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이 3·1운동 석 달 뒤인 1919년 6월 '대한민국 프레지던트(president)' 명의로 일왕에게 영문(英文) 편지를 냈다. '대통령'이 아니고, 한성 임시정부의 '집정관 총재'란 뜻이었다. 편지는 "한반도에서 대한민국이 수립되었다.(…) 외교관을 제외한 모든 일본인을 한국에서 철수시키라"고 요구했다. 일제는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그해 상하이와 러시아령 임시정부도 성립됐지만 모두 무시했다. 그러나 뒤로는 임정을 거꾸러뜨리려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임정 인사의 동향을 파악하고, 회의 내용과 내부 알력까지 캐내려 했다.

▶지난 백수십 년 동안 세계에는 80개 넘는 망명정부 혹은 임시정부가 존재했다. 팔레비 왕실이나 중앙 티베트 행정부처럼 몇몇은 본토 밖에서 미미한 대로 망명정부 대접을 받곤 하지만, 대개는 짧은 기간 명맥을 유지하다 스러져갔다. 그러나 2차 대전이 끝난 뒤 본토에서 정통성을 잇는 정부로 거듭 태어난 경우도 있다. 우리 상하이 임시정부가 대표적이다. 2차 대전 중 프랑스가 나치에 점령당하자 드골이 런던에 세운 자유프랑스 망명정부도 그렇다. 해방 이후 드골이 프랑스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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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주재 북한 대사관 습격을 주도한 사람들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전복하고 북한에 새 나라를 건설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스스로 '임시정부'임을 선언했다. 그에 걸맞게 조직 이름도 '천리마민방위'에서 '자유조선'으로 바꿨다. 이들은 지난 3·1절을 맞아 "북한을 대표하는 단일하고 정당한 임시정부 건립"을 천명했다. 이들은 "우리는 행동으로 북한 내 혁명 동지들과 함께 김정은 정권을 뿌리째 흔들 것"이라고 했다.

▶북한 주민들은 김정은이 이복형 김정남을 암살한 뉴스도 못 들었을 것이다.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은 자유조선이 보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씨 집안에선 김한솔이 장손이다. 김한솔이 임시정부 수반으로 공식화되면 김정은 세력이 받는 위협은 작지 않을 것이다.

▶구약 욥기에는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라는 구절이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그랬다. 1919년에 세계의 누가 대한민국이 훗날 세계에서 일곱째로 인구 5000만, 소득 3만달러의 경제 대국이 되리라고 상상이나 했겠나. 자유조선이 그 길을 잇지 말하는 법은 어디에 있나. 지옥과 같은 북녘 땅에서 노예로 살고 있는 동포들에게 이것 외에 어떤 희망이 있나. 저 용감한 이들을 마음속으로 응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 답답할 따름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3/28/201903280378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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