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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평중] '관제 민족주의'가 나라를 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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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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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제 민족주의 치명적 독소… 권력, 실정 숨기고 정통성에 악용… 정권 무능·빈곤·양극화 은폐도
친일 적폐 청산이 한국판 문화대혁명 비화 땐 삼권분립·법치주의 파괴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민족주의적 역사 정치가 불을 뿜고 있다. 친일 적폐 청산을 바라는 대중의 감성적 요구와, 북한과 함께 한반도 평화를 이루자는 '우리 민족끼리'의 열정이 그것이다. 왜곡된 한반도 현대사를 바로잡는다는 '백년 전쟁'의 열망이 역사 전쟁을 부추긴다. 그리하여 친일 적폐 청산 운동이 대대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우리 민족끼리'는 2차 미·북 정상회담의 결렬로 숨 고르기에 들어갔을 뿐 언제든 다시 불붙을 수 있다.

지금의 반일 정서와 '우리 민족끼리'는 전형적 '관제 민족주의(official nationalism)'의 소산이다. '관 주도 민족주의'라고 해서 정부가 국민에게 일방적으로 민족 감정을 주입하는 건 아니다. 대중이 민족주의적 감성을 이미 깊숙이 내면화했기 때문이다. 일제 식민 통치와 분단에서 비롯한 뼈아픈 역사의 경험은 한국인의 민족주의적 감성을 극대화했다. 우리의 민족 감성이 평화 지향의 저항적 민족주의였다는 사실(史實)이 한국 민족주의의 정당성을 한층 강화했다. 이제 한국 민족주의는 신성불가침의 성소(聖所)가 되어 누구도 그 역린을 건드릴 엄두조차 못 낸다. 관제 민족주의가 번성할 수 있는 최적의 토양이다.

하지만 민족 개념 자체가 서양 근대의 산물임을 주목해야 한다. 가톨릭 교회와 신성로마제국이 지탱한 중세 봉건 체제의 붕괴 이후 개별 민족의 국민국가가 그 빈자리에 들어섰다. 근세의 시작이었다. 언어·신화·문화·관습·혈통을 공유한 특정 종족 집단이 민족의 이름으로 '호명'되어 정치 주체로 등장했다. 근대 특유의 정치 기획이 '상상된 공동체(imagined community)'인 민족을 창출해낸 것이다. 국민국가의 탄생과 민족주의가 동행한 게 그 증거이다. '민족이 민족주의를 만든 게 아니라 민족주의가 민족을 만들었다.'

민족과 민족주의가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구성물이라는 사실은 우리 역사에서도 확인된다. 몽골 침략으로 바람 앞의 촛불이던 고려 말에 단군신화는 집중적으로 재조명되었다. 한민족의 영광을 외친 환단고기 같은 위서(僞書)가 일제 때 '발견'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위기의 순간에 민족은 '발명'되고 민족주의는 '호출'된다. 근대국가에서 국사와 국어는 모두 의무교육 과목이며 학교는 대표적인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이다. 민족과 민족주의야말로 국민 만들기와 나라 세우기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우리네 마음의 습관에 뿌리내린 민족주의는 민중의 자발적 선택이라는 모습으로 표출된다. 친일 적폐 청산이 대중의 공감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배경이다.

그러나 관제 민족주의엔 치명적 독소가 있다. 권력은 실정(失政)을 숨기고 정권의 정통성을 높이기 위해 민족주의를 악용한다. 유신 체제는 정부 주도로 민족주의 사관을 극대화해 박정희 독재를 정당화했다. 북한은 김씨 세습 정권을 옹호하려고 우리 민족의 역사 전체를 '김일성 민족'의 주체사관으로 변질시켰다. 관제 민족주의의 최대 폐해는 현실의 불평등과 빈곤, 양극화와 정권의 무능 같은 진짜배기 문제를 은폐한다는 데 있다. 러시아·중국·터키·베네수엘라에서 보듯 수평적 형제애로 맺어진 허구의 민족 개념을 정권이 부추겨 심각한 체제 모순을 감추는 것이 관제 민족주의의 본질이다.

나아가 문 정부는 우리의 생사가 걸린 남북문제까지 관제 민족주의로 분식(扮飾)하려 한다. '우리 민족끼리'의 민족적 감성에 호소해 북핵 위기를 풀고 한반도 평화 체제를 건설하자는 그림은 아름다워 보인다. 하지만 민족 감정으로 남북 관계를 해결하려는 문재인식 관제 민족주의는 제대로 된 출발조차 어렵다. '김일성 민족'임을 강조하는 북한 민족주의와, 한민족을 내세운 한국 민족주의의 동행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삼일절과 상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함께 기리자는 우리의 제안을 북한이 받아들일 수 없었던 데는 사상적 이유가 있다.

문재인 정부의 관제 민족주의는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친일 적폐 청산이 민중의 동의를 업은 한국판 문화 대혁명으로 비화할 때 삼권분립과 법치주의가 파괴된다. 정권이 폐 쇄적 민족 감정을 부추기는 국가는 예외 없이 정치 후진국이다. 남북 국가 이성의 긴장을 무시한 관제 민족주의는 우리 안보를 총체적 위기로 몰고 간다. 경제 실패와 국정 난맥을 감추기 위한 문 정부의 관제 민족주의가 나라를 망친다. '우리 민족끼리'의 국수주의적 민족주의는 역사에 대한 반동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이야말로 식민지 콤플렉스와 영원히 결별할 때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3/28/201903280377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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