(오른쪽). 이들은 “북한 인권 문제는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없는 인류 보편의 문제”라고 말했다. /윤수정 기자

이들이 돈을 모으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흥미진진했다. '큰손' 몇 명이나 정부 지원에 의존하는 대신, 취지를 잘 전달하고 흥미롭게 표현해 풀뿌리 방식으로 후원금을 모은다고 했다. 뜻을 함께하는 대학생이 대학에 동아리를 만들어 대학생을 대상으로 모금 활동을 하는 '학내 동아리'는 수백 개에 달한다. 소문을 타고 최근엔 링크 동아리가 중·고등학교로도 확대됐다. 미국 텍사스주(州) 댈러스에서 만난 재미교포 2세 황예원(14)·태찬(16) 남매는 자신이 다니는 중·고등학교에 링크 '지부'를 만들어 모금 활동을 펼쳤다고 한다. 예원양은 "'천국의 국경을 넘다'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는데, 큰 충격을 받아 링크 활동에 동참키로 했다"고 말했다. "저희와 같은 또래잖아요. 그런데 북한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죽을 고비를 넘겨야 한다는 사실이 굉장히 슬펐습니다. 큰돈은 아니지만 우리 학교 친구들이 모은 돈이 북한 친구 한 명에게라도 자유를 찾아주는 데 쓰였으면 좋겠어요."
 

탈북자 한 사람을 구하는 데 필요한 비용 정리 그래픽

이들은 '인권'이라는 목표를 향해 일사불란하고 힘차게 나아가는 느낌이었다. 그 중심엔 '흥'이 있었다. 예컨대 찰스라는 학생은 '북한 사람을 안아주세요'라는 판을 들고 길에서 '허그(껴안기)'를 해주는 등 재미있는 모금을 통해 8700달러를 모아 링크에 기부했다. 텍사스대 링크 동아리는 영화 상영, 과자 판매로 9345달러를 모금했고 로니라는 젊은이는 페이스북을 통해 '제 서른 살 생일입니다. 탈북민 인권을 위해 30달러를 기부해주세요'라고 홍보해 3150달러를 모아서 링크에 전달했다고 한다. 북한학과에 다니고 많은 탈북민 친구를 만나면서도 이들이 안전하게 정착하려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다소 부끄러웠다. LA 소재 캘리포니아대(UCLA) 링크 지부 그레이스 박(21) 회장은 "탈북자들을 만나 이야기 들어보면 그들이 처한 상황이 진보와 보수를 떠난 생존의 문제라는 걸 누구나 알 수 있다"며 "북한 인권 문제는 논쟁 자체가 불가능한 주제"라고 했다.

어느 날 밤, 링크 UCLA 지부에서 기부자들에게 손으로 감사 카드를 보내는 일일 자원봉사를 마치고 한인타운의 한 삼겹살집에서 뒤풀이에 참석했다.(영국·스페인·뉴질랜드 등 정말 다양한 나라에서 기부금이 온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한창 흥이 올랐을 때, 옆자리에 앉은 명랑한 미국인 친구 에이븐 프라단(21)에게 물었다. "넌 미국인인데 왜 북한 인권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 그의 답을 듣고 난 삼겹살이 목에 탁 걸렸다. "당연한 거 아냐? 지구 어딘가에 인간이라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하나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잖아!"

[미탐100 다녀왔습니다]

다시 탈북한다면 한국을 택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친구의 말, 귀에 맴돌아

새벽 동이 틀 때까지 이야기가 깊어지던 어느 날 북한에서 온 친구가 나직이 속삭였습니다. "탈북할 때로 돌아간다면 한국행을 택하지 않을지도 몰라."

북쪽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놀고, 먹고, 마시길 좋아하는 스물다섯 살 대학생 장휘입니다. 고등학교 때 '김정일 로열패밀리'를 읽었습니다. 김정일의 처조카인 이한영이 탈북 후 남한에서 피살당하기 직전까지의 삶의 기록이 충격적이었습니다. 북에서 고통받는 이들의 일상이 궁 금해졌고, 고려대 북한학과로 진학했습니다.

국내 탈북인 3만명 시대. 자유와 인권을 찾아 목숨 걸고 강을 건넌 탈북인의 용기란 결코 가벼운 게 아니었을 겁니다. 그들의 사연에 등 돌리지 않는 사소한 시작도 좋습니다. 작은 관심의 물길을 모으다 보면 결국 남북이 왕래할 만큼 큰 통일의 물길이 트이지 않을까요? 그날을 위해 묵묵히 준비하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3/29/201903290024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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