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인권행사 지원에 조건 걸어 "정부, 北 눈치 보느라 인권 외면"
탈북단체, 통일부 제안 거절… 유튜브로 후원금 2000만원 모금
 

통일부가 다음 달 미국에서 열리는 북한 인권 행사에 참가하는 국내 인권 단체들에 4·27 판문점 선언 등 남북 합의를 비판하지 않는 조건으로 항공료 지원을 제안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탈북민 등 북한 인권 활동가들은 "무리한 요구"라며 정부 지원금을 거절했다.

26일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 등에 따르면 지난주 통일부 관계자는 '2019 북한자유주간' 참가단에 전화해 "행사 때 4·27 판문점 선언 등 남북 합의나 정부 시책에 대해 비판을 자제하고, 대북 전단 살포를 중지하면 항공료를 사후 지원해 주겠다"고 말했다. 김 대표 등 인권 단체 관계자 17명은 4월 28일부터 1주간 미국 워싱턴DC와 뉴욕에서 '2019 북한자유주간'에 참가할 계획이었다. 북한 인권 관련 세계 최대 규모 행사로, 2004년부터 미국과 한국에서 번갈아 열린다. 올해는 미국 상·하원에서 북한군 인권 실태 등에 대해 증언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정부의 항공료 지원 여부가 논란이 됐다. 북한 인권 단체들은 지난 1월 통일부에 참석자들의 항공료 2720만원을 지원해 달라는 요청서를 보냈다. 통일부는 2015·2017년 미국에서 행사가 열렸을 때 항공료 2700만~2800만원을 지원했었다. 통일부는 지난 2월 참석자를 불러 구두로 "항공권을 지원하겠다"고 하면서 "지원 사실을 비공개로 해 달라"고 했다는 것이 인권 단체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전례 없던 요구다. 최정훈 북한인민해방전선 대표는 "지원 사실을 외부에 발설하지 않겠다는 서약서까지 썼다"고 말했다.

그러나 통일부는 지난 11일 인권 단체에 '지원 불가'를 통보했다. 이유도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 15일 언론 보도를 통해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야당과 보수 단체가 반발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지난 20일 '올해 북한자유주간 행사를 지원할 것이냐'는 윤상현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의 질문에 "현재 검토 중이고, 지원을 중단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북한 인권 단체 관계자들은 "그 직후 통일부가 다시 접촉해 왔다"고 했다.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지난 22일 통일부 국장급 인사가 전화를 걸어와 자유주간 행사 때 남북 합의 비판을 자제해 주면 사후에 항공료를 지원해 줄 수 있다'고 했다"고 전했다.

북한 인권 단체들은 통일부의 제안을 거절했다.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이 행사는 북한 정권의 인권유린을 비판하고 동시에 북한 인권 문제를 외면하는 한국 정부를 비판하는 취지"라고 했다. 다른 관계자들도 "정부가 북한 정권 눈치를 보느라 북한 주민의 인권은 외면하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통일부 관계자는 "사실 관계를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했다.

단체들은 현재 유튜브를 통해 행사 후원을 받고 있다. 지금까지 100여명이 2000만원을 기부했다고 한다. 북한 인권 단체들은 출국일인 4월 27일 인천공항에서 기자 회견을 열어 통일부를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할 계획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북한 인권 단체들은 각종 지원이 중단돼 사무실과 인력을 줄이고 있다. 헌법재판소 공보관을 지낸 배보윤 변호사는 "정부가 보조금을 주면서 비공개 서약서를 요구하고 '정부 비판 금지' 조건을 붙이는 것은 형법상 직권남용 소지가 있고 헌법상 표현의 자유 침해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3/27/201903270011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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